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낙연의 ‘지역 본사제’에 쏠리는 눈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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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본사제’, NY표 지역 균형발전 새 버전 되나
한계 맞은 균형발전, 지역·복수본사제 시도해 볼만
“지역 균형발전은 시대정신…‘정치적 언약’ 안 돼야”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낙연(NY) 전 대표가 27일 오전 광주시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지역균형발전에 대해 ‘지역 본사제’ 도입을 제시하며,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낙연(NY) 전 대표가 27일 오전 광주시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지역균형발전에 대해 ‘지역 본사제’ 도입을 제시하며,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낙연(NY) 전 당 대표가 27일 오전, 광주시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전 대표는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 가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이른바 ‘백제 발언’에 관련해서 말을 극도로 삼갔다. 심지어 측근인 이병훈 국회의원이 번외로 이 지사가 ‘백제 발언’과 관련해 녹음파일을 공개한 것에 대해 묻자 “무엇이라고 답변하건 논쟁이 재현될 것 같아 답변을 자제하겠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반면 지역구도 소환에 대해선 김대중 전 대통령(DJ)까지 동원해 항변했다. 이 전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은 지역 구도를 이용하는 대통령직이라면 천 번이라도 사양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고 어르신의 피맺힌 절규를 잘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그 생채기를 덧내는 일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며 “우리 모두가 지역 구도를 소환할만한 어떤 언동도 자제해야 하고 저 또한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한다”고 했다.

이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백제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앞서 이 지사는 지난 23일 언론 인터뷰에서 “5천년 역사에서 백제가 주체가 돼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며 “현실적으로 중요한 건 확장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간담회 말미에 분위기가 확 바꼈다. 줄곧 ‘정치 사안’에 대해선 말을 아끼던 이 전 대표는 지역균형발전 관련 질문이 나오자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본인의 전남지사 시절 본사를 전남으로 옮긴 기업 2개를 예로 들어가며 얘기를 술술 풀어냈다. 우선 지역 균형발전에 대해 “개헌할 때 균형발전의 확고한 근거를 헌법에 명료하게 담았으면 한다. 다소 무리로 보이는 법률도 만들 수 있도록 헌법에 근거가 있으면 좋겠다”고 운을 뗐다.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역인재 할당에 있어서는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는 내년까지 공공기관 직원 30%를 그 지역 인재로 하자는 게 확정된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이 30%에 추가로 20%를 타지역 학생으로 확대하는 법안도 논의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역인재 할당제를 혁신도시는 물론 국가산단에 입주한 기업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추진 중인 지역균형발전의 한계에 대한 인식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 전 대표는 “공공기관의 추가이전도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정부는 시간이 적게 남았을 지라도 이전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의 지역발전은 시도별로 이뤄졌고, 큰 규모의 공모사업이 잘게 쪼개지는 현상이 있었으며 인접도시간 경쟁이 과열되는 역효과가 있었다”며 “초광역적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한 말이다. “그간의 균형발전은 각 지자체가 계획하면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식이었다. 한계가 뚜렷한 방식이다. 시·도보다 넓은 지역을 묶어 자족적인 경제권으로, 동시에 활력을 갖는 경제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에서도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고, 청년이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일부 지자체에서 제안하는 메가시티 구상에 찬성하는 이유다.”  

하지만 메가시티도 당장 실현하기 쉽지 않은 구상이다. 이 전 대표는 당장 할 수 있는 정책 중에서 수도권 기업들의 본사를 지역으로 이전하는 ‘지역본사제’와 ‘복수본사제’의 도입을 제시했다. 최근 미국의 유명 기업들이 뉴욕이나 워싱턴DC에 있던 본사를 플로리다나 애틀랜타로 옮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역에도 좋은 기업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이 전 대표의 시각이다.

