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공군 성추행 부실수사…국방부 방패막이 된 수심위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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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식구 감싸기 비판 나오자…‘초동수사 부실’ 공군 군사경찰 1명 입건
1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아무개 중사 추모소에서 이 중사와 같은 부대에 근무하던 부사관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아무개 중사 추모소에서 이 중사와 같은 부대에 근무하던 부사관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의 총체적 부실수사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진상 규명에 나선 국방부가 미온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엄정한 수사를 약속하며 꾸린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는 사실상 ‘제 식구 감싸기’를 위한 방패막이라는 지적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25일 군 당국에 따르면, 국방부 조사본부는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의 초동수사를 맡았던 공군 20비행단 군사경찰 수사관 1명이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했다. 또 다른 수사 관계자 2명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부실수사 및 사건 축소·은폐의혹 일부 사실로 확인

앞서 국방부 차원의 현장 조사 및 감사 등을 통해 공군 군사경찰 당국의 부실 수사 뿐만 아니라 사건 축소·은폐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20비행단 군사경찰은 지난 3월5일 피해자 이아무개 중사 조사를 진행한 뒤, 12일이 더 지나서야 가해자 장아무개 중사를 조사했다. 또 가해자 조사도 하기 전에 미리 불구속 수사 방침을 정해 실제 불구속 수사로 진행했다.

증거 확보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정황도 여럿 확인됐다. 당장 증거인멸이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장 중사의 휴대전화를 곧바로 압수하기는커녕 임의 제출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성추행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차량 블랙박스는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나 이 중사가 직접 챙겨서 제출할 때까지 확보하지 않은 게 알려지면서 공군 군사경찰의 부실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 직후부터 회유·압박이 있었다고 여러차례 주장했지만, 2차 가해 역시 조직적으로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20비행단 군사경찰은 장 중사가 “용서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이 중사에게 보낸 것을 사과 의사로 간주하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반면,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 21일 장 중사를 구속 기소하면서 해당 문자메시지 등과 관련해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상 보복 협박 혐의를 적용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이 공군참모총장 보고용과 국방부 제출용으로 서로 다른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국방부 제출 보고서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군 군사경찰단의 위선 개입 여부에 대해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번 사건의 수사 및 보고와 관련해 공군 군사경찰 관계자들에 대한 법적·행정적 처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2일 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 관련 2차 가해 혐의를 받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노 모 준위(왼쪽)와 노 모 상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상사·준위 모습 ⓒ연합뉴스
12일 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 관련 2차 가해 혐의를 받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노 모 준위(왼쪽)와 노 모 상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상사·준위 모습 ⓒ연합뉴스

의혹 규명 나선 국방부…안이한 대응에 ‘제 식구 감싸기’ 비판

국방부에서 공군의 초동 부실 수사 의혹 규명에 나서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건 관련자 13명이 피의자로 형사 입건된 가운데 최초 수사를 담당한 군사경찰 중 입건된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비난이 확산되자 이날 뒤늦게 피의자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입건 여부에 대해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부 전문가와 유족 측 법률대리인 등으로 구성된 수심위를 통해 공정성을 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수심위 의견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국방부 장관이 제정한 운영지침에 따라 이를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심위도 군 경찰의 부실수사 등을 확인하고도 미온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다. 국방부는 군 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명분으로 시민단체·학계·법조계·언론계 등 민간 전문가들로 수심위를 구성했다. 수심위가 이번 사건에 대한 명확한 수사 원칙을 밝히고, 과감하고 신속한 결론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가 모였다. 하지만 매번 ‘반쪽’짜리 결론을 내놓으면서 의미 있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2차 가해에 대해서는 불기소를 하거나 결론을 미루기만 했다. 1차 가해자인 장 중사를 기소하고, 가해가 이뤄진 차량을 운전하고 있던 하사는 불기소를 결정했다. 이 중사가 옮겨간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했다는 혐의를 받는 두 상급자에 대해선 “논의 끝에 추가 수사 후 의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수심위의 이 같은 결정의 가장 큰 원인은 심의 안건을 제출하는 국방부의 안일한 태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초동 부실 수사 의혹에 대해) 직무를 소홀히 한 부분이 일부 확인됐다”면서도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 이 부분을 가지고 입건해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인 장 중사가 피해자인 이 중사에게 두 차례나 “죽어버리겠다”는 내용의 협박 문자를 보낸 것에 대해서도 공군 군사경찰은 이를 “사과로 인식했던 것 같다”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내놨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안이한 대응을 지적하는 질문이 쏟아지자 ‘수사심의위 의결’을 방패막이 삼아 빠져나가려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에 이 중사 유족들은 “국방부가 수심위를 도피처로 생각하거나 책임회피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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