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기업 가업 승계, 국가 경쟁력 위한 선결과제다
  •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8 10:00
  • 호수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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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의 대물림’ 편견 없애고 세제 대폭 개선해야

한강의 기적을 이룬 창업세대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들이 일궈온 기업의 승계가 주요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승계를 계획하고 있거나 진행 중인 기업은 대체로 실적이 양호하고 사업 전망도 괜찮은 편이다. 이런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때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명문 장수기업이 출현하며 국가경쟁력은 강화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기업 승계 과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과다한 상속세, 승계를 부(富)의 대물림으로 보는 일부의 편향된 인식 등으로 기업을 승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 결과 승계를 앞둔 중소·중견기업 다수는 새로운 투자를 주저하고 혁신 활동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투자 확대를 통해 기업 가치가 커지면 승계 과정에서 더 많은 상속세를 납부하게 될 것이라는 부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지만 최대주주 보유 지분에 대한 할증제도를 감안할 경우 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의 상속세 부담 완화를 위해 도입된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적용 대상과 공제 한도가 제한적이고, 피상속인·상속인 요건과 사후관리 요건이 과도하게 엄격해 실효성이 미흡하다. 기업 승계와 관련한 과다한 상속세 부담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커가고 중견기업이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 성장 사다리 작동을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한다. 

기업 승계를 촉진하기 위한 상속세 감면 등 조세 지원의 필요성 및 정당성은, 생산활동에 공여돼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제적인 부와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재산’을 상속 또는 이전하는 것은 부동산이나 현금성 재산 등 일반 재산을 상속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름에서 출발한다. 기업 승계가 부의 대물림과는 다른 책임과 기업가 정신의 대물림이며, 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2의 창업에 해당하는 이유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독일과 일본 등 경쟁국들은 기업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상속세 부담을 대폭 완화하거나 승계 과정에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지배구조를 효과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오른쪽)이 2019년 5월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속세제 개선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상속세율, OECD 최고 수준 

독일의 경우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지만, 기업을 배우자나 자녀 등 직계비속에게 상속 또는 증여하는 경우엔 최고세율을 30%로 낮춰 적용한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적용 대상이 넓고 요건이 단순해 중소·중견기업 대부분이 널리 활용하고 있다. 사업재산 중 상속세 최고세율 적용 구간(2600만 유로, 약 350억원)까지는 상속세 감면 모델에 따라 85% 또는 100%를 감면한다. 상속세 최고세율 적용 구간을 초과하는 대규모 사업재산에 대해서는 ‘점감(漸減)적 세감면 혜택’을 활용하거나 ‘세감면 필요성 심사’를 통해 상속세를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인적 요소가 강한 가족 중심 기업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사업재산의 최고 30%에 달하는 금액을 상속재산에서 별도의 ‘사전 특별공제’를 해준다. 

일본은 최근 들어 경영자의 고령화, 후계자 부족 등의 문제에 대응해 기업 승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했다. 2018년 도입한 ‘특례사업 승계 세제’는 중소·중견기업의 사업승계 촉진을 위한 과감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후계자가 ‘특례인정 승계회사’의 대표권을 보유하고 있던 자로부터 증여, 상속 또는 유증의 방식으로 해당 기업의 비상장주식 등을 취득한 경우에는 증여세 및 상속세 전액에 대해 특례증여자 또는 특례후계자 사망일까지 납세를 유예하는 10년의 한시법을 제정했다. 대상 주식 수의 상한을 철폐하고 납세 유예비율도 100%로 확대함으로써 중소기업 등이 승계 시 세금 부담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있다. 친족 이외의 자를 포함한 복수의 주주와 대표자인 후계자(최대 3인)에 대한 승계도 적용 대상에 포함해 개별 기업에 적합한 승계 방법을 채택할 수 있도록 했다. 

스웨덴은 2004년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승계를 포기하거나 해외 이전을 추진하던 기업들을 위해 상속·증여세 폐지라는 과감한 친기업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고용 및 재정 위기를 타개했다. 오스트리아는 2008년 상속·증여세를 폐지한 뒤 대체 입법을 마련했다. 노르웨이도 2014년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많은 국가에서 가족기업의 안정적인 승계를 지원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관점에서 제도 개편해야 

경쟁국들의 이와 같은 동향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기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이념적 논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승계를 제약하는 현행의 조세제도를 혁신하지 않을 경우, 다수의 중소·중견기업이 적기에 승계를 추진하지 못하고 어려움에 직면함으로써 많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경제의 활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부터라도 기업 승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 국가경쟁력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기업의 승계와 관련한 상속·증여와 일반 재산에 대한 상속·증여를 구분하고, 생산활동에 직접 공여되는 기업의 상속재산에 대해서는 일반 재산에 비해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의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가업상속공제 대상 및 한도 확대, 경영권 할증평가 폐지, 사전·사후관리 요건 완화, 사전증여 활성화 등 관련 세제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기업 승계 활성화를 위한 조세제도 개선과 기업 승계에 관한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역할도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설비투자 확대, 사람과 연구·개발(R&D) 분야 투자 적극화 등을 통해 경제의 활력 증진에 기여하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면서 기업을 혁신해 나가야 한다.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활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면서, 후계자 등 다음 세대를 역량 있고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육성하는 데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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