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독재자 루카셴코의 만행, 더 두고 볼 수 없다”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30 13:00
  • 호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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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활동가 체포 위해 운항 중이던 여객기 긴급 납치
“국가가 주도한 테러행위” 국제사회 비난 빗발

소련연방 공화국이었던 벨라루스가 다시금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9개월 전 대선 부정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초강경 폭력 진압으로 이에 대응했던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여객기 납치 사건으로 재차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1994년 이래 27년간 장기 집권한 그는 공공연한 히틀러 추종 발언, 코로나19 바이러스 부정 발언 등으로 화제를 낳기도 했다. 현재 벨라루스는 지난 대선 결과를 유럽연합(EU)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동맹국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지원에만 의존하고 있어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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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경찰이 2017년 3월 26일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야권 활동가이자 언론인 로만 프라타세비치를 구금하고 있다.ⓒAP 연합

러시아 “탁월한 특별작전” 벨라루스 편들어

벨라루스 정부의 민항기 납치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난 5월23일 171명의 승객을 태우고 그리스에서 리투아니아로 향하던 라이언에어는 EU 영공을 넘기 직전 벨라루스 당국의 항로변경 요청으로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 착륙했다. 벨라루스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폭탄테러 제보를 입수했다며 전투기까지 동원해 민항기를 호송하며 강제 착륙시켰다. 하지만 폭탄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유력한 야권 활동가이자 언론인 로만 프라타세비치(26)와 학생인 그의 애인 소피아 사페가(여·23)가 체포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망명 중이던 프라타세비치는 벨라루스의 영향력 있는 텔레그램 뉴스채널 ‘네흐타(Nexta)’의 공동 창립자다. 폴란드에 망명 중인 또 다른 네흐타 창립자 스테판 푸틸로도 현지 매체를 통해 “‘이제는 네 차례’라며 ‘벨라루스로의 강제납치가 아니라 현지에서 총살할 것’이라고 했다”는 협박 내용을 증언했다. 지난해 유력한 대선후보이자 대표적인 야권 지도자인 스베틀레나 티하놉스카야 역시 이들과 함께 테러활동 연루자로 형사 기소되었고,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리투아니아에 망명 중이다.

EU 정치권은 외국 민항기를 강제 착륙시킨 벨라루스 정부를 크게 비난했다. 특히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전례 없는 사건”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비판했으며, “국가가 주도한 테러행위”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벨라루스의 반정부 시위는 서구의 음모라고 묘사했던 러시아 국영방송과 친푸틴 세력은 “탁월한 특별작전” 또는 “아름답게 해냈다” 등으로 사건을 미화하기도 했다. 

벨라루스의 이 항공기 납치 사건에 대해 EU는 강경한 제재조치를 추가했다. EU 27개국 정상들은 5월24일 임시회의를 열고 하루 만에 보기 드문 만장일치로 벨라루스 항공사의 EU 영공비행 및 공항 사용 금지를 합의했다. 하지만 스웨덴 ‘V-Dem 인스티튜트’의 올가 드린도바 정치분석가는 정부의 탄압으로 이주를 원하는 이들에겐 이 조치가 장벽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벨라루스는 지난해 말부터 육로 국경을 사실상 폐쇄했고, 항공만이 거의 유일한 출국 경로였기에 이로 인해 벨라루스인들은 국경 안에 갇히게 된 셈이다. 

독일 정계와 언론에서는 벨라루스에 대한 추가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파울 지미악 기민당 사무총장은 “루카셴코 정권하의 검사·판사 등 사법계에 대해서도 제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카트린 에케하르트 연방의회 녹색당 원내대표는 “벨라루스의 석유 및 포타슘 회사들도 제재조치에 추가로 포함시키고, 위협받는 현지 언론인을 위해 독일 정부가 긴급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벨라루스에 민주적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30억 유로에 해당하는 EU 투자 프로그램을 유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타게샤우 방송도 5월23일 ‘효과적인 제재가 필요한 시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야권 및 국제사회와 대화할 의사가 없는 루카셴코 정권에 대한 제재 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벨라루스 정부에 대금 지급 차단’을 주장해 온 야권에 힘을 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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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020년 9월23일 민스크에서 상·하원 의원, 고위 공직자 등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격적으로 열린 비공개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민스크타스 연합

정부 “야권 인사들 찾아내 파괴할 것”

‘벨라루스 내 고문에 관한 국제조사위원회’의 세르게이 우스티노프 공동창립자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벨라루스인들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위해 Belaruskali(철분비료회사)·GrodnkAzot(화학회사)·MAZ(기계류 회사) 등 국영기업들과 무역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비즈니스는 “자국민에게 대대적인 고문과 탄압을 가하는 안보 세력에 크게 투자하고 있는 정부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벨라루스 정부의 공식 통계는 지난해 한국 수출액을 약 4000만 달러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우스티노프에 의하면 지난해 선거불복 운동으로 3000건 이상이 정치적 이유로 형사 기소되었고, 5000명 이상이 고문 피해를 당했지만 벨라루스 검찰은 단 한 건도 기소하지 않았다. 아울러 시민들이 최소 5명 사망하고, 3만7000명이 체포됐다.  

현재 유럽에서는 이런 벨라루스 정부의 국가폭력에 맞서는 고소들이 다수 시작되고 있다. 4명의 독일 변호사가 고문 피해자들을 대리해 독일연방검찰에 루카셴코를 반인류 범죄로 고소했다. 이 외에도 체코·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대선 이후 지속되어 온 반정부 시위는 최근 들어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루카셴코 정권은 야권 탄압 수위를 크게 높이고 있다. 벨라루스 내무부 차관은 국영방송 S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항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야권과 싸울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의 주소, 가족의 소재, 누구와 소통하는지 등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으며, 공소시한의 제한 없이 그들을 찾아내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벨라루스 당국은 특히 독립 언론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지난주 자국 내 최대 독립 인터넷 매체인 ‘TUT.BY’는 강제 폐쇄되고 탈세 혐의를 빌미로 기소당했다. 경찰은 여러 사무실 및 편집자들의 자택도 기습 수색했다. 현지 인터넷 사용자의 63%에게 뉴스를 제공해 온 이 매체는 중도를 표방하지만, 친정부 언론은 정부에 비우호적인 일부 보도를 이유로 야권 매체라고 칭해 왔다.

벨라루스는 지난 4월 매스미디어법 개정을 통해 언론인의 정부 비판과 불허된 대규모 집회 생중계도 불법화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의하면 벨라루스는 유럽 내 기자들에게 제일 위험한 국가다. 또한 벨라루스기자협회는 현재 27명의 언론 종사자가 수감 중이거나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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