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취재] 이낙연 부인 김숙희씨, 남광주시장서 ‘조용한 내조’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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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무대인 남광주시장서 커피가판차 조수 봉사
“집에서는 구멍투성이지만 정치인 이낙연은 괜찮은 남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숙희씨와 한 80대 상인이 광주 학동 남광주시장 ‘해뜨는 새벽시장’에서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4일 오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숙희씨가 광주 동구 학동 남광주시장 ‘해뜨는 새벽시장’에서 커피가판차 조수 봉사를 하고 있다. 이날 남광주시장 상인들에게 인사드리기는 네 번째이고, 구독배달 커피 가판차 조수로 일한지는 3일차다. 김 여사가 부추를 다듬으며 상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꿩 대신 닭이 내려왔습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숙희씨의 말이다. 지난해 1월, 목포시 원도심인 오거리 문화센터에서 열린 우기종 전 전남도 정무부지사의 총선 예비후보 출판기념회에서다. 우 후보는 이 전 대표의 전남도지사 시절, 부지사로 호흡을 맞춘 사이다. 당시는 이 전 대표가 종로 지역구에 출마하기 위해 조만간 총리직에서 물러나 정치인의 신분으로 돌아오기 직전이었다. 

김 여사는 이날 축사에서 “남편이 와야 하는 자리인데 현직이라는 제약 때문에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어 꿩 대신 닭이 내려 왔다”는 말로 좌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랬던 김 여사가 이번에는 구원투수(꿩)로 제대로 등판했다. 지난 5월부터 매주 2박 3일 일정으로 호남에서, 이 전 대표가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이른바 활발한 ‘그림자 내조’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김 여사가 주로 찾는 곳은 정치 현장이 아닌 서민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민생 현장이다. 본지는 광주 동구 학동 남광주시장에서의 민심행보를 동행 취재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숙희씨가 광주 학동 남광주시장 ‘해뜨는 새벽시장’에서 커피가판차 조수 봉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4일 오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숙희씨가 광주 동구 학동 남광주시장 ‘해뜨는 새벽시장’에서 커피가판차 조수 봉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꿩의 구원등판…호남 민생현장서 ‘활발한 그림자 내조’

14일 오전 5시, 광주 학동 남광주시장 주차장. 이 전 대표의 ‘안방 동지’ 김숙희 여사가 간편한 복장차림으로 여성수행원과 함께 나타났다. 광주와 화순과 나주 등에서 온 상인들이 채소와 생선 등의 좌판을 펴기 시작한지 한 시간 남짓 지나서다. 이곳에선 매일 ‘해뜨는 새벽시장’이 열린다. 지적인 외모의 현모양처 스타일에 온화한 성품과 친화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는 김 여사는 6주째 광주 등 호남 일대에서 소리소문 없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남광주시장 상인들에게 인사드리기는 네 번째이고, 구독배달 커피 가판차 조수로 일한지는 3일차다. 

커피 가판차는 마치 신문 배달처럼 매달 일정 금액을 받고, 시장 상인들에게 커피와 딸기 주스 등을 구독배달 서비스한다. 김 여사의 역할은 십여년전 모 방송사에서 종영된 ⟪체험 삶의 현장⟫ 프로그램에서처럼 일꾼이었다. 으레 유명 인사들은 상인회장과 함께 시장통을 돌며 사진을 찍은 뒤 자리를 뜬다. 얄짤없었다. 사수인 양선화 가판차 사장이 새벽잠 쫒으라고 내준 커피 한잔을 마신 뒤, “이모, 저기 갖다드리세요”라는 지시(?)에 따라 빨간색 플라스틱 쟁반을 들고 당차게 배달을 시작했다. 처음 배달에 나설 때만 해도 요령도, 방법도 몰라 우왕좌왕했지만 이제는 사수 못지않게 숙달됐다. 그는 “처음에는 시장이 하도 넓어 동서남북을 모르겠더니 이제는 요령이 생겨 수산물거리, 국밥거리, 청년상인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여유를 보였다. 

