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초에게 전자담배를 허하라“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3 13:0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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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담배문제시민행동 대표 윤방부 명예교수 “전자담배로 금연 연착륙 가능”

5월3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금연의 날’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민 5명 중 1명(약 21.5%)은 흡연자다. 매년 약간씩 감소하는 추세지만, 최근 5년간 흡연율은 21~22%에서 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지난해 담배 판매량은 전년보다 4% 증가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난해 국내 담배 판매량은 36억 갑에 육박했다. 면세 담배 수요가 국내시장으로 몰린 데다 코로나 블루(코로라19로 인한 우울증)로 담배를 찾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방부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는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흡연자가 30%인데, 이들에게 금연만 강요해서는 흡연율을 낮추지 못한다. 이들을 금연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중간 단계가 필요한데, 그것은 전자담배다. 전자담배로 금연 연착륙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담배를 권장한다는 뜻일까. 현재 담배문제시민행동 대표로 있는 윤 명예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사저널 최준필

피부가 좋아 보이는데 평소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다들 피부에 뭐를 바르냐고 묻는데, 사실 담배와 술을 전혀 하지 않고 운동만 한다. 매일 10km를 뛰는 것이 전반적인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담배문제시민행동은 어떤 단체인가.

“국내 흡연율은 남자 35%, 여자 7%쯤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담배 하면 금연만 얘기하고 마치 흡연자를 죄인처럼 취급해 왔다. 그러면서도 흡연자를 위한 아무런 도움이 없었다. 그래서 담배를 끊고 싶어도 잘 안 되는 사람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모색하고자 4년 전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이 단체를 설립했다. 목적은 금연이지만 무조건적 금연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금연에 연착륙하는 방법을 찾는 단체다.”

세계 금연의 날을 일반인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을까.

“WHO가 담배로 인한 중독과 사망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만든 세계 금연의 날은 본래 1988년 세계 보건의 날인 4월7일이었다가 1989년 5월31일로 변경됐다. 이런 의미를 되새기면 좋겠다. 세계 인구 중 20%인 약 13억 명이 흡연자다. 현재 세계적으로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가 800만 명이고 간접흡연으로 약 180만 명이 유명을 달리한다.” 

코로나19 고위험군에 흡연자도 포함되지만 오히려 담배 판매량은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고위험군에 비만, 고령과 함께 흡연이 포함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의한 혈전증의 위험 요인 중 하나도 흡연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2년째 이어지면서 많게는 70%, 적게는 64%가 우울감을 느끼는 이른바 ‘코로나 블루’를 경험한다. 이 코로나 블루가 담배 판매량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스트레스만 쌓이니까 결국 술과 담배로 귀착하는 것이다. 담배 판매량이 코로나19 유행 후 4%, 많게는 7.5%까지 증가했다. 특히 좋은 향과 맛을 첨가한 캡슐 담배와 같은 가향 담배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많은 사람이 가향 담배가 덜 해로울 것으로 생각한다. 청소년과 여성은 물론이고 담배를 끊었던 사람도 다시 가향 담배 등으로 흡연을 시작한다.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담배 전체 판매량 중 가향 담배의 비중은 2011년 6.1%에서 지난해 38.4%로 6배 이상 늘었다.)

실제 가향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로운가.

“가향 담배는 일반 담배보다 오히려 더 해롭다고 볼 수 있다. 캡슐 담배의 경우  필터에 캡슐이 있는데, 이를 깨트리면 커피 향이나 멘톨 등 다양한 향과 맛이 난다. 이런 성분이 암을 유발하는 물질을 더 만든다. 향과 맛이 좋으니까 가향 담배의 위해성을 못 느낀다는 점도 문제다. 가향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얼마나 해로운지 과학적 데이터가 없어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향 담배로 중독이 더 심해지고 담배를 더 자주 피우게 된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향 담배에 대한 규제가 필요해 보이는데.

“KT&G가 출시하는 담배의 40%가 가향 담배라고 한다. 그 종류도 30가지가 넘는다. 따라서 처음 담배를 배우는 청소년의 62%가 가향 담배로 흡연을 시작하고, 그 가운데 82%가 결국 흡연자가 된다. 한마디로 가향 담배는 흡연자를 만들어내는 창구다. 미국에서도 가향 담배를 선호하는 청소년이 늘어나자 미국 정부는 2019년 멘톨을 제외한 모든 가향 담배를 퇴출했다. 유럽도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가향 담배에 대한 규제가 없다.”

