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준 “윤석열, 제3지대에서도 성공 가능해”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1 16:0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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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좌우 진영 모두에서 러브콜 받는 전략기획통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민심은 새 세력과 새 질서 요구”

1939년생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원칙과 소신이 뚜렷해 진영을 가리지 않고 바른말을 하는 원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정치권의 소문난 전략기획통으로 이름도 높다. 경력도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언론인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까지 3대에 걸쳐 청와대 참모진을 지내다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총선부터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에서 보수진영의 전략을 주도했다. 대권을 노리던 ‘대선후보 안철수·문재인’ 모두가 찾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현안보다는 민심의 흐름을 묻고자 했다.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며 인터뷰를 고사했던 윤 전 장관을 5월20일 어렵게 만났다. 인터뷰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시사저널 임준선

‘윤석열 현상’으로 대표되는 ‘제3지대론’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왜 국민은 여야 모두에게 실망감을 계속 표출할까. 

“우리나라 정당정치를 흔히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하지 않나. 저는 두 개의 거대 정당이 아주 오랫동안 정치적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카르텔 구조를 만들었다고 본다. 이 폐해가 너무 심각해 국민이 염증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의회정치는 노상 마비된다. 국정은 자주 헛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은 늘 새로운 세력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있다. ‘안철수 현상’이 대표적 사례다. ‘정치인 안철수’는 ‘새 정치’를 들고나왔지만 새 정치의 알맹이를 채우지 못해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 국민적 열망은 지금도 살아 있다. 충족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정몽준·문국현·안철수·반기문 등 제3지대 후보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뭐라고 보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구조적 이유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한쪽 정당에 대한 기대가 살아 있으면 제3지대는 성공하기 어렵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물이다. ‘제3지대론’을 펼치며 등장했던 인물들은 정치적 경험이 부족했다. 참신성만을 갖고 제3지대를 표방했다. 현실정치에선 참신함만으로는 안 된다. 유능함을 증명할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분들이 성공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대선후보 윤석열’의 도전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제일 필요할까.

“윤 전 총장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판단이 매우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분석해 본다면, 그가 정치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특히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냉철하게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선주자로 지지율이 확 오르면 스스로를 냉철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중심을 지키려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더불어 꼭 필요한 태도는 바로 ‘민주적 질서’에 대한 이해다. 윤 전 총장은 평생을 상명하복과 수직적·권위적 질서로 운영되는 검찰 조직에서 생활했다. 민주주의는 수직적 질서가 아니라 수평적 질서와 문화로 운영된다. 윤 전 총장이 민주적 질서에 얼마나 친화력이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이런 태도가 먼저 갖춰지지 않으면 국정에 대한 전문성이나 지식 등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제3지대에서도 윤 전 총장이 대선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이는 여의도 정가의 정치 문법과는 다른 분석이다.

“제3지대가 성공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저 역시 지난 4월 보궐선거 전까지만 해도 같은 생각이었다. 현실적으로 정당이라는 거대한 조직 기반 없이 제3지대에서 대선을 치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저도 했다. 그런데 4월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민심은 분노 수준이다. 제1야당은 이미 탄핵으로 심판을 받았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한 현 집권여당 세력은 지난 4월 선거로 국민적 심판을 받았다. 서울과 부산의 민심이 어디 보통 민심인가. 거대 정당 모두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니 제3지대가 성공할 가능성이 생겼다. 그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제3지대가 주도하는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제3지대 성공을 말하는 다른 이유가 더 있나.

“새로운 질서에 대한 요구가 밀려오고 있는 점이다. 지금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코로나19라는 엄청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질서와 기준이 요구되고 있다.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뉴노멀’이라는 얘기가 왜 나오겠나. 여기에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정보기술(IT)도 새로운 질서를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계약과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은 새로운 정치 세력이 더 잘할 수 있다.”

현실정치 얘길 해 보자.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평가하나. 