이 전 대표의 소개다. “국내에도 지역으로 본사를 옮긴 기업이 있다. 전남지사로 있을 때 유명 교량 설계업체가 나주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겼다.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의 다리를 설계할 만큼 기술력이 뛰어난 곳이었다. 업체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고맙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물었는데, 답변이 명쾌했다. “대한민국에 다리다운 다리 놓아야 할 곳이 전남 말고 더 있습니까?” 그 말씀이 맞더라. 전국에서 가장 섬이 많은 광역단체가 전남 아닌가.”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유명 김 가공업체는 전남 신안군의 한 섬으로 본사를 옮겼다. 지난해에만 10개국에 800억원어치를 수출한 곳이다. 이곳 대표에게도 물어봤는데, 역시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김 만드는 회사의 본사가 섬에 있다고 하면 거래처에서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서울에 본사가 있는 것보다 더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겠나.“

이 전 대표는 예상되는 기업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수도권에 있는 본사가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본사를 수도권과 지역 두 곳에 복수로 두는 방식이 추진 될 수 있도록 행정이나 국회 입법으로 최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델라웨어는 인구가 100만명도 안 되는 작은 주(州)다. 면적도 한반도의 2% 남짓(약 5000㎢)으로 미국 50주 가운데 둘째로 작다. 이곳에는 테슬라를 비롯 월마트, 아마존, 구글, 코카콜라, 버크셔해서웨이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본사를 델라웨어에 두고 있다. 델라웨어 주정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포천 500대 기업 중 67.8%인 338곳이 ‘본사 주소지’로 델라웨어를 택했다. 이런 기업들이 150만개나 된다. 델라웨어 인구(99만명)보다 많다.

델라웨어가 ‘법인(法人) 천국’이 된 것은 기업 친화적인 정책 덕분이다. 세금이 대표적이다. 델라웨어는 각종 감면 조치를 통해 주법인세 부담을 대폭 낮췄다. 파격적인 혜택이다. 기업별로 내는 세금은 적지만 워낙 등록한 법인수 많다 보니 전체 세수는 늘어나는 구조다. 기업들의 지역 이전에 따른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지역이전을 고민을 떠안게 될 기업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차원에서 본사를 수도권과 지역 두 곳에 두는 ‘복수 본사제’를 지역본사제의 보완 옵션으로, 둘을 패키지로 도입해볼 만하다는 것이 그의 의중이다. 물론 델라웨어 모델은 지방세 결정 권한을 연방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갖고 있는 재정분권 덕분에 가능했다. 당장 한국에선 중앙정부가 징수한 뒤 일부를 지방에 나눠주는 중앙집권적 구조에선 ‘그림의 떡’ 같은 얘기로, 이는 풀어야 할 숙제다.

사실 본사와 지역 사업장의 분리로 인한 폐해는 줄곧 제기돼 왔다. 경영 콘트롤타워와 연구개발기능이 없이 생산부문만 남은 지역 사업장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단순 하청생산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순생산하청기지는 경영환경이 나빠지거나 주문이 끊기면 곧장 사업장 통폐합과 공장폐쇄로 이어지게 된다.

이 경우 지역경제 붕괴로 지역사회가 흔들리고, 도시가 황폐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된 근로자 삶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공장 폐쇄 카드를 손에 쥔 사용자 측의 압박으로 노동조건 또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지역자금의 역외 유출과 세수 감소 문제도 심각한 사안이다. 대표적으로 전북 군산의 현대조선소 가동 중단과 GM대우 사례가 꼽힌다.

이 전 대표가 주창한 지역 본사제의 도입은 한계를 맞은 지역 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NY표 새 버전으로도 읽힌다. 다만, 그의 국무총리나 당 대표 재임 시절에 행정과 입법사항으로 추진 시도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총리가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라고 하지만 대통령 아래(一人之下)에서 명령을 받는 2인자일 뿐이다. 더욱이 재정분권이 미약한 현재의 중앙집권적 재정구조 아래에선 자신의 소신을 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지역 균형발전은 정보와 돈, 사람, 기회가 다 모여 있어 거대 블랙홀이 된 ‘서울공화국’. 수도권 일극체제를 깨야하는 것은 절박한 시대정신에 다름 없다. 이 전 대표의 공약이 곧이 안 들리는 ‘정치적 언약’으로 끝나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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