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 100억대 민간 기부 받으면서 민간 평가 거부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4 14:00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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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인 542곳, 투명성 자료 미제출로 평가 외면…”굳이 평가받을 필요 없다고 판단”

전체 수익금의 86%를 민간 기부금에 의존하는 노무현재단이 민간 감시기관의 평가는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노무현재단의 기부금 수익은 134억원으로, 평가 대상 재단법인 중 기업이 운영하는 곳을 빼면 그 규모가 최상위권이다. 노무현재단 측은 “법적 의무가 아닌 평가를 굳이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무현재단을 비롯해 민간 평가를 외면한 곳은 500여 곳에 이른다. 이를 두고 “투명성을 확인할 자료 공개를 꺼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저널은 공익법인 감시재단 한국가이드스타(이사장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2020년 공익법인 평가 결과자료’를 5월24일 입수했다. 여기에 따르면, 노무현재단은 ‘투명성 및 책무성 지표’를 가이드스타에 제출하지 않아 별점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나타났다.

투명성·책무성 지표는 모두 8가지다. ①국세청 공시서류 및 외부감사보고서 공개 여부 ②연례보고서 또는 사업성과 보고서 공개 여부 ③기부자 개인정보 처리 정책 공개 여부 ④중요 서류 보존·유지·폐기 관련 내부 규정 유무 ⑤총회 또는 이사회 회의록 공개 여부 ⑥특수관계인에 관한 내부거래 정책 유무 ⑦주요 직원 리스트 공개 여부 ⑧설립 시 출연자 정보 기재 여부 등이다. 이 중 ‘국세청 공시서류’와 ‘출연자 정보’는 관련 법규에서 요구하는 공시 의무 사항이다. 가이드스타는 투명성·책무성 지표에 관한 자료를 제출한 법인에 한해 별점 평가를 매기고 있다.

6월1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노무현재단의 현판과 건물ⓒ시사저널 이종현
6월1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노무현재단의 현판과 건물ⓒ시사저널 이종현

평가 피한 법인 92.6%…“수차례 독려전화에도 자료 제출 거부”

가이드스타 관계자는 “최초 평가 대상 법인 585곳에 공문을 보내 투명성·책무성 지표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답이 없었다”며 “2~3차례 독려전화도 했지만 끝내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평가 대상 585곳 중 노무현재단을 포함한 542곳(92.6%)이 자료 미제출로 별점 평가 대상에서 빠졌다. 가이드스타는 2015년부터 매년 공익법인 평가를 위해 투명성·책무성 지표를 반영해 왔다.

시사저널이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와 SNS, 공시자료 등을 통해 투명성·책무성 지표 자료를 찾아봤다. 그 결과 8가지 자료 중 4가지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그 4가지는 ‘중요 서류 처리규정’ ‘내부거래 정책’ ‘직원 리스트’ ‘이사회 회의록’ 등이다. 박두준 가이드스타 연구위원은 “투명성·책무성 지표는 외국의 평가지표를 기반으로 한국 사정을 반영해 만든 객관적인 기준”이라며 “미국에서는 해당 지표들이 공시 의무사항에 포함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된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자신을 ‘재단 평생회원’으로 소개한 성아무개씨는 지난 4월5일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사회 회의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썼다. 그러면서 “외부 공격이나 힘든 상황이 있는 건 이해하지만 어떤 활동을 하는지 대략적으로라도 알 수 있었으면 한다”고 글을 남겼다.

 

사무실에 가도 회의록 못 봐…“정부에는 모두 제출한다”

노무현재단은 정관을 통해 이사회 회의록 작성을 명문화해 놓았다. 또 정관에는 “이사장은 회의록을 법인의 주된 사무소에 비치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시사저널은 6월2일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 본사에 들러 회의록 열람을 요청했다. 하지만 관계자로부터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관계자는 중요 서류 처리규정과 내부거래 정책에 대해 “세부 규정은 없지만 일반적인 규정은 모두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리스트에 관해서는 “개인정보 때문에 일일이 공개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재순 노무현재단 사무총장은 “한국가이드스타에 자료를 제출하는 게 의무사항도 아니고 굳이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제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에는 이사회 회의록을 포함해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실 관계자는 “회의록을 제출받고 있다”면서도 “회의록 공개 여부는 노무현재단이 판단할 일”이라고 했다.

