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보다 무서운 막무가내식 재난지원금 지급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0 07:00
  • 호수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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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소리 곧은 소리] 네 차례 지급에도 실효성 분석 미비…100%‧80% 논쟁보다 수혜층 분석 따져야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여당과 야당이 선명히 대립하고 있고 또 여당과 정부 당국이 충돌하고 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하루하루 어려움을 토로하는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의 방향이 지금도 춤추듯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원금에 대한 정치권의 안일한 인식이 아쉬운 부분이다.

ⓒ연합뉴스
전국이주인권단체 관계자들이 7월6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민 에게도 평등하게 재난지원금을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전 국민 지급, 소비 진작 취지와 맞지 않아

재난지원금에 관한 현재의 논쟁은 전 국민 100% 지급이냐, 가구 소득 하위 80% 지급이냐에 맞춰져 있다. 여당 대선후보들 사이에서도 100% 지급과 80% 지급이 팽팽하게 맞설 정도로 논쟁은 가열되고 있다. 이번 지원금이 5차임에도 여전히 지급 대상을 놓고 대립이 되풀이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재난지원금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바이러스 재난으로 인해 입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지원하는 금액이다. 지난해 4월, 1차 지원금 지급 대상 결정 때 겪었던 혼선은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한 지원이 아닌 국가의 긴급재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결정된 사항이기에 그 시행착오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3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도 지급 대상에 관해 혼선을 거듭하는 모습은 국민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가구 소득 및 피해 정도를 중심으로 지급 대상을 결정하는 데 오히려 행정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는 항변은 재난지원금이 이미 4차례나 지급된 점을 감안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또한, 코로나19가 확산돼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리 두기를 4단계로 격상한 상황은 대면 소비를 최소화하라는 정부의 시그널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여당이 주도한 전 국민 지급 결정은 소비 진작을 도모하는 지원금의 본질적 성격과도 맞지 않는다. 국민에게 주는 정책적 시그널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예산안 심의, 확정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지만 지급 대상 결정은 항상 신중히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계층에게 지급해야 적절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결정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지급 기준에 대한 명확한 이유 없이 지원 대상을 80~100% 사이에서 결정하는 논쟁은 그 자체가 비효율이다.

국민들에게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앞서 언급한 대로 지난 1년 사이 4차례나 진행됐다. 그렇기에 1차 재난지원금 당시 지급 대상을 결정할 때 겪었던 혼선을 최소화하고 어떤 계층에게 지원금을 지급해야 소비 진작과 생계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지 충분히 학습할 수 있는 시간과 관련 데이터는 상당히 축적돼 있다고 봐야 한다.

재난지원금이 가구 소비에 미치는 영향, 소비 효과 등과 관련된 국내 상황을 담은 연구논문도 올해 다수 게재되거나 발표됐다. 이 중, 올해 3월 《사회복지정책》 학술지에 남재현 부산대 교수 연구진이 게재한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가구 소비에 미치는 영향’ 논문은 소득 계층별 비교를 통해 지원금의 효과를 규명하고 있다.

연구진은 다양한 실증분석 방법을 동원해 소득 계층별 지원금의 소비 효과를 규명했다. 연구 결과, 지원금은 전반적으로 가구 소비를 진작시켰으나 저소득층인 소득 1분위와 2분위의 가계 및 소비 지출을 좀 더 유의미하게 증가시키는 데 기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소득 가구에서 지원금 효과가 더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해당 연구에서 주목할 내용은 재난지원금 지급을 통해 식료품·교통·음식·숙박 등에서 저소득층의 지출이 고소득층에 비해 유의미하게 증가한 점을 포착한 부분이다. 이미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다수 경제학·정책학 연구에서도 지원금 효과는 저소득 가구의 생계 안정, 소비 진작에 훨씬 기여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 한국노동경제학회가 발간하는 《노동경제논집》에 게재된 ‘긴급재난지원금 현금수급가구의 소비 효과’ 논문에서도 취약계층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대부분 소비지출로 이어졌고 코로나 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수록 한계소비성향(소득 대비 소비 변화의 비중) 역시 더욱 높다는 점을 연구 결과로 제시했다.

 

체계적이지 못한 정책 행보가 국민 생계 발목 잡아

문제는 재난지원금의 효과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 보고서가 꾸준히 발간·게재됐음에도 정부 당국이 지급 대상 결정에 관해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며 1차에서 5차까지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2차 추경안 규모, 지원금 대상, 국가채무 상환 등의 영역에서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정이 합의한 지급 대상 결정을 곧바로 철회하는 여야의 행태도 안일하지만 더 이상의 추경 증액은 어렵다는 정부 입장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손쉽게 꺼내는 카드로 현금 지원을 결정하는 대신 지원금의 목적과 방향성, 그 효과를 철저히 검증했다면 이렇게 정치논리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측은 의학계에서 지난해 초부터 거론됐고 2년 이상의 긴 터널을 거쳐야 극복될 수 있다는 전망도 지난해 중순부터 제기됐다. 그럼에도 정부가 사회보장제도 강화와 함께 코로나 재난에서 피해 계층을 신속히 파악하고 집중 지원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갖추지 못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

재난지원금 지급은 전 국민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큰 정책이다. 그러므로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복지·사회 전문가들의 의견과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지원금의 장기적인 목적과 방향성을 결정했어야 한다. 지급 대상에 대한 정부 당국과 정치권의 지루한 논의는 지원금의 지급 시기와 그 효과마저 지체하게 만든다.

선별과 보편의 줄다리기에 정부와 정치권이 매몰된 사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피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거리 두기 단계 강화로 피해 규모 역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체계적이지 못한 정책 행보가 국민 생계의 발목을 잡는 격이다.

지원금의 오락가락 행보는 사회적 거리 두기 못지않게 민심의 거리 두기까지 악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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