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한반도 날씨...“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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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올여름 '극한 폭염' 재현 가능성” 예측

5월13일 원주의 낮 최고 기온이 33.8도를 기록했다. 영남내륙을 비롯해 대구·춘천·광주·전남지역도 30도 안팎까지 치솟았다. 7월 말 쯤 낮 기온이 30도를 육박하는 데 비해 두 달 정도 빨리 여름 더위가 찾아왔다. 때 이른 더위에 식물들도 놀랐다. 예년이면 6월쯤 피는 붓꽃은 5월 초에 만개했다. 이맘 때 피어있을 이팝나무 꽃은 대부분 져버렸다. 올해는 벚꽃도 99년 만에 가장 일찍 개화(3월24일)했다. 원창오 국립세종수목원 실장은 “사람들도 날씨가 무더워졌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식물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올해 3월 전국 평균 기온은 8.9도로 1973년 이후 최고치였다. ‘역대급 폭염’이 왔던 2018년 기록(8.1도)도 갈아치웠다. 지구 온난화 영향이란 연구 결과가 나왔다. 5월10일 진행된 APEC기후센터 워크숍 자료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북극해 해빙과 기온 상승이 이어졌다. 올해도 러시아와 유럽에 인접한 바렌츠카라해 기온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 폭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됐다.

기상청은 최근 ‘2021년 여름철 3개월 전망(6∼8월) 해설서’ 발표를 통해 올해 여름철은 평년보다 더 덥고 폭염일수는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장마는 6월 중하순에 시작되고, 강수량은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는 강하고 쌘 태풍이 한반도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한상은 기상청 기상전문관은 “이번 여름은 라니냐가 끝난 뒤 중립 상태로 접어드는 시기라 태풍 영향은 2~3개, 최대 4개 정도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라니냐가 종료되는 해는 최악의 폭염이 온다. 폭염 일수가 31.4일로, 한반도에 ‘역대급 찜통더위’를 몰고 왔던 2018년이 그랬다. 올해 여름도 라니냐가 끝나는 해다. 기상청은 “라니냐가 멈추면 한반도 기온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니냐는 동태평양의 적도 지역에서 저수온 현상이 5개월 이상 일어나 생기는 이상현상을 말한다.

2021년 5월 14일 제2호 태풍 '수리개(SURIGAE)'가 슈퍼급 태풍으로 발달하면서 필리핀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수리개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세력이 약해져 우리나라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기상청
2021년 5월 14일 제2호 태풍 '수리개(SURIGAE)'가 슈퍼급 태풍으로 발달하면서 필리핀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수리개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세력이 약해져 우리나라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기상청

온난화로 기후변동성 커졌다

더위가 빨리 오고 있다. 기상청이 100년 전(1912~1920)과 가장 최근(2011~2019년)의 전국 월별 평균기온을 비교한 결과, 5월 기온은 18.6도로 100년 전(15.6도) 보다 3도가 올랐다. 가장 큰 상승폭이다. 5월 최고 기온 평균치도 21.1도에서 23.7도로 2.6도 상승했다. 최근 30년 동안 여름은 20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 여름이 118일(약 4개월)로 가장 길었고, 가을이 69일로 가장 짧은 계절이었다. 열대야는 8.4일로 증가한 반면 한파는 4.9일, 결빙은 7.7일로 감소했다.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은 13일, 여름 시작을 알리는 ‘입하’는 8일 당겨졌다. 비는 단기간에 많이 내렸다. 강수 일수는 21.2일 줄었지만, 연 강수량은 135.4㎜ 늘었다. 10년마다 17.71㎜ 증가했다. 기상청은 “폭염과 집중호우 같은 극한기후현상이 더욱 빈번하고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겨울철 전 지구 기압계 모식도. 시베리아 지역으로 따뜻한 남서풍이 자주 유입되고 아열대 서태평양에서 따뜻하고 습한 고기압이 발달한 모습 ⓒ기상청
지난 겨울철 전 지구 기압계 모식도. 시베리아 지역으로 따뜻한 남서풍이 자주 유입되고 아열대 서태평양에서 따뜻하고 습한 고기압이 발달한 모습 ⓒ기상청

