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네거티브를 반드시 심판해야 하는 이유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1 10:00
  • 호수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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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7개월 전 터진 김대업의 거짓 폭로, 선거를 결정짓다

“김대중이가 피리를 불면 김일성이 춤을 추고, 김일성이가 북을 치면 김대중이가 장단을 맞춘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김대중을 향해 박정희가 했던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선거 때마다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용공 음해에 시달려야 했다. 그랬던 그가 마침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던 것은 네거티브 선거의 높은 벽을 뛰어넘은 정치사적 사건이었다.

그렇게 용공 음해 네거티브도 이겨내는 정치를 경험했지만 그 뒤로도 우리 정치에는 온갖 네거티브가 선거판을 뒤흔드는 광경이 반복됐다. 네거티브가 선거 결과를 사실상 결정지은 게 2002년 대선이었다. 선거를 7개월 앞둔 그해 5월, 김대업은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폭로했다. 이는 오마이뉴스 보도를 시작으로 대선판을 뒤흔드는 초강력 ‘병풍(兵風)’으로 커졌다. 1위를 달리던 이회창의 지지율은 단숨에 12%포인트가량 급락하며 휘청거렸다.

선거 기간 내내 병풍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된 이회창과 노무현의 득표율 차이가 2.3%포인트에 그쳤음을 감안하면 병풍 의혹이 없었다면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선거가 끝난 후 김대업은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10개월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오마이뉴스와 일요시사 등도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김대업이 병역비리 의혹의 근거라고 제시했던 녹음테이프는 위조된 것으로 판명됐다. 병풍 의혹은 그렇게 조작극으로 확인됐지만 선거는 이미 끝나버린 상황이었다.

반대로 2007년 대선에서 있었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BBK 의혹은 훗날 사실로 확인됐지만, 선거 당시에는 공방거리로만 남아 이명박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당내에서 먼저 제기됐던 이 의혹은 오히려 사실이 입증되지 못함으로써 근거 없는 네거티브 취급을 당했던 정반대의 경우였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BBK 한 방’으로 판을 뒤집기에는 이명박과 정동영의 격차가 워낙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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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업씨는 지난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폭로했다. 이후 김씨는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시사저널 이종현

‘한 방에 역전’ 네거티브의 달콤한 유혹

네거티브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든 아니든 선거에 나선 당사자들이 네거티브의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무척 어렵다. 특히 열세에 처해 있는 후보 캠프에서는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인 한 방’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선거를 ‘운칠기삼(運七技三)’ 식으로 치르는 경우도 생겨난다. 지난 4월 ‘생태탕 선거’ 소리를 들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모습이 그런 경우다. 네거티브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한 방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들을 수렁에 빠뜨려 패배를 기정사실로 굳혀버리는 경우도 많다.

지난 4·7 보궐선거는 이제 네거티브 선거전이 유권자들에게 그다지 효과가 없는 퇴물임을 보여줬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열세에 처한 민주당 박영선 후보 측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겨냥해 대대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2021년 대한민국 수도의 시장을 뽑는 선거의 최대 이슈는 느닷없이 ‘생태탕’이 됐고 페라가모, 하얀 로퍼, 선글라스 같은 키워드들이 다른 이슈들을 다 덮어버렸다. 16년 전 생태탕 먹으러 온 사람의 신발 색깔이 이슈가 된 선거였지만, 후보 간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져 오세훈은 20%포인트 가까이 격차를 벌리며 압승을 거뒀다. 선거전 막판에 김어준까지 방송을 통해 참전한 네거티브 선거가 오히려 시민들의 피로감과 혐오를 유발한 결과였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생태탕 선거가 심판당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았건만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X파일’과 ‘쥴리’가 등장했다. 민주당 쪽에 선 유튜버들과 일부 지지자는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과거 강남의 유흥업소 접대부였다는 터무니없는 흑색선전을 대대적으로 유포했다. 최근 어느 친여 유튜브에서는 한 전직 검사와의 동거 주장까지 유포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흑색선전, 사생활 캐기, 여성 비하, 직업 비하 등을 망라한 천박한 내용들이지만 진위 여부를 가릴 틈도 없이 괴담은 선거 한복판에서 확산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생태탕 선거로 망신을 당한 여당과 그 지지자들이 유난히 네거티브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광경이다. 원래 네거티브는 야당의 무기였는데 근래의 네거티브 선거는 여당 세력이 주도하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곤 한다. 후보들에 대한 정상적인 상호 검증이야 누가 뭐라 하겠냐만 검증의 탈을 쓴 흑색선전이 활개를 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강력한 팬덤층을 거느리고 있는 김어준의 방송이 여당 편을 들며 그런 네거티브의 지원군 역할을 시민 세금으로 계속하고 있는 광경은 상식에 반한다.

 

언론이 팩트 검증해 심판 역할 제대로 해야

한창 진행 중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도 네거티브 늪에 빠져 헤어나올 줄 모른다. 정세균-이재명 후보 간의 ‘여배우 스캔들’과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라는 낯 뜨거운 공방이 시작되더니 이낙연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바짝 추격하기 시작하면서 진흙탕 싸움이 돼버렸다. 17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의 사진 몇 장을 두고 때아닌 ‘적통 논쟁’도 벌어졌다. 이들은 경기도 공무원의 ‘SNS 여론조작’ ‘병역 미필 원팀’ 포스터 등 사사건건 대결하더니 ‘백제’ 발언의 지역주의 여부를 둘러싼 말 폭탄 싸움은 점입가경이 됐다. 이재명-이낙연의 사활을 건 전면전은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 때 이명박-박근혜의 싸움을 방불케 한다.

선거에서 후보의 신상과 도덕성, 정책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서로 간의 비판과 공방이 가열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선거에서 네거티브가 갖는 긍정적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네거티브가 사실에 근거한 공격이냐는 것이다. 사실에 근거한 네거티브는 정치적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네거티브는 저급한 흑색선전이 되고 만다.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릴 때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은 팩트 여부를 확인하는 심판으로서 무엇이 정상적인 검증이고 어떤 것이 비열한 흑색선전인가를 가려내 시민의 합리적 판단에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 언론이 ‘심판’이 아니라 ‘선수’가 돼버린 현실에서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은 시민들의 몫이다. 시민들이 주권을 행사하는 장을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리는 무분별한 네거티브는 오히려 심판당한다는 경종을 울려야 우리의 선거민주주의는 지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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