노무현재단은 외부 평가를 외면한 법인 중 기부금 의존율이 비교적 높았다. 노무현재단은 가이드스타의 별점 평가 대상 제외 법인 542곳 중 기부금 수익 규모가 17번째로 크다. 지난해 모은 기부금은 134억원으로, 전체 수익 154억원 중 86.9%를 차지했다.

 

“평가받은 곳과 안 받은 곳 차이점 분명 있을 것”

모집단을 좁게 설정하면 그 규모는 더욱 두드러진다. 기부금 100억원이 넘는 재단법인 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삼성그룹), 엔씨문화재단(엔씨소프트), 홍익회(한국철도공사) 등 특정 기업의 돈으로 운영되는 재단을 빼면 6곳이 남는다. 노무현재단 기부금은 이 가운데 서울대학교발전기금(1151억원) 다음으로 많다.

단 서울대학교발전기금은 서울대의 공식 모금기관으로 설립 주체가 국립대다. 개인이 모여 설립한 노무현재단과 성격이 다르다. 노무현재단은 설립근거법이 민법이고, 서울대학교발전기금은 민법보다 규제가 강화된 공익법인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목적사업도 서울대 발전 지원과 장학사업 등으로 한정돼 있다.

박두준 가이드스타 연구위원은 “우리가 민간 기구다 보니 모든 공익법인에 평가를 강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평가받은 곳과 안 받은 곳은 차이점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여전히 많은 공익법인이 투명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공개하기 꺼려 하고 있다”며 “평가 결과가 공개되면 투명성이 확보되고 후원자들도 믿고 기부할 수 있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별점 평가 대상에서 빠진 공익법인 가운데 총 수익 대비 기부금 비중이 99%가 넘는 법인은 모두 13곳으로 나타났다. 이 중 특정 기업의 돈으로 운영되는 곳을 제외하고 기부금 수익이 많은 순서대로 살펴봤다. 그 결과 옥스팜코리아(119억원), 그린피스(104억원),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56억원),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49억원), 한국유방건강재단(32억원) 등 순으로 나타났다. 주로 국제구호단체의 한국지부가 포함돼 있었다.

▣ 국내 최초·유일 감시기관 한국가이드스타…‘GSK 인덱스’로 별점 매겨

2007년 설립된 한국가이드스타는 국내 최초의 공익법인 감시재단이다. 국세청이 공시한 공익법인 결산서류를 제출받도록 지정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가이드스타는 자체 데이터베이스 분석 프로그램을 활용해 매년 공익법인의 회계정보와 투명성을 평가하고 있다. 또 사회복지법인 분석자료, 기업 재단 현황, 기부금 수입 TOP20 등 다양한 내용의 비영리분야 분석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기업이 후원·협력하고자 하는 기부단체가 제대로 된 자격을 갖췄는지 검증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2017년부터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가이드스타는 국내 모든 공익법인을 평가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우선 △의료·학교법인 △설립 주체가 ‘국가’인 법인 △설립 5년 미만의 법인 △최근 3개년도 결산서류 미공시 법인 △외부회계감사 미제출 법인 등은 제외한다. 그다음 사업비나 관리비, 모금액, 직원 수 등이 ‘0’인 법인은 2차로 걸러낸다. 최근 3년 내에 언론에 부정적으로 보도됐거나 해외에 본부를 둔 법인도 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2020년 국세청 의무 공시 공익법인 1만514곳 중 585개 법인을 최초 평가 대상으로 뽑았다. 이 중에서 투명성·책무성 지표 관련 자료를 제출한 곳이 최종 평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최종 평가 대상으로 선정되면 ‘GSK 인덱스’에 따라 별점을 매기게 된다. GSK 인덱스는 가이드스타가 만든 평가지표다. 이는 미국 채리티 내비게이터, 영국 PQASSO 등 해외 비영리단체 감시기관 9곳의 평가지표 또는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가이드스타는 GSK 인덱스 활용을 위해 지난해까지 각 공익법인의 공시서류만을 참고했다. 반면 올해는 공시서류에 없는 투명성·책무성 지표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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