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이후 두 번째 내놓은 《백년의 독서》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0 11:00
  • 호수 16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든 '독서'

1980년대 우리 출판계 베스트셀러군에는 수필집이 있었다. 이 시대를 풍미한 작가는 김동길, 김형석, 이어령, 안병욱, 유안진 등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군사정권으로 인해 진보적 지식이 대학 등 지하에서 비밀리에 퍼져갔다면, 위에서는 이런 지식인들의 문학적 미셀러니나 에세이들이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자리하던 이런 수필집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갔다. 이유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치열한 현장 속에서 철학이나 신학, 문학이 자리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년의 독서| 김형석 지음| 비전과리더십 펴냄 | 264쪽 | 1만4000원》
《백년의 독서| 김형석 지음| 비전과리더십 펴냄 | 264쪽 | 1만4000원》

그런 시공간을 넘어서 지금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를 꼽으라면 지난해로 상수(上壽·병 없이 하늘이 내려준 나이 백 살)를 넘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다. 1920년 평남에서 출생한 김 교수는 1960년부터 《고독이라는 평》 《영원한 사랑의 대화》 등 명수필집을 남겼다. 이후 종교에 관한 저술이나 근작 《백년을 살아보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가 100세를 넘긴 후 낸 두 번째 책이 독서에 관한 기록이다. 제목 앞에는 ‘김형석 교수를 만든’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 김 교수가 지금을 이룬 데는 독서가 상당 부분 역할을 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저자는 독서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가 크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뿌리가 깊어야 하고 튼튼한 줄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잎사귀들이 자라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열심히 받아들이고 있는 정보와 지식들은 그 잎과 꽃에 해당한다…. 그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유감이다. 이제라도 책을 읽는 풍토와 독서를 생활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사회 모든 면에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저자의 주장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이 자신이 어떻게 책을 읽었고, 그 자양분들이 100년간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읽을 만한 책을 구하기 어려웠을 때부터 자신의 지적 체계를 세우는 과정에서 책들이 했던 역할을 차분하게 나열한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독서편력을 떠나 한 사람이 책을 통해 자신의 지적 체계를 어떻게 구축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숭실중학 2학년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당차게 읽어냈던 것을 시작으로 저자는 톨스토이를 섭렵한다. 이후 저자는 도스토옙스키 등을 통해 톨스토이와는 다른 문학적 아우라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길인 철학의 길을 안내한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니체, 헤겔 등을 찾아가는 여정도 소개한다.

또 저자는 전공분야는 물론이고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문학, 역사, 여성 문제 등에 관한 저작도 소개한다. 마지막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통해서는 독서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성숙시킬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독서의 수준이 곧 국민의 수준’임을 강조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독서에 있다면서 책을 가까이하는 삶을 강조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