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더 이상 감독 탓 안 먹혀…이제 실력을 입증해야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9 13:00
  • 호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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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불협화음으로 올 시즌 무득점에 그친 이강인
“빅리그보다 프랑스·네덜란드 무대 노려 봄직” 지적도

현지시간으로 5월23일, 이강인은 SD 우에스카와의 2020~21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최종전에 선발 출전했다. 총 80분을 소화한 그는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격포인트는 없었지만, 후반 들어 우에스카 수비진을 붕괴시키며 공격 흐름을 지배했다. 특히 후반 12분 미드필드 지역에서 수비수 3명의 압박을 드리블로 제친 뒤 날린 강력한 중거리슛은 이강인의 개인 능력을 집약시킨 장면이었다. 발렌시아 지역지 ‘엘데스마르케’도 “후반 12분의 플레이는 리오넬 메시를 연상시키는 마스터 클래스였다”고 극찬했다. 

동시에 이 경기가 발렌시아에서 이강인이 치른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다는 보도도 쏟아졌다. 발렌시아와의 계약이 1년 남은 상황에서 최근까지도 재계약 제의를 뿌리쳤기 때문이다. 올여름은 발렌시아가 이강인을 이적시켜 이적료를 회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2년 전부터 출전 시간을 더 보장받을 수 있는 팀으로의 임대 혹은 완전 이적을 추진했던 이강인도 이번에는 반드시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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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성향 따라 들쭉날쭉…유망주라는 우산도 곧 접혀

올 시즌 이강인이 리그에서 남긴 개인 성적은 총 24경기 출전에 0골 4도움이다. 선발 출전은 15경기였고, 총 출전시간은 1267분으로 경기당 평균 53분 정도였다. 주전이라고 보기엔 공격포인트와 출전시간 모두 애매했다. 이강인의 포지션 경쟁자였던 카를로스 솔레르(32경기 출전, 11골 8도움), 곤살로 게데스(31경기 출전, 5골 5도움) 등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확연히 느껴진다. 유럽 축구 통계 사이트인 ‘후스코어드닷컴’의 개인 평점에서는 6.61점으로 팀 내 12위였다. 여러 면에서 이강인은 주전보다는 그들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백업 카드로 분류됐다. 

프로 계약 이후 세 번째 시즌이었지만 이강인은 이전 시즌들과 비슷한 행보를 답습했다. 발렌시아의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최고의 재능이라는 기대감 속에 출발하지만, 감독의 전술적 성향과의 부조화로 길을 잃고, 시즌 중 감독 교체가 발생하면 다시 경쟁력을 증명해야 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올 시즌도 하비 그라시아 감독이 떠나고 팀의 소방수 전문인 보로 곤살레스 단장이 감독대행으로 앉자 이강인의 출전시간과 활약 빈도가 늘어났다. 

이강인 입장에서는 지난 3년간 발렌시아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감독 운이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감독의 전술적 성향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기복 심한 선수라는 이미지도 씌워질 수 있다. 3년 동안 이강인이 만난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알베르트 셀라데스, 하비 그라시아 감독 모두 수비 조직력에 무게중심을 두고 강한 압박과 빠른 공격 전환을 무기로 하는 지도자였다. 발렌시아가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스쿼드에서 상위권에 드는 팀이 아닌 만큼 안정적인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축구보다 견실하고 안정적인 축구를 하는 지도자가 필요했던 현실이었다. 

문제는 이강인의 스타일이 그런 감독들의 성향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인 이강인에게 맞는 옷은 2019년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에서 골든볼(MVP)을 차지하며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을 때의 활약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원톱, 혹은 투톱 아래에 배치돼 확보된 공간 속에서 최대한 공을 많이 소유하며 개인 기술을 발휘하는 공격적인 플레이다. 그런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공을 차단해 다시 이강인에게 배급하고, 많은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근면한 수비력의 미드필더가 뒤를 받쳐야 한다. 

발렌시아에서 이강인에게 그런 환경이 주어진 것은 보로 곤살레스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 혹은 리그에 비해서는 상대팀의 전력이 약한 컵대회 때다. 올 시즌 이강인이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경기의 상대도 이미 2부리그 강등이 확정된 우에스카였다. 팀이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전체적인 압박과 간격 유지를 신경 써야 하는 중상위권 팀과의 경기에서는 감독들이 선발 투입을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옵션이라는 뜻이다. 

올해로 만 20세가 된 이강인은 아직 어린 선수지만, 더 이상 유망주라는 보호 논리는 통할 수 없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기복 있는 플레이를 펼칠 때 과거에는 ‘유망주니까 괜찮다’라는 우산을 펼치며 그 경험이 선수를 발전시킬 계기가 되길 기대했다면, 앞으로는 즉각적인 평가를 통해 다음 경기 혹은 잔여 시즌의 경쟁에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적 통해 환경과 동기부여 모두 바꿀 필요 있어

원정 경기로 리그 최종전을 치르며 시즌 일정을 마무리한 이강인은 발렌시아로 복귀한 뒤 5월25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대표팀에 소집된 그는 도쿄올림픽까지의 일정을 치르기 위해 당분간 국내에 머무를 예정이다. 올여름 이강인은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 유럽 현지 에이전트가 이강인의 새 소속팀을 찾으며 협의를 이어가고, 이강인 자신은 도쿄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량을 증명하는 동시에 메달 획득을 통한 병역 문제 해결을 노린다.

U-20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세계적인 유망주로 명성을 떨쳤지만, 지난 2년 동안 확실한 발돋움을 하지 못했다. 올림픽은 이강인에 대한 관심을 다시 집중시킬 수 있는 기회다. FIFA 주관 대회에 비해 비중이 적은 게 사실이지만, 남미를 중심으로는 연령별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만큼 이강인도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다. 게다가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낼 경우 병역 혜택이 주어지는 만큼 향후 이강인이 유럽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데 최대 장애물이 사라진다.

여전히 유럽 내 많은 구단이 이강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 클럽들은 이강인의 능력과 장단점을 파악 중이다. 지난 2년간 임대를 타진한 팀들이 이적 시장에 나온 이강인을 주목할 가능성이 높다. 잉글랜드·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의 구단도 아직 만 20세에 불과한 이강인의 공격적인 잠재력을 활용하길 원한다. 발렌시아와의 잔여 계약기간도 1년밖에 남지 않아 협상에서 언급될 이적료가 이전보다 내려간 점도 메리트다. 현재 시장에서 언급되는 이강인의 이적료는 1000만~1500만 유로(약 136억~200억원) 수준이다. 올여름에 팀을 옮기는 것은 무난하리라고 점쳐지는 이유다. 

관건은 이강인 자신이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갈증이 컸다. 전술적인 지원도 받지 못했다. 수비적인 축구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빅리그 내 하위권 팀보다는 리그 내에서 공격적인 주도권을 가져가고 클럽 대항전 출전을 노릴 수 있는 프랑스·네덜란드의 상위권 팀이 낫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리그에서의 성과는 이미 나온 만큼 상위권 팀들이 더 확신을 갖는 데는 올림픽에서의 성과가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이강인 자신의 동기부여도 커리어 사상 첫 이적을 통해 커질 수 있다. 프로 생활은 3년이었지만 유스 시절까지 합하면 10년간 발렌시아 한 팀에만 몸담았다. 이강인을 향한 구단 측의 과보호가 성장에 반드시 도움이 됐다고만 볼 수 없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도전과 생존 경쟁이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상쇄시키려는 선수의 노력을 끌어낼 가능성이 높다. 올여름 이강인은 많은 것을 변화시켜 선수로서 확실한 도약대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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