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거장의 질문 “고객의 지갑을 어떻게 열게 할건가”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1 15:0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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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G 2021 기조연설 나서는 '마케팅 구루' 필립 코틀러 교수 인터뷰
“기계는 쿨하지만 인간은 따뜻하다”

상학(商學)이라고 불리는 경영학은 어찌 보면 가장 자본주의스러운 학문이다.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어떻게 재화를 불려가는지를 연구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게 중요한데 문제는 어떻게 버느냐다. 서구식 자본주의가 그간 도마에 올랐던 것은 돈을 버는 방식에서 철저히 이기심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일본 교세라 창업주로 대표되는 동양의 경영자들이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을 강조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고객의 지갑을 어떻게 여는지를 연구하는 마케팅학은 더 자본주의스럽다. 그런데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경영학자 중 한 명이자 현대 마케팅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 미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경영대) 석좌교수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당면과제를 묻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중산층을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고소득자의 세금을 올려야 한다. 그 돈으로 의료복지를 개선하고 무상교육을 추진해야 한다.”

필립 코틀러 미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 석좌교수가 2011년 6월28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HSM 월드 마케팅 앤드 세일즈 포럼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AP연합
필립 코틀러 미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 석좌교수가 2011년 6월28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HSM 월드 마케팅 앤드 세일즈 포럼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AP연합

코틀러 교수와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기에 순간 ‘눈’을 의심했다. 세계 경영학계의 구루(Guru·위대한 스승)라고 불리며 IBM·뱅크오브아메리카·제너럴일렉트릭(GE)·AT&T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컨설팅해 준 석학의 말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한국에 있었으면 ‘좌빨’이라는 낙인이 붙을 게 분명해 보였다.

왜 그럴까. 코로나19 이후 나타날 세상에서 그가 걱정한 것은 최상과 최하만이 있는 불완전한 미래다. 그렇기에 현대 자본주의의 총본산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올해 구순(90세)인 이 노학자는 이렇게 외친다.

“난 원시 자본주의(Raw Capitalism)를 반대한다. 대신 유럽식 자본주의(Nordic Capitalism)를 꿈꾼다.”

시사저널은 5월25일 ‘컨퍼런스G 2021’에서 기조강연자인 코틀러 교수와 행사 전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코틀러 교수는 “모든 사회가 나서 부의 불균형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켓5.0》에서 인류를 위한 마케팅 기술 강조 코틀러 교수는 단순한 경영학자가 아니다. 조지프 슘페터와 피터 드러커처럼 학문 영역이 경영학·경제학·철학·역사학·정치학을 넘나든다. 최근 미국에서 《마켓 5.0》과 함께 낸 책이 바로 《저물어 가는 민주주의(Losing Our Democracy)》와 《H2H(human-to-human)마케팅》이다. 이들 책에서 코틀러 교수가 하나같이 강조하는 것은 인류, 다시 말해 ‘사람’이다. 결국 상품 판매나 자본주의·민주주의의 본질은 ‘사람’이라는 게 그가 강조하는 바다.

이번에 출간된 마켓 시리즈 종합편 《마켓 5.0》ⓒ더퀘스트 제공
이번에 출간된 마켓 시리즈 종합편 《마켓 5.0》ⓒ더퀘스트 제공

이번에 신간 《마켓 5.0》을 출간했다. 직전에 낸 《마켓 4.0》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와 내 공저자들은 2017년 낸 《마켓 4.0》에서 디지털 혁명이 몰고 온 마케팅의 중요한 변화를 설명한 바 있다. 그렇기에 그 책의 부제를 ‘전통에서 디지털로의 이동’이라고 정한 것이다. 당시 우린 세 가지 변화를 주목했는데 배타적인 것에서 포용적인 것, 수직적인 것에서 수평적인 것, 그리고 개인에서 사회로의 변화였다.

디지털 혁명이 만들 청소년·여성·네티즌의 변화를 짚어보면서 인지·호소·질문·행동, 그리고 반복행동에서 벗어나는 고객의 경로를 살펴봤다. 이를 토대로 파(PAR·구매행동률: 브랜드 인지를 구매로 얼마나 잘 전환시키는지 비율)와 바(BAR·브랜드옹호율: 브랜드 인지를 브랜드 옹호로 얼마나 잘 전환시키는지 비율)라는 새로운 측정기준을 만들어냈다.

