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감사원장, 대권 링에 호출된 세 가지 이유
  • 이원석·구민주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5 12: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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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 고심 중인 최재형, 야권 대선주자로 존재감 급부상
文정부 독주 견제, 윤석열의 위기, 청렴한 캐릭터 부각

역대 이런 대선이 없었다. 내년 3월 제20대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불과 250여 일 남짓. 그런데 여전히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특히 야권에서 심한 판세의 진동이 일어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최근 위태로운 모습이다. 대변인 선임 열흘 만의 전격 사퇴, X파일 논란 등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점차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바로 현직 감사원장이다. 감사원장은 부총리급의 헌법기관 수장이다. 대통령이 임명한다. 전직도 아닌 현직 감사원장이 9개월도 채 남지 않은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것도 야권 후보로 말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의 이름이 정치권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그는 지난해 10월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감사하며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주목받았다. 야권에선 ‘소신 있는 인물’로 그를 띄웠다. 여권에선 ‘정치적 의도가 있는 감사원장’으로 깎아내렸다. 그동안은 거론 정도였지만 최근 들어 그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간 주변의 많은 권유가 있었고, 최 원장이 출마를 직접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최 원장은 6월18일 자신의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의 관련 질의에 “생각을 정리해 조만간에 밝히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정의화, 몇 개월 전부터 “최재형의 시간 곧 온다”

파장은 컸다. PNR리서치가 미래한국연구소와 머니투데이의 의뢰로 조사해 6월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 원장은 차기 대통령 적합도에서 4.5%를 얻으며 단숨에 야권 2위에 올랐다(성인남녀 1003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수치 자체가 크진 않지만 주목도는 상당했다. 최 원장은 현재 최종 결정을 위해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최 원장의 죽마고우로 알려진 강명훈 변호사는 “국회 발언 이후 혼자서 (출마에 대해) 고민해 보겠다고 해 연락하지 않고 있다”며 “아직 어떤 방향으로도 정해진 것은 아니다”고 알렸다.

최 원장의 출마 고민엔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변과 정치권의 오랜 설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야권의 몇몇 인사는 일찌감치 물밑에서 최 원장과 접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역설적으로 최 원장의 주목도를 더 높이고 있다. 

현재 가장 공개적으로 최 원장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이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최 원장과 접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추대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 전 의장은 “7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최재형의 때’가 올 거라고 예측했다. 나의 명예와 인격을 건 예측”이라며 “지난해 김오수 전 차관(현 검찰총장)을 제청하라는 청와대 요구를 거부한 것은 최 원장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 사례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는 최 원장의 출마 여부에 대해 “분명한 건 최 원장이 나라에 대한 걱정과 헌신에 대한 고민을 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는 바 없다. 충분한 시간을 줘야지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면 혼란만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쪽에선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대표가 그와 소통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대표는 국민의힘의 상임고문이자 현재 전직 의원 모임인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를 이끌고 있다. 최 원장 사정을 잘 아는 한 야권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꽤 이전부터 최 원장에게 출마 및 입당을 권유해 왔다”며 “이를 들은 최 원장도 꽤 긍정적으로 화답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4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최 원장을 야권 대선 주자로 언급한 바 있다. 최 원장이 대선 주자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때였다. 김 전 대표는 당시 “최 원장이 정치권에서 인기가 많다. 본인은 (출마) 생각이 없다고 하는데 누군가 그를 불러낼 수도 있는 것”이라며 현재의 상황을 예측했다.

아울러 옛 친박(親박근혜)계 전·현직 의원들이 그를 추대하려고 논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실제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최 원장이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본다. 혹시 아직까지 의지가 없다면 제가 나서서라도 좀 나와 달라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최 원장은 기호 2번(국민의힘)으로 나와야 당선된다”고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이들뿐이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 내에선 윤 전 총장보다 최 원장의 이름이 더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진 의원은 “요즘 최 원장이 꽤 ‘핫’하다. 의원들끼리 모여 대선 얘길 하면 최 원장 이름이 많이 나온다”며 “그 사람이 반드시 국민의힘에서 출마해야 한다고 다들 말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윤석열 리스크 우려…‘대체자’로 부상

최 원장이 정치권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뭘까. 먼저 경선 흥행과 주목도를 원인으로 들 수 있다. 국민의힘은 현재 야권 후보들을 모두 모아 당 중심으로 ‘빅텐트’를 치는 구상을 하고 있다. 다양하면서도 최 원장과 같이 문재인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상징적 후보가 많을수록 좋다. 이미 최 원장 등판설로 야권의 대선 경쟁에 주목도가 올라가고 있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최 원장까지 거론되며 야권의 라인업이 상당히 다채로워지고 있다”며 “그간 윤 전 총장한테 관심이 집중돼 있었지만, 다양한 강점이 있는 후보자들이 나타나며 보수 야권 입장에선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는 윤 전 총장 ‘대체자’로서의 잠재력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에선 최근 야권 1위 후보인 윤 전 총장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이 퍼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대변인으로 선임했으나 스피커와 본인의 메시지가 충돌하는 등 갈등 끝에 열흘 만에 사퇴한 일은 ‘정치 초보’로서의 불안정함을 그대로 노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X파일 논란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정치권엔 윤 전 총장의 비위 행위, 가족의 범죄 등이 담긴 X파일이 존재한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다. 공개적으로 이를 봤다는 인사들이 나서며 논란이 커졌다. 그 안의 내용들이 헛소문이라고 할지라도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얼마든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아직까지 별다른 논란이나 의혹이 없으며 강직한 소신과 인품을 높이 평가받는 최 원장이 부각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비슷한 이미지와 배경을 갖는다. 현 정부가 임명했으나 정면 반기를 든 인물이라는 점이다.