 

“따뜻한 여사님”…깐깐한 남편 ‘보완’

상인들은 김 여사의 등장에 반색했다. 주로 전날 발표된 여론조사 지지율을 화제로 삼아 “오리지널 팬이다” “꼭 돼야 한다”“이 전 대표의 지지율이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니 더욱 반갑다”고 덕담을 건넸다. 배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아무개(48)씨는 “사모님, 인상이 좋다”는 소리를 연발하기도 했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도, 60대 상인이 김 여사의 민생탐방 때문에 이 전 대표의 호남 지지율이 쑥 늘었다는 말에 “타이밍이 잘 맞았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커피 배달 틈틈이 앉아서 부추와 호박잎을 다듬으며 어머니뻘인 상인과 소세한 대화도 나눴다. “이낙연 안식구입니다. 엄니, 커피는 자셨소. 호박잎은 언제 따왔당가. 이것 다 깔려면 손이 새까매지겠는데.” 그의 정감어린 말과 친근한 태도가 시장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호감을 얻고 있다는 게 수행한 박미정 광주시의원의 설명이다. 박 의원은 그에게 반해 열성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팬덤 조짐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심 통했나…열성적 지지, 팬덤 조짐도

상인들은 그의 민심행보에 후한 점수를 줬다.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10년째 아침 장사를 한다는 전주연(48·여, 남구 진월동)씨는 “민심은 항상 진심을 보는 것 같다”며 “잠깐 왔다가는 것이 아닌 그 진심을 헤아려 마음이 움직이더라. 그래서 참 잘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노변정담(爐邊情談)’식 즉석 정치컨설팅도 이뤄졌다. “쓴 소리를 많이 들어야 돼, 좋은 소리만 들으면 안돼”“1차 경선 토론에서의 사이다와 고구마 중간 스탠스가 딱 좋았다” 등 일부 상인들의 애정어린 조언에 김 여사는 “명심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새벽시장에 햇빛과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가림막 등 시설물을 설치해줬으면 좋겠다는 민원성 주문에 대해선 “아마도 관할구청이 해주고 싶어도 이곳이 주차장 부지여서 시설물 설치에 어려움이 있어 못해 준것 같다”고 완곡하게 설득하기도 했다. 20년 넘게 약속을 남발하지 않는 깐깐한 남편의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라고 했다.   

광주에서 경전선의 시발점이었던 남광주역은 서민의 애환을 그린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모티브가 된 곳으로 2000년 폐역으로 사라졌지만 남광주시장은 여전히 북적거린다. 벌교, 보성, 이양, 화순 등지 시골 아낙네들이 새벽기차에 해산물과 푸성귀를 싣고 와 난전을 펼친 것이 시장으로 발전해 지금까지 사람들의 활기가 넘쳐나고 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중략)/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김 여사는 시장 좌판을 가득 메운 채소, 곡식이 그냥 농작물이 아니라 그 분들의 인생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 남편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에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었으나 다음 세대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신을 더 이상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남광주시장을 특별히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주 방문 때마다 호텔 대신 남광주시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시장과 대인동 천원식당 등에서 매주 봉사활동을 하면 서민들의 얘기를 경청한다. 또한 여성계, 문화계, 종교계 인사 등과 간담회, 티타임도 가지면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한다.

​14일 오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숙희씨와 한 상인이 광주 동구 학동 남광주시장 ‘해뜨는 새벽시장’에서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4일 오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숙희씨와 한 상인이 광주 동구 학동 남광주시장 ‘해뜨는 새벽시장’에서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남편은 제가 존경할 수 있는 당산나무 같은 사람”

김숙희 여사는 1980년 결혼했다. 전주여고와 이화여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뒤 당시 미술 교사였던 김 여사는 맥줏집 주인 아주머니의 중매로 이낙연 전 대표를 만났다. 서울 봉천동의 단독주택 2층 280만원짜리 전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열 번 넘게 이사를 다니다가 신반포의 13평 아파트를 처음 샀다. 아내를 소개해준 아주머니가 와서 보고는 “집이 너무 초라하다”고 해서 속상했다고 회고했다. 

1982년 아들을 낳고 자라는 걸 볼 때는 김숙희 여사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행복한 시기였다. 남편의 국회의원, 전남도지사, 국무총리 등 공직 재임 기간 중 언제가 가장 행복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총리 시절이 가장 좋았다”며 “선거를 안 하고,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이 편했다”고 답했다.  

이 전 대표에 대해 “바깥일은 철두철미한데, 집에서는 구멍투성이다”며 “그래도 정치인 이낙연은 괜찮은 남자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늘 한자리에, 그 자리에 있는 당산나무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 제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김 여사의 ‘커피배달’은 오전 6시 30분까지 계속됐다. ”오늘 여론은 확실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지지율이 많아 올랐다’‘될 것 같다’는 상인들의 말씀에 많은 힘을 얻고 간다”고 했다. 숙소에서 잠간 휴식을 취한 뒤 오전 9시부터 남구 방림동 성요셉사랑의 식당에서 배식 봉사를 할 예정이라며 총총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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