절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한의 기온은 -2.1도에서 0.9도로, 소한의 기온은 -1.2도에서 0.8도로 올랐다. ‘큰 추위’라는 뜻을 지닌 대한보다 ‘작은 추위’를 의미하는 소한의 기온이 더 낮았다. ‘대한’ ‘소한’에게 자리를 내주며 24절기의 의미도 퇴색되는 상황이다. 식물생태계도 질서를 잃었다. 국립공원연구원이 지난 4월 펴낸 ‘국립공원 기후변화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3월10월에 피었던 복수초가 2020년에는 1월18일 개화했다. 히어리·노루귀·생강나무 등도 각각 개화시기가 느려지거나 빨라지는 등 들쭉날쭉한 추세를 보였다.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등 상록침엽수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동물도 기후변화에 혼란을 겪고 있다. 조류 박새 번식 시기는  2011년 4월21일에서 2020년에는 3월29일로 앞당겨졌다. 산개구리류 첫 산란은 점차 빨라지고, 알 개수는 낮아지는 추세다. 홍도에 서식하는 괭이갈매기는 수가 감소하고 있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멸치 등 먹잇감이 줄어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 날씨가 요동치고 있다. 기상청은 “한국이 기후 위기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2018년 여름에는 강원도 홍천은 기상 관측 사상 최고인 41도, 서울도 39.6도까지 올라 중동보다 더 뜨거웠다. 폭염은 한 달 넘게 이어졌다. '열돔(뜨거운 공기)' 속에 갇혀 48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등 최악의 폭염 피해를 겪었다. 기상청은 2020년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서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사망위험이 5% 증가하고, 폭염 시기 사망 위험이 8% 증가했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 해인 2019년에는 태풍 7개가 우리나라를 덮쳤다. 마지막 태풍 ‘미탁’은 10월3일 개천절까지 세력을 과시했다. 그러더니 2020년 여름에는 54일간 ‘최장 장마’가 이어졌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물 폭탄이 멈추지 않았다. 산사태도 6175건이나 발생해 역대 3번째를 기록했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자마자 태풍 3개가 연이어 한반도를 강타했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최근 30년 동안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6도 올랐다. 같은 기간 지구 표면 온도(0.8도) 보다 2배나 빨리 상승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온난화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열섬현상 등이 기온 상승 폭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기온 변화. 최근 30년 간 연평균 기온은 1.6도 상승했다. ⓒ기상청
우리나라의 기온 변화. 최근 30년 간 연평균 기온은 1.6도 상승했다. ⓒ기상청

지구온난화가 강력한 태풍 부른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이산화탄소다. 이산화탄소는 열을 갖고 있는 능력이 뛰어나 대기의 온도를 높인다. 농도가 증가할수록 열을 더 많이 붙들고 있다. 2020년 우리나라 이산화탄소(CO2) 배출 농도는 417.9ppm인데, 지구 평균보다 7ppm 더 높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는다. 태양과 가까운 적도 지역은 많은 열이 쌓이면서 고온다습해지고 대기가 불안정해진다. 기압에 일시적인 변화가 생기면서 주변 지역 공기가 몰려들어 상승하면 소용돌이가 친다. 이때 적란운(쌘비구름)이 발생해 비를 뿌린다. 적란운의 세기가 세지면서 이동하다가 지구 자전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발생하는 게 바로 태풍이다. 태풍이 쌔지는 것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 대기 중으로 증발하는 물분자가 많아져 태풍의 연료인 수증기가 공기 중에 가득 차게 된다. 공기 상·하층부 바람 차이가 작으면 태풍의 힘이 강해진다. 차동현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팽이 아래위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팽이가 멈추듯이 상층과 하층의 바람 차이가 커지면 태풍은 약해진다. 반대로 차이가 거의 없으면 태풍의 강도가 더 커지게 된다”며 “온난화로 고위도 지역 온도가 상승하면서 상하층부 바람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대별 강수량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상청
연대별 강수량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상청

지구 온난화에 화난 태풍이 거칠어지고 있다. 2020년 8월 말과 9월 초 태풍 바비와 마이삭, 하이선이 잇따라 한반도를 강타했다. 54일이라는 역대 최장 장마까지 겹쳐 1조2585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도 46명에 달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피해(재산 3883억원, 인명 14명)의 약 3배를 넘어섰다. 기상이변의 원인은 지구온난화다. 미국 MIT 엠마뉴엘 교수와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엘스너 교수는 “해수온도 상승으로 최강 태풍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프린스턴 대학 GFDL 연구실의 넛슨 박사도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인한 수온 상승이 강한 태풍의 수를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와 최근 24절기 기온 변화 ⓒ기상청
과거와 최근 24절기 기온 변화 ⓒ기상청

라니냐에서 엘니뇨로 옮겨가는 올해 우리나라는 ‘극한 폭염’ 가능성이 높아 초강력 태풍이 한반도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한상은 기상청 기상전문관은 “아주 강한 태풍의 발생 횟수는 증가하고 있고, 그 영향은 해수면 온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제일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재해연보’에 따르면,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전체 자연재해 중 98.4%를 차지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지구온난화가 빨라질수록 수증기와 에너지는 계속 증가해 강력한 태풍이 올 가능성이 더 높다”고 밝혔다.

과거 30년과 최근 30년 계절 길이 변화 추세 ⓒ기상청
과거 30년과 최근 30년 계절 길이 변화 추세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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