정의화 전 의장 또한 최 원장을 윤 전 총장의 대체자로 주목했다. 정 전 의장은 “현재 윤 전 총장에 대한 X파일이 거론되는데 문화권력을 여권이 장악한 마당에 여론조작도 가능하다. 제 2, 3의 ‘김대업 사건’(대선 주자 이회창 전 총재 아들 병역비리 의혹 폭로 사건)이 나올 수 있다”며 “이걸 비켜갈 유일한 사람이 최재형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한 전직 의원 역시 “윤 전 총장은 훌륭한 후보지만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최 원장이 내부에서도 주목받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정치권이 어떤 곳인가. 풍문만으로도 묻혀버릴 수 있는 무서운 곳”이라며 “일종의 대안이랄까. 최 원장은 아직까지 문제점이 거의 드러난 바가 없다. 윤 전 총장의 대체자로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도 윤 전 총장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최 원장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윤 전 총장이 만약 검증 과정에서 기대를 저버리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최대 수혜자는 최 원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국민의힘 내 윤 전 총장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정적 인식이나 의혹이 없는 최 원장은 매력 있는 대안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경쟁력이다. 사람 그 자체 혹은 법조인, 감사원장 최재형과 ‘정치인 최재형’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대쪽 같은 성품과 인품, 월성 원전 관련 논란에서 보였던 정의감, 소아마비를 앓던 친구를 고교 시절 내내 업어 등·하교시킨 미담 스토리 등은 뚜렷한 그의 강점이다. 아울러 그의 출마 자체가 여권에 치명적인 부담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정부의 문제점이나 비리, 정책 전반에 대한 감사를 총괄하는 국가권력 기관의 장이 옷을 벗자마자 대선에 뛰어든다는 건 정부 여당에 대단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여권엔 굉장히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왼쪽),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시사저널 이종현
정의화 전 국회의장(왼쪽),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시사저널 이종현

“관료 생활만 해왔는데 국정 이끌 수 있을지 의문”

반면에 최 원장의 약점 또한 뚜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건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다. 물리적으로 그가 차기 대선에 출마하려면 감사원장직을 내려놓고 바로 나서야 한다. 그랬을 땐 지난해 월성 원전 감사 논란 등도 정치적 중립성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여권에선 이를 빌미로 공세를 펼 게 불 보듯 뻔하다.

가장 큰 치명적인 약점은 정치 경험 및 인지도 부족이다. 실제 비정치인 출신 인사들이 대권에 바로 도전해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관료와 감사원장으로서의 경험은 크지만, 정당 생활과 정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정치에 필요한 조정 능력이나 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매우 부족할 것”이라며 “화법 등도 지금까진 매우 선명했을지 모르나 정치인이 되면 전략적으로 모호하게 해야 할 때도 있고,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진 원장은 “관료 생활만 오래 해왔다는 게 큰 약점이다. 평생 그 생활을 했는데 과연 다방면 능력이 필요한 국정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고건 전 총리도 그랬고, 비(非)여의도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받는 과제이자 최대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최 원장의 단점은 인지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링에 올라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생기는 등 시끄럽게 되면 인지도는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종 고심에 들어가기 전 최 원장은 주변에 출마 의사를 어느 정도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도 이런 의사가 닿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최 원장이 얼마 전 출마를 결심했고, 몇몇 중진들에게도 뜻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의화 전 의장도 그의 출마 여부에 대해선 ‘아직 모른다’면서도 “그의 애국심에 비춰 봤을 때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하지 않겠나 싶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출마 결심할까… 내주 초 사퇴 가능성도

현재 최 원장은 가족들의 강한 만류 등으로 인해 최종 결심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 원장의 부친으로 해군 영웅으로 꼽히는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 둘째(최 원장)에게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사리판, 그 복잡한 세상에 발도 들여놓지 말고,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최 원장 사정을 아는 야권 관계자 역시 “최 원장의 부친뿐 아니라 아내 등 가족들이 상당히 강하게 대선 출마를 말리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만 외곽에선 최 원장 의지와 관계없이 주변인들의 최 원장 대선 행보를 위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최 원장이 나온 경기고 71회 동창 모임 구성원들은 세를 규합하고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고 71회 출신엔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 출신들이 포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을 지낸 조대환 변호사 역시 최 원장의 대선 출마를 촉구하며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 변호사와 최 원장은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강명훈 변호사는 “각자의 의지로 돕는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정치권에선 최 원장이 결심만 선다면 곧바로 감사원장직을 사퇴하고 즉시 대권 행보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의지가 있음에도 감사원장직에 더 머무른다면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더 거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원장의 결심에 정치판이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정의화 전 의장은 “대선 도전 결단의 시각이 오후 3시라고 한다면, 최 원장을 처음 만났던 6개월 전은 오전 9시고 지금은 정오쯤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최 원장 측근들은 6월25일 언론을 통해 내주 초 그의 사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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