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들의 반란, 국민의힘이 달라질 수 있을까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1 14:0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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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가 입당으로 힘을 얻기는커녕
동반 몰락을 걱정해야 하는 게 지금 제1야당의 현실

자기들만의 싱거운 리그가 될 것 같았던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초선·신진들의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관전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당 대표 출마자가 ‘난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속속 늘어나고 있다. 중진들 가운데서는 조해진·홍문표·윤영석·주호영·조경태 등 3선 이상 의원들이 출마 선언을 했고, 원외인 나경원 전 원내대표도 출마 대열에 합류했다. 초선 그룹에서는 김웅·김은혜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고, 윤희숙 의원도 출마 여부를 고심 중이라고 한다. 원외인 30대의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진즉에 뛰어들어 여론조사에서 1위로 올라서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관심을 끌기 어려운 식상한 이름도 많지만, 중진들과 신진들의 대결이라는 경선 구도는 그래도 변화를 향한 꿈틀거림으로 받아들여진다. 여당이나 제1야당에서 초선이나 원외의 인물들이 그것도 여러 명씩 당 대표에 도전하는 장면은 이례적이다. 40대도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의 정치판에서 30대 후보가 선두에 나서는 것도 흥미를 더한다. 빤한 인물들만 출마해 빤한 결과가 나오는 전당대회를 우려했던 국민의힘으로선 경선에 대한 관심을 높일 이런 요소들이 호재임에 분명하다.

국민의힘 황우여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이 5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해 열린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시사저널 박은숙
국민의힘 황우여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이 5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해 열린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시사저널 박은숙

변화의 길 가려면 경선룰 과감히 바꿨어야

하지만 신진들의 반란이 실제로 세대교체 돌풍을 몰고 올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우선 민심과 당심의 괴리를 낳을 수 있는 경선룰이 그대로 유지된다. 당원 투표 70%, 일반 국민 여론조사 30%로 당 대표를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 경선룰에 대한 수정 요구들이 있었지만, 당내 중진들의 반대 속에 그대로 존속되었다. 예비경선에서만 50% 대 50%로 바뀌었을 뿐이다. 당연히 오랫동안 정치를 해서 당내 기반이 우세한 중진들에게 유리하고 당내 기반이 취약한 신진들에게 불리한 룰이다. 국민의힘이 진정 새로운 변화의 길을 가려 했다면 경선룰부터 과감하게 바꿨어야 했다. 이런 국민의힘이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역사에서 새로운 것의 탄생은 낡은 것의 퇴장을 전제로 해야 의미가 있다. 국민의힘에서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지려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과거 회귀적 인물들이 전면에서 물러나는 일은 필수적이다. “민주당을 찍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을 찍을 수도 없다”는 중도층이 아직도 많다. 특히 중도층에 비호감 유발자가 되고 있는 ‘올드 보이’들이 눈에 띌수록 국민의힘은 확장성의 벽을 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거 인물들의 각자도생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당내 우려에도 기어코 정치에 복귀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 대표의 모습은 자기도취 그 자체다. “내가 이렇게 넋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복귀 이유는 “그저 넋 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애국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진중권 전 교수의 야유를 받았지만, 황 전 대표는 ‘흔들림 없이’ 백신을 구하러 미국에 다녀왔다. 그는 자신의 백신 외교 성과를 내세웠지만, 야당 지자체장이 있는 곳에 대해서만 백신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라 망신’이라는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경우라고 크게 다를까. 그는 황 전 대표의 정치 복귀에 대해 자신과는 결이 다르다며 “지금은 천천히 계시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선을 그었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과거 극한 투쟁을 선도했던 ‘투톱’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더구나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서 “중도는 없다”는 우파적 지향을 분명히 해 ‘강성 우파’의 이미지를 자초하기도 했다. 그 역시 ‘이념’과 ‘강경’을 떠올리게 하는 과거의 인물이라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당원들이 원한다”며 복당 신청을 한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막말 정치를 상징하던 인물이었다. 그의 품격 없는 언어들은 보수정치에 대한 국민의 혐오를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 그가 당으로 돌아오려 한다니, 반대하는 초선들과 찬성하는 중진들의 갈등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아마도 홍 의원이 복당해 다시 국민의힘의 스피커로 부상하는 상황이 온다면 국민의힘은 ‘도로 자유한국당’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젊어지되, 공동체 포용하고 보듬을 수 있어야

국민의힘의 리더급 정치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전체를 위해 자신이 물러나는 정치적 미덕을 좀처럼 보일 줄 모른다는 점이다. 과거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면 자기 당의 승리를 위해 용퇴하는 결단의 모습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 주변에서 나타나는 광경들은 그와 정반대다. 당신은 표를 떨어뜨리는 사람이니 제발 나서지 말아 달라고 만류해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며 기어코 나서는 공통점들이 있다. 이제는 은퇴하는 것이 도와주는 길임에도, 굳이 주인공이 되려 하며 자기 당의 발목을 잡아버린다. 다 죽더라도 나만 살겠다는 모습들이다. 

30대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급부상해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또한 보수 정당의 대안이라고 자신하기에는 아직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가 최종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지만, 반(反)여성주의와 여성할당제 폐지를 내건 제1야당 대표의 등장은 자칫 우리 정치의 시계를 수십 년 전으로 돌려놓는 광경이 될 수 있다. “여자라서 죽었다는 주장”을 ‘과격한 페미니즘’이라고 규정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배달시킬 때 현관에 남자 신발을 늘어놓고, 늦은 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척하며 골목길을 가야 하는 여성들의 현실은 없는 듯하다.

이 전 최고위원은 줄곧 ‘공정한 남녀관계’와 ‘공정한 경쟁’을 말해 온 능력주의자다. ‘승자에겐 오만을, 패자에겐 굴욕을 주는 능력주의의 민낯’을 말한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적 신념은 연대를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든다”(《공정하다는 착각》)고 우려했다. 그가 말하는 능력지상주의적 ‘공정’은 누군가에게는 자신감이겠지만, 다른 많은 누군가에게는 좌절이고 절망일 수 있다. 국민의힘이 세대교체를 통해 젊어져야 하는 것은 절박한 당면과제지만, 나이는 젊고 생각은 늙어버린 리더십이 대안일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정권교체의 구심이 되겠다면 젊어지되, 우리 사회라는 공동체를 포용하고 보듬을 수 있도록 젊어져야 한다.  이념이든 젠더든, 편가르기에 올라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리더십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이 변화하는 길이다. 

현재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에서는 국민의힘에 입당할 경우 지지율이 급락할 것을 우려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발을 딛는 순간, 그곳이 정치적 무덤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이 지금 국민의힘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개인으로 있는 대선주자가 힘을 얻기는커녕 동반 몰락을 걱정해야 하는 제1야당은 대체 어떤 존재의 의미를 가진 것일까. 결단하지 않으면 파도에 쓸려갈 수 있는 것이 지금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임을 그들은 직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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