검은머리 외국인 총수가 불러올 ‘나비효과’
  •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8 10: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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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김범석) 대신 법인(쿠팡) 동일인 지정 논란…규제 우회한 ‘제2의 김범석’ 출현 가능성 열려

공정거래위원회는 4월29일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결과’를 발표하면서 공시대상기업집단 동일인을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아닌 쿠팡(주)으로 지정해 논란이 일었다. 공정위는 동일인을 ‘특정 기업집단의 사업 내용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로 판단한다며 김 의장이 쿠팡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어 동일인으로 지정할 것처럼 했었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입장이 바뀐 것이다.

그 이유로는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 사례에서 국내 최상단 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 온 점, 현행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어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에 미비한 부분이 있는 점,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쿠팡(주)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현재로서는 계열회사 범위에 변화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이러한 공정위의 판단 근거는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과 동일인 지정 제도 취지와 배치됨은 물론, 검은머리 외국인 총수에 대한 특혜이자, 공정위 스스로가 사익편취를 감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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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왼쪽 첫 번째)이 2020년 3월6일 코로나19 관련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 생필품 판매 상황 점검을 위해 김범석 쿠팡 의장(오른쪽 끝)과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GM·에쓰오일과 닮은 듯 다른 쿠팡

우선 공정위가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한 사례로 들고 있는 외국계 기업집단 한국GM과 에쓰오일(S-Oil)은 그룹 체제와 그룹의 실질적 자연인 지배자가 있느냐는 측면에서 쿠팡과는 다르다. 이 두 그룹은 최대주주가 각각 General Motors Company(GM) 자회사인  ‘General Motors Investment Pty Ltd.’와 사우디 아람코그룹의 자회사 ‘Aramco Overseas Company B.V.’지만 동일인을 각각 한국지엠(주)과 에쓰-오일(주)이라는 한국 최상단 법인으로 지정했다.

겉으로 보면 쿠팡과 비슷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확연히 다르다. GM그룹은 1908년 윌리엄 크라포 듀란트(William Crapo Durant)에 의해 설립됐지만 과도한 인수·합병 문제 등으로 1923년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 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었다. 지금의 메리 바라(Mary T. Barra) 회장 역시 직원에서 시작해 전문경영인(CEO)에 오른 인사다. 즉 실질적 지배자인 동일인(총수)이 있는 기업집단이 아니라 전문경영인 체제라서 한국지엠(주)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것이다. 전문경영인 체제인 국내의 포스코나 KT그룹의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에쓰오일의 최대주주인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이다. 2016년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해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에서 공기업을 제외하기 전까지는 한국전력과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같은 공기업도 지정요건이 충족될 경우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었다. 때문에 국영기업을 최대주주로 두고 있는 에쓰오일 역시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것이다. 즉 사례로 등장하는 두 그룹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연인 총수가 없다는 뜻이다.

공정위도 인정했지만 쿠팡은 누가 봐도 김범석 의장이 실질적 지배자다. 김범석 의장이 지분 10.2%(차등의결권 적용 시 76.7%)로 모회사인 미국 쿠팡INC를 지배하고, 쿠팡INC는 한국 쿠팡(주)을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로 두고 나머지 계열회사인 ㈜떠나요, 씨피엘비(주), 쿠팡대구에프씨제일차(주), 쿠팡대전풀필먼트제일차(주),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유), 쿠팡풀필먼트서비스(유), 쿠팡페이(주)를 지배하는 구조다. 8개 계열사를 거느린 금산복합기업집단의 총수다. 모회사가 미국 쿠팡이고 김범석 의장도 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성장한 회사고,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연인도 버젓이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가 3가지 이유를 들어 쿠팡의 동일인을 자연인 김범수 의장이 아닌, 쿠팡(주)으로 지정함으로써 향후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쿠팡과 같은 외국인 총수들에게는 공정거래법 사익편취 규정 제23조의2(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등 금지) 조항과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과 계열사와의 거래내역 공시 규정을 적용할 수 없게 됐다. 우리 공정거래법에서 특수관계인은 배우자를 포함해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으로 보고 있다. 향후 김범석 의장과 배우자, 쿠팡에 근무하며 약 8억원가량의 급여를 받은 남동생 부부가 개인회사를 설립해 사익편취를 해도 제재하기가 어렵게 됐다. 공정위에서는 김범석 의장과 특수관계인들이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쿠팡과 부당한 내부거래를 할 가능성이 낮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안일한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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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대상 기업집단을 발표하는 공정위ⓒ연합뉴스

공정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나

둘째, 사익편취 규제와 형사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쿠팡과 같이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재벌 총수가 나올 수 있다. 기업집단과 동일인 지정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 역시 이어질 수 있다. 롯데그룹의 경우 일본롯데홀딩스를 통해 호텔롯데와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신동빈 회장이 총수로서 한국 국적이라는 것만 빼고, 쿠팡과 비슷한 체제다. 만약 신동빈 회장이 외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모회사를 해외에 만드는 검은머리 외국인이 생겨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턱없이 부족했다. 때문에 벌써부터 동일인 지정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급성장한 I T기업들에는 동일인 지정 제도가 맞지 않다며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어디에도 외국인을 지정하면 안 된다는 근거가 없다. 나아가 외국인이라도 국내법을 위반한다면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쿠팡과 관련해 여러 비판이 일자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 제도를 개편한다고 한다. 전형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어떻게 개편할지 두고 봐야 하겠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공정위는 신뢰를 잃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제도를 개편한다면서 동일인 지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예외까지 도입한다면 더욱 큰 문제다. 개별기업이 아닌 재벌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문제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등을 억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것이 기업집단과 동일인 지정 제도다. 쿠팡 사례로 검은머리 외국인 총수가 늘어날 수도 있고, 예외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어떻게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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