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네거티브, 점점 더 힘 잃는 이유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7.31 14:00
  • 호수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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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지향적’ 네거티브, 유권자 최종 결정에 영향 못 미쳐
“달라진 유권자들, 네거티브 펼수록 반감 더 커질 수도”

“네거티브라는 유령이 선거판을 배회하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에 나타나는 유령이 바로 네거티브(Negative)다. 네거티브는 말 그대로 상대방의 부정적 요소나 사건 등을 끄집어내 공격하는 행위를 뜻한다. 범위를 어느 정도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네거티브의 의미가 다소 달라질 수는 있다. 미국에선 ‘네거티브 캠페인’이라는 하나의 정치 기술로 여겨지기도 한다. 국내에선 대체적으로 ‘근거 없는 비방전’으로 정의된다. 네거티브의 시초를 살펴봐도 1800년대 미국 대통령 후보들이 서로 ‘선동가’ ‘겁쟁이’ ‘바보’ ‘범죄자’라고 비방했던 것이라고 한다.

국내 정치에서 네거티브는 점차 그 수위와 강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가장 최근의 선거였던 지난 4·7 재보선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선 재보선에서 남은 건 생태탕과 엘시티, 도쿄 아파트뿐이라는 평이 나왔다. 여권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내곡동 투기 의혹을 제기하다 오 후보가 내곡동 생태탕집에 간 적이 있느냐를 선거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또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에 대해선 고급 아파트 엘시티(LCT) 거주, 특혜 분양 의혹을 놓고 집요하게 공격했다. 반대로 야권에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도쿄 아파트 소유 논란을 반복해 공격했다. 의혹 제기는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재보선에서 나온 각 주자들을 향한 공세는 상당수 억지스럽거나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야말로 네거티브가 난무했다는 뜻이다.  

ⓒ일러스트 정찬동

여야 유력 주자 사생활 향한 네거티브 공방 지속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대선 국면도 마찬가지 양상이다. 시작부터 네거티브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5월 야권의 유력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해 “(의혹) 파일들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밝히진 않으면서 매우 많은 의혹이 존재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 발언은 곧 윤 전 총장에 대한 ‘X파일 논란’으로 번졌다. 각종 버전의 파일들이 떠돌았다. 출처는 불분명했다. 파일 속 내용의 진위 여부는 물론 진짜 X파일이 무엇인지, 그것이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윤 전 총장의 아내 김건희씨를 둘러싼 ‘쥴리’ 논란도 네거티브에 활용됐다. 떠도는 파일들엔 윤 전 총장의 처가, 즉 김씨와 그 모친의 사기 사건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쥴리 논란도 그중 하나다. 김씨가 과거 쥴리라는 예명으로 유흥업소 접대부로 일했다는 의혹이다. 사실 여부도 확실하지 않지만, 개인의 사생활일 뿐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경쟁 후보들은 이를 공세 도구로 활용했다. 여권의 대선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6월30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쥴리 논란에 대해 “들어봤다”며 “대선후보라는 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주변의 친인척, 친구 관계, 이런 게 다 깨끗해야 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강민진 정의당 청년대변인은 “이렇게까지 정치를 저질로 만들어야 하나”라며 “여성을 공격할 때 과거에 대한 성적인 의혹을 제기하는 행태는 너무 낡고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연합뉴스
야권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7월26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에서 열린 월주 스님 영결식 조문을 마치고 인터뷰하고 있다.ⓒ연합뉴스

여권의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서도 사생활을 둘러싼 네거티브가 떠들썩했다. 이 지사가 출마하는 선거 때마다 언급되는 ‘여배우 스캔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호출됐다. 당내 경쟁 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7월5일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주요 덕목으로 도덕성을 거론하며 여배우 스캔들에 대해 캐물었다. 흥분한 이 지사가 “어떻게 하라는 건가. 제가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반응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홍준표 의원은 이 지사뿐 아니라 같은 야권의 윤 전 총장을 향해서도 사생활 이슈를 반복해 꺼내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홍 의원은 7월28일에도 SNS를 통해 두 사람을 겨냥해 “여야 대선주자 한 분은 가족 욕설과 여배우 스캔들로, 또 한 분은 가족 스캔들로 논란의 중심이 된 추한 대선을 본 일이 없다”며 “문제가 된 두 분 대선주자들은 단순히 네거티브라고 변명만 하지 마시고 본인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해명을 해서 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들을 둘러싼 네거티브가 사생활 중심으로 반복 재생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얄팍한 사람들이 국민들을 방황하게 만들고 사사로운 사생활에 매몰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엔 여권 내부의 네거티브 공방이 시끄럽다. 경선 과정에서의 공방은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최근 민주당 내에서 벌어진 네거티브는 유독 날카롭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느냐 반대했느냐를 두고 이 지사 측이 경쟁 후보 이낙연 전 대표를 몰아세웠다. 이른바 적통 논쟁이다. 이로 인해 양 캠프는 서로 감정이 상한 듯 거칠게 공방을 주고받았다. 무려 17년 전 일이 당의 차기 대선주자를 뽑는 경선에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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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7월28일 오후 본경선 1차 TV토론회에 참석해 있다.ⓒ국회사진취재단

