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SNS에서 여론 조작하는 ‘중국 늑대들’의 광폭 공격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2 14:0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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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국·제3국 향한 中 외교관들의 ‘늑대전사 외교’ 갈수록 광폭화
英 연구소 “中 정부의 정교한 선동전략에 따라 진행” 폭로

4월29일 주일본 중국대사관 공식 트위터에 섬뜩한 그림이 올라왔다. 성조기 문양의 옷을 입고 피 묻은 낫을 든 사신(死神)이 여러 방을 거친 뒤 한 방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었다. 문 위에는 이라크·리비아·시리아·이집트 등 중동 및 아프리카 이슬람 국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또한 “미국이 ‘민주주의’를 가지고 오면 이렇게 된다”는 논평을 덧붙였다. 누가 봐도 미국이 민주주의를 앞세워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었다. 실제로 트윗은 4월2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첫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직후에 공개됐다.

4월29일 주일본 중국대사관 공식 트위터가 올린 만평. 이 트윗은 일본에서 논란이 된 뒤 삭제됐다.ⓒ트위터 갈무리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중국이 미국의 주요 경쟁자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전체주의자’라고 지칭하며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주일 중국대사관은 자국과 시 주석을 비판한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해 미국을 ‘사신’에 비유한 만평을 올린 것이었다. 이 트윗은 일본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몇몇 트위터리안은 이에 반발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 당시 시위 참가자를 탱크로 진압하는 사진을 댓글 창에 올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주일 중국대사관은 해당 트윗을 삭제했다.

주재국과 제3국에 막말 쏟아낸 中 외교관

최근 각국 주재 중국대사관이나 외교관이 트위터·페이스북 등 서구의 SNS를 통해 제3국을 비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지어 주재국이나 정부 인사를 공격하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3월2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주재하는 리양 총영사가 공식 트위터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겨냥한 막말을 쏟아냈다. 트윗에서 “보이(boy), 당신의 큰 업적은 중국과 캐나다 간의 우호 관계를 망치고 캐나다를 미국의 앞잡이(running dog)로 만든 것이다”고 말했다. 여기서 ‘보이’는 트뤼도 총리를 모욕하기 위해 선택된 단어임이 명백했다.

트윗은 캐나다가 2018년 미국의 중국 기업 화웨이 제재에 동조해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한 이래 시행한 조치에 대한 중국의 불만을 대변한다. 캐나다는 올해 들어 신장(新疆)위구르족 탄압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유럽연합(EU)·영국 등과 함께 중국을 제재했다. 또한 홍콩국가보안법 시행을 비판하며 홍콩인의 이주 확대 정책을 시행했다. 중국은 그 맞대응으로 지난해 캐나다인 2명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기소했다. 올해는 캐나다 의회 의원과 소위원회의 중국 입국을 제재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던지 리양 총영사가 나서서 트뤼도 총리를 모욕한 것이다.

3월19일에는 루사예 주프랑스 중국대사가 트위터에서 프랑스 전략연구센터의 앙투안 봉다즈 박사를 ‘삼류 폭력배’라고 비난했다. 또한 21일 중국대사관은 홈페이지에서 봉다즈 박사를 “대만과 가까운 이데올로기 선동자”라며 “연구자를 가장해 중국을 공격하는 미친 하이에나”라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공격했다. 중국대사와 대사관의 이런 비이성적인 언사는 2월 프랑스 의회 의원들이 올여름에 대만을 방문할 계획을 세운 데 따른 반발이었다. 그러자 루 대사는 프랑스 외교부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했다고 프랑스 의원들의 방문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외교부는 “의원들의 활동에 개입할 수 없고 그들은 자유롭게 방문할 권리가 있다”며 거부했다. 봉다즈 박사는 트위터에 “외교부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중국을 향해 “당신들의 선동까지 감싸안아 볼 비비는 인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대만 문제에 관해 중국과 마음을 열고 토론하겠다는 조크다. 봉다즈 박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동북아 문제 전문가다. 칭화(清華)대와 고려대에서 방문 학자로 체류하기도 했다. 전략연구센터는 프랑스 정부의 국제문제 싱크탱크다. 이렇게 자국 정부 인사를 겁박하자, 프랑스 외교부는 루사예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그동안 중국 외교관의 공격적인 SNS 활동은 시진핑 주석 집권 이래 변화된 외교방침의 일환으로 여겨졌다. 과거 중국 정부의 기본 외교전략은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도광양회는 자신의 실력을 가리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처음 이 전략을 세웠고,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는 그 유지를 잘 따랐다. 그러나 시 주석은 달랐다. 집권하자마자 대국굴기(大國崛起)와 중국몽(夢)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따라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외교전략을 버리고 세계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나타난 것이 ‘늑대전사(戰狼) 외교’다. 늑대전사 외교는 중국 외교관이 주재국이나 제3국을 향해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면서 펼치는 외교전술을 말한다. 2~3년 전부터 등장한 늑대전사 외교가 처음에는 일부 외교관의 돌출행동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 곳곳에서 중국의 늑대전사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용되는 무대와 행동방식이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서구 SNS에서 주로 활동한다. 5월11일 영국 옥스퍼드대학 OII연구소는 중국 늑대전사들의 활동이 정교한 선동전략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폭로했다.