“4월 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은 이미 많이 다뤄졌다. 저는 근본적인 부분을 짚고 싶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촛불정신’을 역행했다는 점이다. 촛불정신이 뭔가. 국민은 촛불을 들고 훼손된 민주적 가치를 회복하라고 주문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복원하고, 발전시켜, 성숙하게 만들라는 명령이었다. 스스로 ‘촛불정부’라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는 제가 볼 때는 거꾸로 갔다.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과 청와대에 권력이 집중됐다. 특히 작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이후에는 소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국정을 강행 처리했다. 이런 걸 선거 독재, 선거 전체주의라고 한다. 대체 현 집권 세력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수차례 협치와 통합을 강조했다. 이는 의회민주주의의 운영 원리를 따르면 저절로 이뤄진다. 문재인 정부가 야당을 존중하고 협치를 했나?”

강한 비판이다. 

“꼭 짚고 싶은 부분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고, 지키려고 하는지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계속해서 의회주의와 대의민주주의 대신 직접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원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국민은 직접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대체 그 근거가 무엇인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또 엄청나게 무책임한 태도다. ‘일상의 정치에서 광장이 제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의 말이다. 똑 떨어지게 맞는 분석이다. 현실의 문제는 제도 정치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런 부분에 대해 제1야당이 손 놓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말 불가사의했다.”

더 제기할 비판점이 있나.

“문 대통령은 ‘추미애-윤석열 갈등’ 당시 시종일관 자신은 모르는 척 먼 산 바라보듯 하기만 했다.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직무유기한 것이다. 자신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몇 달 동안 나라를 둘로 쪼개놓고 거의 주먹다짐을 했는데 말이다. 부족국가 추장도 이렇게는 안 한다.”

제1야당은 어떻게 보나. ‘탄핵의 강’을 건넜다고 보나.

“변화를 외면하는 ‘갈라파고스 정당’이라고 본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조금 바뀐 것처럼 겉모양새만 바꾸고 넘어가려고 한다. 본질적 변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 변화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서 특정 지역에 기반해 안주해 버린 세력이다. 그래서 절대로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고질병이 되어 버렸다. 4월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겼다는 응답이 7%에 그쳤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지 않았나. 대안이 되지 못하는 정당이다.”

구체적 사례가 있을까.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든 정당이라는 점을 기억해 보자. 제1야당이라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선거법을 악용한 것인데, 불법은 아니지만 치명적인 잘못이다. 그래서 대체 얻은 것이 무엇인가. 겉으로만 한 번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걸로 끝이다. 우리 국민이 그런 제스처에 넘어가겠나.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초선·청년 후보들이 선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중진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보수 정당에서 젊은 후보들이 당권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분위기가 많이 변한 거라고 본다. 외형뿐일 수도 있지만, 변화의 싹이 보인다는 자체가 반갑다. 하도 변화를 거부하는 정당이다 보니 이 정도만으로도 반갑게 보인다.”

이 바람이 제1야당의 쇄신과 개혁까지 이어질까.

“이준석·김웅 후보 모두 젊고 유능하다. 기대가 크다. 다만 한 가지 점은 짚고 싶다. 젊고 참신한 사람들이 나서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젊다는 것 그 자체만을 봐서는 안 된다. 우리는 흔히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 등 해외에 젊고 유능한 정치인이 나타나면 ‘우리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등의 의견을 쏟아낸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마크롱과 트뤼도 같은 정치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지를 봐야 한다. 그 사람들은 일찍 정당정치를 경험하고 고도의 정치적 훈련을 받았다. 착각하면 안 된다. 변화는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우리 정치권이 바뀌려면 무엇이 변화해야 할까. 

“두 정당이 내세우는 ‘이념정치’를 ‘생활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우리 국민은 보수․진보 세력들이 진실로 자신들이 주창하는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볼까. 패거리 싸움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썼다고 보지 않을까. 시대가 변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으로 세상을 볼 이유가 없다. 국민생활에 보탬이 되는 생활정치로 경쟁해야 한다. 우리 정치권은 더욱 민생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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