올해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그렇기에 ‘인류를 위한 기술’이라는 부제의 《마켓 5.0》을 출간한 것이다. 책에서 나와 내 공저자들은 다양한 신기술이 등장했고 이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가 커졌음을 설명했다. 우리는 이러한 신기술들이 인류에게 엄청난 기회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새로운 혁신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결국 마케팅의 본질은 인간성에 있다. 기술과 감정을 어떻게 결합해야 마케팅이 극대화될 수 있을까.

“최근 등장하는 신기술은 인공지능·알고리즘·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컴퓨터를 이용해 사람의 자연어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기술)·센서 기술·로봇공학·증강현실·가상현실·사물인터넷(IoT)·블록체인 등이다. 모든 기업은 자신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떤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지 검토해야 한다. 그렇기에 신기술에 익숙한 얼리어답터들이 경쟁적 우위를 점하곤 한다. 시사저널의 ‘컨퍼런스G 2021’에서 각 기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룬다. 아울러 《마켓 5.0》에서 언급한 세대 차이·사회 양극화·디지털 격차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마켓 5.0》에서 알파세대를 강조했다.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이들의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선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마켓 5.0》은 현 세대를 베이비붐세대·X세대·Y세대·Z세대·알파세대 등으로 나눴다. 여기서 Z세대는 1997년에서 200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알파세대는 2010년부터 2025년생까지를 가리킨다. Z세대·알파세대 모두 그 이전 세대보다 어린 나이에 더 성숙한 사고방식을 가졌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실제 행동을 통해 배우려는 의지가 그 전 세대보다 더 강하다. 20세 미만이라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알파세대는 브랜드화된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 기술화된 장난감, 스마트·웨어러블 기기 등을 갖고 노는 걸 매우 편하게 생각한다.”

코로나19는 소비 감소를 불러왔다. 앞으로 소비시장이 어떻게 변할 거라고 보는가. 위축된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날까.

“우리는 코로나19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이미 수많은 회사가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았나. 출퇴근하지 않고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옷을 사고 외식에 쓰는 돈과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대신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향상된 컴퓨터를 사고, 집 안 환경을 더 안락하게 만드는 데 돈을 썼다. 결과적으로 밖에서 쓰는 돈을 줄일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나라가 코로나19를 잘 통제하고 있다. 봉쇄 조치도 많이 줄었고 시민들에게 백신도 보급하고 있다. 결국 소비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다. 다소 더 마스크를 써야겠지만 식당과 점포를 찾는 것은 더 쉬워질 것이다. 나중에는 콘서트와 연극도 볼 것이고, 여행도 많이 떠날 것이다. 다만 소비가 폭발적이기보다 꾸준하게 늘어나길 바랄 뿐이다. 소비 폭발은 결핍과 인플레이션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 기업은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개선)를 마케팅의 일부로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단기책으로 여긴다. 사회공헌활동에서 기업의 역할은 무엇이며, 주의사항은 무엇인가.

“한국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영어 약자)를 단기 정책으로 보지 않길 바란다.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편하게 대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기업들의 수익이 단순히 수익 극대화에만 힘쓴 회사보다 컸던 경우가 많았다. ESG를 중시하는 기업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에 자부심을 갖는, 아울러 이로부터 동기부여를 얻는 우수한 직원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이들이 행복을 느끼기에 다른 회사로의 이직률은 낮고, 그로 인해 회사는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 양극화도 심각한 문제다.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모든 기업은 판매 목표 타깃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목표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는 기업일수록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디지털 마케팅에 본격 뛰어든 기업일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한다.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인간의 학습 능력과 같은 기능을 컴퓨터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술 및 기법)을 활용해 고객의 의도도 파악한다. 반대로 디지털화가 덜 된 기업일수록 30초짜리 값비싼 광고와 인쇄물, 라디오 광고 등 전통적인 방식을 더 많이 활용할 것이다. 똑똑한 디지털 기업일수록 기존 마케팅 방식과 디지털 마케팅 방식을 적절히 섞어, 좀 더 강력한 브랜드와 브랜드 충성도를 구축한다.”

따뜻한 인간성에 혁신적인 기술을 결합한 마케팅 기법의 등장은 가능할까.