5월18일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인근 흡연부스에서 한 흡연자가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5월18일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인근 흡연부스에서 한 흡연자가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그래도 여러 금연 정책으로 흡연율은 매년 떨어지고 있지 않나. 

“정부는 다양한 금연 정책을 시행해 왔다. 담배 가격을 올리거나 담뱃갑에 흉한 그림을 넣었고 캠페인도 펼쳤다. 금연치료센터에서 무료로 금연보조제를 주기도 했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금연보조제로 인한 금연 성공률은 5%밖에 되지 않는다.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것에 비하면 실효성이 너무 낮다. 금연 정책은 아예 처음부터 흡연을 시작하지 않도록, 담배를 피운다면 끊도록,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향 담배로 흡연을 쉽게 시작할 수 있고, 흡연자에게 금연을 유도하지만 잘되지 않고, 담배를 끊고 싶어도 잘 안 되는 사람을 방치하고 있다.”

금연을 유도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보건복지부가 2015년 제안한 4D 금연요법이 있다. 4D란 Delay(지연하기), Deep breathing(심호흡하기), Do something different(다른 것 하기), Drink water(물 마시기)를 의미한다. 흡연 욕구는 5분만 참으면 사라지므로 껌 등을 활용해서라도 흡연 욕구 타이밍을 지연시킬 필요가 있다. 숨을 천천히 길게 들이마시고 내뱉거나, 산책·샤워·취미 등을 하면서 흡연 욕구를 잠재울 수도 있다. 의사 대다수는 이 방법을 추천하고 나도 젊을 때는 이 방법을 권했다. 이런 의사를 나는 ‘지식 의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단다. 의학적으로는 스트레스가 더 생기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아무리 4D와 같은 방법을 들이대 봐야 효과가 없다. 흡연자 입장을 생각하는 의사의 태도가 중요하다. 죽어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써서 서서히 금연으로 유도해야 한다. 나는 이런 의사를 ‘지혜 의사’라고 부른다.” 

다른 방법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은 의지나 동기로 담배를 끊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금연하지 못하는 사람이 30%다. 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금연을 강요하기보다는 금연에 연착륙하도록 중간 단계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그 중간 단계로 전자담배를 추천한다. 전자담배에는 액상형과 궐련형이 있다. 액상형은 액체를 배터리로 끓여 증기를 흡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임의로 배터리를 조작해 가열 온도를 높일 수 있다. 온도를 높일수록 니코틴은 더 많이 발생한다. 궐련형은 배터리로 가열해 담배를 찌는 방식인데 가열 온도가 350도로 고정돼 있어 임의로 조절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영국·일본은 궐련형 전자담배 마케팅을 허용했다.”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보다 더 해롭지 않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6년 암을 유발하는 타르 함유량이 일반 담배보다 많다고 발표해 전자담배 마케팅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미국과 독일 등에서 나온 데이터를 종합하면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니코틴은 23%, 나머지 성분도 90% 적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전자담배를 허용했다. 연구 결과는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흡연자 범위에 담배를 피우다 끊은 사람까지 포함하느냐 등 여러 변수에 의해 달라진다.” 

일반 담배보다 전자담배의 금연율이 높은가.

“일반 담배 흡연자의 금연율이 50%라면, 전자담배 금연율은 73%라는 데이터가 영국 등에서 나와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흡연율은 18%다. 미국·한국·일본은 10%대로 낮은 편이지만, 영국·네덜란드·독일·러시아 등 유럽은 흡연율이 높다. 그래서 위해성이 덜한 방법을 찾은 것이 궐련형 전자담배이고, 이 전자담배로 금연하는 비율을 조사했더니 73%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금연과 관련해 정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한 해 담배로 걷는 세금이 12조원이다. 그중에서 건강증진기금이 2조원이 넘는다. 여기에서 금연에 쓰는 돈은 연간 약 1500억원 정도다. 그 세금을 누가 내는가. 흡연자가 부담하는데도 그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은 없다. 흡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낸 납세자를 위해 돈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정기적인 검진이든, 흡연실 확충이든, 전자담배 지원이든 정부가 흡연자를 위한 방법을 고민해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윤방부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는

국내에 가정의학을 도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 1세대다. 1967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1972년) 학위를 받고, 1975년부터 1978년까지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가정의학 전문의로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1979년 국내에 가정의학 전문의 제도를 도입했다. 1991년까지 대한가정의학과 초대 이사장과 세계가정의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천안아산충무병원재단 회장, 담배문제시민행동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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