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국산화만이 정답은 아니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7 11:00
  • 호수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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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주요 부품 공급사 200개 중 156곳 중국 위치
기술 자립과 함께 공급망 다변화도 필요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기습적인 수출규제가 시행된 지 2년이 됐다. 2019년 7월1일 일본 정부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8월2일에는 한국을 믿을 수 없다며 수출관리 우대조치 대상국 명단(White List)에서도 제외했다. 국내 업계에 미치는 타격이 우려됐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영향은 크지 않았다. 수출규제 3대 품목 가운데 반도체 세척에 쓰는 불화수소는 국내 기업이 양산을 시작하면서 대일 수입액은 6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액은 938만 달러로 일본의 수출규제 직전인 2018년의 6686만 달러보다 무려 86%나 줄어들었다.

미세회로를 그릴 때 쓰는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는 벨기에산 수입을 늘리는 등 다변화를 통해 대일 의존도를 50% 이하로 줄였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에 사용하는 불화 폴리이미드는 대체 소재를 채택하면서 아예 일본에서의 수입이 거의 없어졌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오히려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소재와 부품, 장비(이하 소부장) 등 100대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는 지난 2년 사이에 31.4%에서 24.9%로 하락했다. 소부장 기업 매출도 20.1% 증가했다. 정부의 집중적 지원이 이뤄지면서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인 한국의 관련 중소·중견기업은 13개에서 31개로 증가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7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 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올 상반기 대일 무역적자 31.3% 증가

하지만 성과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49곳의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국내 소부장 기업의 경쟁력은 아직 일본의 90% 수준에 그친다. 사실 우리 경제에 큰 피해가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정부가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벨기에에서 수입한다는 포토레지스트는 일본과 벨기에의 합작공장에서 만든다. 일본의 세계 최대 포토레지스트 생산기업은 그동안 한국에서의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렸다. 중국에서 불화수소를 만들어 공급해 오던 일본 기업은 우리나라에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이 수출규제를 현지 생산 확대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모른 체하고 있다. 아직도 소부장 산업 전체의 일본 의존도는 15.9%로 중국의 26.7%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16.8%의 2년 전과 비교해도 겨우 0.9%포인트를 낮췄을 뿐이다. 두 나라를 오가는 상품, 사람이 모두 줄어들면서 지난해 한·일 교역 규모는 2018년에 비해 20%나 감소했다. 하지만 일본산 소재와 부품 수입은 다시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120억4000만 달러다. 전년 동기보다 31.3% 늘었다.

역대 정부는 1986년의 대일 무역역조 개선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대일 무역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단 한 해도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이 현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리나라의 수출은 2001년 1700억 달러에서 지난해 5100억 달러로 세 배 늘어났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000년대 들어 매년 200억 달러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무역 규모의 증가에도 대일 무역적자는 일정 수준을 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해는 208억 달러 적자였고 2019년에는 191억 달러 적자였다. 우리나라의 무역 구조는 크게 본다면 주로 일본과 독일에서 소재와 부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제조한 다음, 부품과 중간재는 중국과 베트남 등에, 완제품은 미국과 유럽 등에 수출하는 구조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적자를 보는 이유는 바로 일본이 소재와 부품, 기계 산업에서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반도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방법은 세상에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은 기술 자립만을 강조하는 일방적 발상은 근시안적 행태로 반도체 산업의 장기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국제 정세가 복잡할수록 국제 산업 공급망에서 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제재로 발전이 더딘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현실적인 상황이 반영된 주장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무역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더 많이 버는 쪽과 덜 버는 쪽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거래는 아무래도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글로벌 분업구조가 흔들리면서 각국이 공급망을 내재화하고 있다. 핵심 기술과 부품의 대외 의존을 줄이고 공급망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세계 주요국들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다. 소재와 부품 산업에 대한 지속적 투자와 관심은 중요하다. 앞으로도 국산화와 함께 공급망 다변화는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수입 대체 국산화에만 매달리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글로벌 공급망 확보는 당연한 일이다.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기회비용 역시 줄이는 것이 낫다. 대일 의존도를 낮춘다는 이유로 더 좋은 제품을 값싸게 확보할 기회를 놓친다면 그것도 아쉬운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도 애플의 주요 부품 공급사 200개 가운데 156곳이 중국에 있다.

 

소부장도 선택과 집중 필요

기술 자립은 필요하다. 특정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불안하다. 그러나 기술 자립이 한 나라가 필요한 모든 기술을 다 갖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상호 의존적이다. 상호 의존성이 무기가 될 때 힘은 비대칭적인 전략자산 확보에서 나온다. 문제는 세계화 시대에 중국이든, 미국이든 혹은 일본이든 누구도 보복이 두려워 함부로 위협하기 어려운 핵심 전략자산을 확보하는 일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일종의 관문(choke point)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나 기술이 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의 제품을 만들려면 퀄컴이 만든 칩을 이용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우리만의 산업 무기,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카드를 갖는 일이다. 산업의 모든 부문을 전략자산으로 만든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소재와 부품 산업에서도 모두가 필요하지만, 아무도 쉽게 따라오기 힘든 몇 가지 무기만 확보하고 있으면 된다. 그게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이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앞으로도 수출규제를 완화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일본은 정치적 문제에 대해 경제적인 대응 방법을 선택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수출규제는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정책의 극치”라고 했다. 어리석은 짓에 우리가 굳이 발맞출 필요는 없겠다. 경제문제는 경제적으로 풀면 된다.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찾아야 한다. 생산의 내재화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문제가 되는 소재와 부품, 장비마다 국산화할 수는 없다. 그건 정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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