“많은 기업이 고객을 모시는 것처럼 직원들을 현명하게 대하려 한다. 고객들은 게으르고 무능하며 불행함을 느끼는 직원들 때문에 기업에 대한 관심을 끄고 있다. 무릇 기업이란 사람이 구매자와 판매자로 나뉘는 곳이 아니다. ‘사람 대(對) 일하는 사람’으로 보는 곳이다. 모든 상황에는 엄청난 감정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최근 《H2H: 사람 대 사람 마케팅의 기원》이라는 책을 다른 이들과 함께 썼는데, 거기서 우린 기업 비즈니스를 냉랭한 기계 용어가 아닌 사람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는 심각한 양극화를 불러왔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선 정보 환경의 양극화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마켓 5.0》에서 우리는 국가 내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단순 생존에 그치거나 아니면 더 가난해지고 있다. 중산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품질과 경험이 중요한 프리미엄 시장 또는 생필품 내지 떨이로 판매되는 시장만 돈을 벌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 대비는 이데올로기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입법을 통한 해결과 높은 부유세 도입을 원한다. 반대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모든 시대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란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우리 사회는 부의 불균형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이 인상돼야 하고 최고 소득 세율도 50%로 올려야 한다. 자본소득도 경상이익(전통적인 수입)으로 보고 과세해야 한다. 재산이 5000만 달러 이상인 경우에는 가산세 2%가 붙도록 해야 한다. 재산세도 인상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로 거둬들인 돈으로는 모두 교육 환경 개선과 보편적 아동 돌봄, 양질의 무료 유치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써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는 기업가 정신이 많이 후퇴하고 있다. 지금 이러한 시기에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은 ‘혁신’이라는 찬사를 누렸다. 삼성·LG·현대차·기아차의 혁신적인 성공을 생각해 보라. 반대로 일본과 미국(전통적인 제조업 지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는 혁신이 둔화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쟁이 치열할수록 혁신성은 성장한다. 새롭게 등장한 기업들은 전통 있는 오래된 기업들의 활동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국가가 나서 보조금이나 특별한 세제 혜택을 줄 수는 있다. 미국 정부는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과 함께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을 장려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이에 미국 경제가 완만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동의하는가.

“바이든 정부는 자기도취적 성향의 트럼프가 파괴한 지난 4년간의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엄청난 능력을 보였다. 바이든은 사회기반시설을 복구하고 실업자들이 굶주림을 피하며 보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쓰자고 제안했다. 사태는 차츰 호전되고 있다. 미국의 두 거대 정당은 51대 49라는 의석수 비율을 즐기고 있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나는 바이든의 이러한 일련의 계획이 훌륭하다고 본다. 이는 1930년대 경제 회복을 불러온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영향을 받았다. 나는 끔찍하게 세금을 적게 내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정부가 과세를 강화하고,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이를 막으려는 보수주의자들의 경고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다.”

미·중 두 나라의 갈등은 불가피할까.

“중국은 계속해서 남중국해 지배와 대만 점령을 원하겠지만 외국 브랜드 권리를 보호하는 일에는 소홀할 것이다. 미국은 지금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존중하고 미국산 상품의 가격을 적절하게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이든이 중국 시진핑을 만나 과열된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바란다. 미국은 미·중 양국 관계 정상화에 동의할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더 강력한 관계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 모두 자신들이 얻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거라고 보기 때문에 미·중 무역전쟁을 충분히 피할 순 있다. 중국은 유럽과 전 세계 정복을 꿈꿨던 히틀러의 독일과는 다르다. 다만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려는 중국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소비 양극화도 심각하다. 이러한 때 기업들은 어떤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할까.

“중산층을 재건하는 게 목표다. 이는 양극화로 치닫는 지금, 가장 싸지도 않으면서 가장 비싸지도 않은 상품들의 소비 가능성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비록 초(超)고소득은 아니지만 더 우수한 기술을 효과적으로 훈련받을 것이기에 중산층은 성장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고소득자와 부유층에게 세금도 올리고 임금도 올렸으면 한다. 그 돈으로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데 썼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모든 학생이 대학 교육을 무료 또는 저렴하게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다고 내가 원시 자본주의(Raw Capitalism)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반대한다. 그보다는 유럽식 자본주의(Nordic Capitalism)를 선호한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북유럽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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