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공급 ‘붕’, 저가 반도체 공급 ‘뚝’ [최준영의 경제 바로 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6 10:0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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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도 아닌데 생산라인 멈춘 이유…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 전망

석유 등 원자재가 아닌 공장에서 제조되는 물품의 부족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수요 확대에 맞춰 지속적으로 생산력을 확대해 왔다. 그렇기에 세계 소비자들은 수요 확대에도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인상 없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과거 수요 증가로 인한 공급 부족은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 이는 과거 이야기가 됐다. 풍부한 유동성과 낮은 금리는 수요 증가로 수익성이 향상될 수 있는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가능케 함으로써 적시에 생산능력을 개선해 왔다.

2020년 11월20일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테슬라 기가팩토리에서 근로자들이 전기차를 만들고 있다.ⓒXinhua
2020년 11월20일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테슬라 기가팩토리에서 근로자들이 전기차를 만들고 있다.ⓒXinhua

반도체 회사들, 수익성 낮아 차량용 생산 꺼려

이러한 상황은 2021년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2020년의 수요 감소가 2021년 들어 회복되면서 수요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목재·구리 등 원자재에서 시작한 수요 급증은 점차 전자제품·자동차 등 완제품으로 이어졌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필수적 요소인 반도체가 부족해 생산에 차질을 빚는 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초 단기적 현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현상은 2022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현대차 울산 3, 5공장 및 기아차 소하2공장이 휴업에 들어가는 등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 수준을 요구하는 저성능 소자라는 데 있다. 자동차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400억 달러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커 보이는 시장이지만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보면 10% 내외 규모에 머무르고 있다. 자동차의 전동화가 진행됨에 따라 차량 1대당 필요한 반도체는 평균 200~400개로 증가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연평균 9%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용 반도체 대부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반도체 업계의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된 업체들이 과거 기술과 생산설비를 활용해 저렴하고 저부가가치 상품으로 간주되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해 왔다. 첨단 반도체 경쟁에서는 잊힌 이름인 NPX(네덜란드)·인피니언(독일)·르네사스(일본)·TI(미국) 등이 차량용 반도체의 주요 생산업체로 자리 잡은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심화됨에 따라 공급을 늘리면 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유는 차량용 반도체 가격이 개당 1달러 수준으로 원체 저렴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투자를 통해 이익을 내기 어렵다는 데 있다. 더 큰 이유는 과거와 같이 저렴한 가격으로 양산라인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데 있다. 반도체 산업의 환경이 변화한 것이다. 반도체 업체의 경쟁은 반도체 내부 선폭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진행된다. 선폭을 절반으로 줄이면 같은 면적에 4배의 용량을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폭 감소는 전력소모 감소와 성능 향상으로 이어진다. 반도체 업체의 경쟁은 이러한 흐름으로 진행돼 왔다.

많은 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에는 6인치 라인이 금방 8인치로, 그리고 12인치로 변화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그리고 대만의 TSMC 등은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자로서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최첨단 제품에 초점을 맞춰 생산력을 확대해 왔다.

경쟁에서 밀려 도태된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라인은 첨단 제품이 아닌 한 단계 낮은 저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8인치에서 12인치로 넘어가던 시기의 경우 유휴 8인치 생산설비가 시장에 매물로 쏟아져 나왔고 이러한 설비 가운데 상당수는 태양광, LED 등 연관 분야 제품 생산에 활용됐다.

최첨단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고급형으로 제조된 생산설비들이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다른 품목 생산에 대량으로 전용되면서 제조 비용은 급속히 낮아졌다. 태양광 및 LED의 급속한 가격 하락에는 이러한 배경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시장이 소수 업체 위주로 재편되면서 과거에 비해 설비 교체 및 도태가 느리게 진행되면서 과거와 같은 저렴한 설비 확보 기회는 사라졌다.

 

반도체 대란 해소 당분간 어려울 듯

타 분야로 전용되지 않은, 몇 세대 뒤처진 반도체 장비들은 각종 센서류 그리고 자동차용 반도체와 같은 저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활용됐다. 최첨단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10nm 수준이며 최근 3nm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차량용 반도체는 14nm부터 최대 180nm에 이른다. 과거의 유산인 것이다. 스마트폰의 기능 다양화 및 사물인터넷(IoT)의 폭발적인 성장에 따라 이러한 설비에서 생산되는 센서류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차량 구매 수요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의 수요 역시 대폭 감소했다. 한정된 설비로 최대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부가가치가 낮은 저성능 소자의 생산량은 감소하게 됐고 이는 차량용 MCU로 대표되는 구식 반도체에 집중됐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높은 수준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요구받지만 가격이 낮아 수요가 늘어나도 이를 위해 장비를 새롭게 발주해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여기에 더해 자동차 판매량에 따라 재고를 30년 이상 보유해야 하는 등 요구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생산자 입장에서는 선호되지 않는다. TSMC 등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에 각국 정부가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을 늘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대응이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일각에서 전망하는 것처럼 단기간에 자동차용 반도체 대규모 공급 확대가 용이하지 않음은 명백하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해외 긴급조달 지원 및 대체품에 대한 성능·인증 긴급지원을 통해 문제를 극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자동차용 반도체 산업의 역량 강화를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낮은 수익률, 그리고 저렴한 생산설비의 공급 중단으로 인해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부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량의 구식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자동차 제조 방식의 변화일 것이다. 개별적으로 분산된 다수의 반도체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고성능 반도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하는 것이다. 최근 전기자동차 및 자율주행차 보급은 이러한 흐름을 가속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연기관 축소와 퇴출은 단순한 구동 방식의 변화라기보다는 자동차가 기계에서 전자제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동차 반도체 부족은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과 더불어 미래의 변화에 대비한 자동차 반도체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접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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