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입대 거부한 성소수자, 대법서 첫 무죄 확정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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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반전주의 신념 인정…“피고인 신념과 신앙 내면 깊이 자리잡혀”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기자회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제안 수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11월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기자회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제안 수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정 종교가 아닌 개인의 '비폭력 신념'에 따라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한 남성에게 처음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비(非) 여호와의 신도가 예비군 훈련 거부로 무죄 확정된 경우는 있었지만, 현역 입영 거부로 이같은 판결을 받은 것은 최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32)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신념과 신앙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17년 10월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은 뒤 정당한 사유없이 입대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 및 성 소수자를 존중하는 '퀴어 페미니스트'로서의 가치관에 따라 군대 체제를 용인할 수 없다고 느꼈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인 A씨는 자신이 고등학생 때부터 획일적인 입시교육과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집단문화에 반감을 느꼈고, 대학 입학 후에는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 정신에 따라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A씨는 이스라엘의 무력 침공을 반대하는 기독교단체 긴급 기도회나 한국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 반대 시위,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 수요시위 등에 참여했다.

A씨의 주장에도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종교적 양심 내지 정치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병역법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고인은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과 소수자를 존중하는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비폭력주의와 반전주의를 옹호하게 됐고, 그에 따라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신앙과 신념이 피고인의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고, 이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을 깨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A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비폭력주의·반전주의 신념과 신앙을 이유로 현역 입영을 거부해 무죄를 확정받은 최초의 판결"이라며 "단순히 기독교 신앙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어서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과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월 종교적 이유가 아닌 '폭력과 살인 거부' 등의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과 병역동원소집에 불참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놨다. 다만, 이 판결은 현역 입대가 아닌 예비군 훈련 등을 거부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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