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禁書)시대의 공포를 느끼며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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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ㅣ레이먼드 웍스 지음ㅣ박석훈 옮김ㅣ교유서가 펴냄ㅣ276쪽ㅣ1만4500원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대에는 ‘금서(禁書) 목록’이 있었다. 그 책을 가지고 있다가 걸리는 즉시 경찰이나 검찰에 끌려가 재판을 받고, 감옥을 살기도 했다. 사회주의를 찬양하거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책, 군사독재에 불리한 책 등이 금서목록에 올랐다. 웃지 못할 일은 금서를 정하는 자들이 무지했던 탓에 인도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의 정신수양서 《자기로부터의 혁명》이 제목에 ‘혁명’이 들어있다고 금서로 지정됐고, 심지어 무협지 《무림파천황》은 독일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해 썼다며 작가를 징역 살리기도 했다.

평소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고 하는데 법(法)은 너무 어려운 문제여서 법을 잘 아는 검사, 판사, 변호사, 법대 교수 같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법치국가 대한민국을 잘 이끌겠거니,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겠거니 생각하며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않았다. 법도 그리 어려운데 하물며 《법철학》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어려운 법에다 더 어려운 철학까지 붙었으니 말이다. 법에 관한 책들은 지레 겁먹고 멀리해온 ‘자체 금서’였다.

그런데 요사이 법 전문가들이 ‘표창장’을 놓고 벌이는 무소불위 질주를 지켜보다 그 옛날 ‘금서시대’ 공포가 되살아나 대체 법이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고 싶어진 차에 멋진 말이 눈에 띄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필자는 읽어볼 생각도 못했던 헤겔의 《법철학》에 나오는 말로써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현상을 앞설 수는 없고, 현상이 일어난 후에야 그것을 겨우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데 ‘표창장 현상’에 대해서도 법 전문가들이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듣게 해석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20년 가까운 독일 유학을 마치고 고려대학교에 부임, 10년 넘도록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연구실 불을 켜는 법철학자 윤재왕 교수가 꼼꼼하게 박석훈 변호사의 번역을 지도해 출판한 레이먼드 웍스의 《법철학》을 읽게 된 것은 ‘알아들을 만한 현상 해석이 있는지’ 궁금했고, 이 기회에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지 밥치국가인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을 지나 새벽 5시 여명이 밝는데 여전히 날개를 펴지 않았다. ‘법과 법관의 양심에 관한 고찰’을 할 현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가 보다.

영국 중앙형사법원 꼭대기에 서있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린 채,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수평저울을 쥐고 있다. 어떠한 편견이나 사심이 없이 오직 법률과 인간의 보편 양심에 따라 정의를 판정하지 못하면 그 검으로 자신의 목을 치겠다는 뜻인가?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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