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에게 인사 받고도 뒷맛은 ‘씁쓸’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9 14:00
  • 호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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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 미국 투자액 400억 달러…갈수록 악화되는 국내 고용 상황 타개 아쉬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동행한 국내 4대 그룹이 약 4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170억 달러,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기업들이 약 140억 달러, 그리고 현대자동차가 미국 내 전기차 생산과 충전 인프라 확충을 위해 74억 달러를 투자한다.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알려진 투자계획들을 다시 정리한 것이었지만,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업 대표들을 일으켜 세워 감사의 뜻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특별히 감사를 표시해야 할 만큼, 투자 유치와 고용 확대는 중요한 문제다. 미국의 고용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의 비농업 신규 고용은 26만6000명에 그쳤다. 기대했던 100만 명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나쁜 수준이었다. 실업률도 6.1%를 기록해 3월의 6.0%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미국의 일자리나 임금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의 투자는 그래서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떨까. 기업의 해외투자는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일이다. 투자액보다 훨씬 큰 수익을 기대하고 내린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 국가적으로 보면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10년간 제조기업들의 해외투자가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를 압도하면서 일자리가 대거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밝혔다. 집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제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연평균 12조4000억원에 달했던 반면, 외국인 직접투자는 절반도 안 되는 연평균 4조9000억원이었다. 결국 같은 기간 직접투자 순유출액은 연간 7조5000억원 발생했고, 이로 인해 일자리는 매년 4만9000개가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 일자리들을 국내에 유치할 수 있었다면 작년 실업률은 4.0%에서 3.7%로 개선되었을 것으로 연구원은 추정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일자리는 누가 만드는가

물론 이 계산에는 다소의 과장이 있다. 일단 투자가 곧 일자리는 아니다. 적지 않은 직접투자가 인수·합병을 위한 지분 인수다. 일자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처음부터 국내 유치가 어려운 사업도 많다. 요즘 해외 직접투자는 대부분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해 이뤄진다. 해외투자를 줄인다고 바로 국내 대체투자가 늘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확인한 4대 그룹의 대미 투자계획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투자유치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미국 내 제조업과 연구·개발(R&D) 시설의 리쇼어링(reshoring·국내 이전)을 요구하며 세금 감면과 이전 비용 지원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국내 고용 사정이 미국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65만 명 증가했다. 2014년 8월 이후 가장 많이 증가했지만 늘어난 취업자의 상당수는 세금을 투입해 만든 일자리였다. 60세 이상 일자리 증가가 47만 개로, 늘어난 대부분의 일자리를 차지했다. 20대 실업률은 높아지고, 30대와 40대에서 취업자 수가 감소하는 등 경제활동이 활발한 연령대의 고용 부진은 여전했다. 주 36시간 미만 일하며 추가 근로를 원하는 인구와 구직활동은 하지 않지만, 취업이 가능한 잠재 경제활동인구까지 합친 체감실업률은 25.1%에 달한다. 정부 출범 당시 58%였던 20대의 취업률은 현재 55%다.

일자리는 결국 경제 성장을 통해 만들어진다. 물론 성장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예전보다 못하다. 취업유발계수는 국내 생산이나 투자, 수요가 10억원 발생할 때마다 늘어나는 취업자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취업유발계수는 꾸준하게 하락해 왔다. 1990년 43.1명에서 2000년 25.7명, 그리고 2010년 13.9명으로 하락했고 2018년에는 10.8명에 불과하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자동화, 무인화, 로봇화로 그만큼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와 산업용 로봇 확산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산업용 로봇은 지난해 노동자 1만 명당 710대다. 세계 평균의 8배로 일본과 독일에 앞서 단연 1위다.

그나마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많은 산업,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업종으로는 서비스 산업이 꼽힌다. 취업유발계수 상위 10개 산업 중에서 8개가 서비스 업종이다. 제조업의 평균 취업유발계수는 6.2명인데 서비스업은 12.8명이다. 국내 서비스 산업은 상대적으로 발전의 여지도 크다. 기재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산업 부가가치 중에서 서비스업 비중은 2018년 기준 60.9%다. 미국의 79.8%, 일본 69.6%와 비교해 훨씬 적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10년째 표류, 왜?

하지만 정부가 서비스 산업 육성에 얼마나 진지한지는 의문이다. 서비스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지원하기 위해 2011년 12월 제정안 발의 후 무려 10년이 넘도록 발의와 폐기를 반복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은 아직도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의료 민영화와 원격의료를 제외해 속 빈 강정이라는 소리를 듣는데도 마찬가지다. 2012년 당시 기재부 정책조정국장으로 입법을 추진했던 사람이 홍남기 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다. 물론 몇 가지 법 조항만 갖춘다고 갑자기 우리나라의 서비스 산업이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고 고용 문제가 돌파구를 찾게 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말 그대로 기본적인 법안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10년을 보면서 일자리 문제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믿기는 어렵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공공부문의 역할이 있다. 한국은 취업자 대비 공공부문 일자리가 7.6%에 불과하다. OECD 평균 21.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기업의 투자 촉진이 어렵다면 정부라도 나서서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생기는 투자’를 해야 한다. 빈 강의실의 전등을 끄는 에너지 절약 도우미나 재활용품 분리배출 안내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아니다. 완공과 동시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토목, 건설 투자만으로도 안 된다. 자동화 확산에 따른 인건비 절약 추세,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코로나19 집단면역 확보 후 경제가 회복돼도 정규직 고용 증가가 일어나기는 어렵다.

비대면 경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디지털 상거래가 지난해 전체 소매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유통산업의 구조조정도 계속될 것이다. 청와대는 4대 그룹의 대미 투자 확대를 위해 세액공제, 인프라 구축 등 적극적인 투자 유인 제공을 미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미국에 요청하는 일을 나라 안에서는 할 생각이 없는지 궁금하다. 현 정부에서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전일제 근로자는 195만 명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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