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자의 증언 “쿠팡 직원들에 수차례 화재 확인 요청했는데 묵살”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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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퇴근하라던 직원들…안내도 없이 황급히 빠져나가”
6월20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모습. 지난 17일 발생한 화재로 뼈대만 남아있다. ⓒ 연합뉴스
6월20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모습. 지난 17일 발생한 화재로 뼈대만 남아있다. ⓒ 연합뉴스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당시 쿠팡 측이 노동자의 신고를 수차례 묵살하고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제보자는 쿠팡 물류센터가 과거에도 화재와 잦은 경보 오작동 등이 있었지만 심각한 안전불감증으로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결국 소방관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덕평 쿠팡물류센터 화재는 처음이 아니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청원인은 쿠팡 측이 화재 당일 이상을 감지했던 노동자의 조치 요구를 여러차례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뒤늦게 사태 심각성을 파악한 직원들은 내부에 남아있던 노동자들에게 별다른 고지도 없이 자신들만 먼저 빠져나갔다고 폭로했다. 

6월19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지난 17일 건물 내부에 진입했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경기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김동식 구조대장을 찾기 위해 내부에 진입했던 구조대원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소방당국은 이날 낮 12시10분께 김 대장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의 유해를 물류센터 건물 지하 2층에서 발견했다. ⓒ 연합뉴스
6월19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지난 17일 건물 내부에 진입했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경기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김동식 구조대장을 찾기 위해 내부에 진입했던 구조대원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소방당국은 이날 낮 12시10분께 김 대장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의 유해를 물류센터 건물 지하 2층에서 발견했다. ⓒ 연합뉴스

"연기 차오른 모습에 확인 요청했지만 묵살"

청원인은 자신을 지난 17일 화재 당일 쿠팡 덕평물류센터 1층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노동자로 소개하며 "기적을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던 소방대장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무엇이든 해보려 청원부터 올린다"고 적었다. 

그는 화재 당일 "(오전) 5시10분~15분경부터 화재 경보가 울렸지만, 경보가 울려도 하던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며 "잦은 화재 경보 오작동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처음 화재 경보를 들은 날 관계자로부터 "오작동이니 신경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하라"는 답을 들었고, 이후로도 잦은 화재 경보 오작동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청원인이 사태 심각성을 느낀 것은 그로부터 10여 분 후가 지난 뒤였다. 그는 "5시26분경 1층 심야조가 퇴근 체크를 하고 1층 입구로 향하는데, C구역에서 D구역으로 연결된 1.5층으로 이어지는 층계 밑쪽 이미 가득 찬 연기와 어디선가 계속 솟아 오르는 연기를 목격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되는 화재 경보로 센터 셔터문이 차단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고, 함께 퇴근하던 심야조 동료분들은 진짜 불난 것 같다며 입구까지 달리기 시작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대피하던 청원인은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물류센터 내부에서 화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일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쿠팡 직원들에게 "'저기 안에 사람들은 어쩝니까. 다 알게 해줘야죠' 말했지만, 본인들 뛰어나가기 바빴고 저는 허브 쪽 동료들을 향해 미친 듯이 뛰고 손 흔들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소리쳤다"고 했다. 

청원인은 "핸드폰이 있었다면 빠른 신고부터 했겠지만, 먼저 나간 동료들이 있었기에 신고나 화재 제보·조치는 동료들이 해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층 입구 검색대 보안요원이라면 (무전기도 있고 핸드폰도 소지하실 수 있는 물류센터 보안팀 관계자) 제가 핸드폰 가지러 가는 것보다 더 빠른 조치가 가능할 수 있어 화재 제보와 조치 요청을 드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원인의 기대와 달리 즉각 신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경기 광주소방서)의 영결식이 6월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동료 소방관들이 헌화·분향 후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경기도는 고인에게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1계급 특진과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경기 광주소방서)의 영결식이 6월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동료 소방관들이 헌화·분향 후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경기도는 고인에게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1계급 특진과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눈 감을 때마다 웃던 직원 모습 떠올라"

청원인은 직원에게 실제로 화재가 발생했으며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거듭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냉대였다. 그는 "(보안요원이 자신을)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보면서 '불난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알아서 할 테니까 퇴근이나 하셔라. 어차피 화재가 맞아도 나가는 길 여기 하나니까 불났으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라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청원인은 재차 "연기가 심하다. 확인도 한번 안해보고 왜 자꾸 오작동이라 하느냐"며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그는 "듣는 척도 안하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나 1분1초가 다급하니 다른 관계자를 찼다가 지하 2층와서 다른 분께 또 다시 화재 상황을 알렸고 조치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청원인은 "(해당 직원 역시) 엄청 크게 계속 웃으며 '원래 오작동이 잦아서 불났다고 하면 양치기 소년돼요'라며 웃는 모습에 분해 다시 한번 요청했다"며 "여기는 확인조치는 단 한 명도 하실 생각도 없으신가 보네. 1층에 연기가 30분 전부터 이미 그 정도로 가득했다면 화재가 확실하다 한번 확인해 주는 게 어렵느냐. 이러다 화재가 맞고 사람 다치면 책임질거냐"라고 따지기까지 했다. 

그는 "마치 제가 정신 이상자인것처럼 대하며 끝까지 웃기만 하면서 제보를 묵사발 시키더니 '수고하셨습니다. 퇴근하세요'라고 말했고,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대응에 수치스러움까지 느꼈다"고 토로했다. 

청원인은 "아직도 눈 감을 때마다 미친 듯이 웃던 그 얼굴이 계속 떠올라 너무 힘들다. 어떻게 일용직 노동자인 저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그런 직책을 맡고 있는 건지"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소방대장님의 참사 소식 듣기 전까지 제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고 자책했는지, 덕평 쿠팡 물류센터 관리 관계자들을 믿고 화재 제보와 조치 요청을 하려던 그 시간에 차라리 핸드폰을 찾으러 가서 전원 키고 신고를 했더라면 초기 진압돼 부상자 없이 무사히 끝났으려나?"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경기 광주소방서)의 영결식이 6월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운구 행렬이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하고 있다. 경기도는 고인에게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1계급 특진과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경기 광주소방서)의 영결식이 6월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운구 행렬이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하고 있다. 경기도는 고인에게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1계급 특진과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청원인은 "덕평 쿠팡 물류센터는 이미 3년 전 담뱃불로 인한 화재사고가 있었다"며 "(그 후로도) 개선된 것은 전혀 없고 화재경보 오작동 및 여러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쿠팡의 근본적 대책이 마련되거나 실행된 적은 없었으며, 오작동이 많다며 꺼둔 스프링클러는 화재 당일에도 노동자들 스스로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도 작동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번 사고의 정확한 책임 규명과 사건 관련자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리고, 안전불감증으로 막을 수 있던 참사를 겪는 일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끝까지 힘써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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