OII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 7개월 동안 중국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벌이는 선동공작을 면밀히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126개국에 주재하는 외교관 270명과 국영 언론매체가 적어도 449개 트위터 및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는 운영이 미미하거나 자국 홍보에 치중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면서 활동 폭과 행동방식이 달라졌다. 게시물 양이 급증했고 서구 세계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실제로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 사이 해당 계정에 95만 건의 게시물을 올렸고 2700만 회 이상을 공유했다.

같은 기간 외교관의 트위터 계정은 20만1382건의 트윗을 올렸다. 한 외교관이 하루 평균 778건의 트윗을 게시한 것이다. 페이스북에는 3만4041건의 글을 올렸다. OII와 함께 조사를 진행한 AP통신은 이런 게시물이 3단계의 선동전술로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첫 단계로는 중국 정부의 논평이나 신화통신·인민일보·차이나데일리·CGTV 등 국영 언론매체의 보도가 SNS에 게시된다. 두 번째로 중국 외교관이 이들의 게시물을 공유해 1차로 증폭시킨다. 세 번째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정이 외교관이 공유한 게시물을 반복적으로 퍼뜨리면서 2차 증폭을 일으킨다.

 

중국 매체 계정 3분의 2에 ‘정부 관리’ 표지 붙어

AP는 “외교관의 트윗을 열성적으로 퍼나르는 계정들은 영국인이나 외국인으로 위장했지만 대부분 조직적으로 운영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트위터 계정은 62개에 달한다. 모두 지난해 4월과 8월에 닷새에 걸쳐 몇 분 간격으로 생성됐다. 프로필에 자신을 영국인이라고 적었으나 뚜렷한 신상은 공개하지 않았다. 해당 계정들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주영국 중국대사의 게시물을 1만8784회 리트윗했다. 이는 전체 리트윗 횟수의 44%에 달했다. 또한 주영 중국대사관의 게시물을 931회 리트윗해 전체 리트윗의 33%를 차지했다.

달리 주목할 점은 외교관 계정의 개설 시기와 다뤄지는 이슈다. 전체 중 75%가 지난 2년 사이 만들어졌다. 이는 ‘늑대전사 외교’가 본격화된 시점과 일치한다. 또한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 홍콩보안법 시행 파장, 신장·위구르족 탄압 등을 주로 다루면서, 중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서구 세계를 비난하고 있다. 이렇듯 서구 SNS에서 맹렬히 활동하는 늑대전사들에 대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조차 심각성을 인지했다. 트위터의 경우 여론 조작 금지를 명시한 운영정책에 따라 중국 언론매체와 외교관 게시물을 리트윗하던 계정을 정지시켰다. 이들 계정은 20만 회나 리트윗했다.

중국 언론매체 계정의 3분의 2에 ‘정부 관리’라는 표지를 붙였다. 외교관 계정의 14%에도 같은 표시를 달았다. 하지만 가짜 계정까지 만들어 여론 조작을 일삼는 중국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늑대전사 외교가 중국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지난 5월12일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공격적인 외교로 중국의 국력을 과시하는 늑대전사 외교가 중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들의 지지가 시 주석의 장기집권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2018년 개헌을 통해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삭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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