17년 전 이야기까지 동원된 與 네거티브

반대로 이 전 대표는 이 지사의 한 인터뷰 발언(“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소위 백제, 호남 이쪽이 주체가 돼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예가 한 번도 없다”)에 대해 ‘지역주의 망령을 끄집어냈다’고 주장하며 공세를 폈다. 다른 후보들도 가세하며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정세균 전 총리는 이 지사를 겨냥해 “확장력을 출신 지역으로 규정하는 관점은 ‘일베’와 같다”고 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민주당은 7월28일 ‘원팀협약식’이라는 행사까지 갖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주자들은 당사에 모여 네거티브 공방을 멈추고 정책을 내놓는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내용의 선언문을 낭독하고 서명했다.

지난 몇 달 사이 대선주자들의 네거티브성 발언을 정리해 그려보면 상당히 얽혀 있고, 복잡하다. 같은 편이지만, 서로에게 거칠게 네거티브 공세를 편다. 한마디로 진흙탕 싸움이다. 양승함 교수는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의 천박한 선거”라고 혹평했다.

물론 네거티브를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얘기하긴 어렵다. 네거티브가 아예 없는 선거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검증은 분명히 필요하다. 검증과 네거티브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네거티브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 정치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선거 전략이며 선거의 흥행을 가져오는 등 긍정적 측면도 있다”며 “네거티브와 검증의 차이를 구분하고 규정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확인이 안 된 사실을 갖고 공격하는 건 허위사실 유포지만 네거티브 중엔 사실에 기반한 것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네거티브는 실효성이 있을까. 역사가 증명한다. 2002년 ‘김대업 사건’이 대표적이다. ‘병풍(兵風)’으로 불린 이 사건은 당시 군 간부였던 김씨가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유력 주자였던 이 후보는 결국 낙선했다. 하지만 결국 이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네거티브 공세로 파장이 생겼고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들은 이제 네거티브를 통한 정치적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신율 교수는 “주자들이 막상막하일 경우 효과가 분명 있을 수 있지만, 네거티브로 인해 판 자체가 뒤집히거나 구도가 바뀌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럿거스대학의 리처드 라우 교수팀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여러 선거를 분석한 결과 네거티브를 주 전략으로 쓴 후보자 대다수가 낙선했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에 따르면 네거티브는 유권자들의 기억에 가장 크게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네거티브는 유권자 심리에 불안정 등 악영향을 줄 뿐, 최종적인 결정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 위해 뭘 할지 논의하는 선거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네거티브가 점점 더 유권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라고 지적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의 심리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과거엔 유권자들이 이념이나 정당, 정치적 요인을 가장 중요시했는데 이제는 내 삶과 내 행복, 경제적인 가치에 중심을 둔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보는 관점과 시야, 판단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네거티브가 있어도 부동산 문제 등 유권자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이슈가 아니면 큰 효과가 없다”고 했다. 

실제 지난 4·7 재보선 당시 야권을 향한 의혹 제기와 네거티브가 훨씬 강했지만, 선거 결과는 야권의 압승이었다. 최근에도 네거티브로 인한 지지율 이탈 등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같은 의미에서 오히려 네거티브를 펴는 쪽이 더 지지를 잃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진 원장은 “과거와 달리 반사 효과에 따른 표가 없다. 네거티브가 먹혀도 공격한 쪽으로 표가 돌아오지 않고 공중에 떠돌거나 오히려 반감이 생긴다. 이는 네거티브와 함께 ‘나는 어떻게 하겠다’는 포지티브도 제시돼야 하는데 그게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도 “내 삶의 문제가 더 중요한 MZ세대에겐 네거티브에 매몰된 모습이 더욱 부정적으로 읽힐 수 있고, 지지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최근 정치권은 국민 삶과는 동떨어진 ‘과거 지향적’ 네거티브로 뒤덮였다. 후보들의 사생활, 적통을 따지는 계파 인식, 영호남을 가르는 지역주의는 모두 미래가 아닌 과거에 갇힌 이슈다. 민주주의 유권자를 이러한 고질적 병폐들로 현혹할 수는 없다. 물론 지난 재보선 때 이슈가 된 생태탕, 엘시티, 도쿄 아파트 등은 부동산 문제로 이어지는 땅 투기 의혹들이었다. 다만 이 이슈 역시 과거에 시선을 둔다. 검증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면 네거티브로 전락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승함 교수는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당면한 과제가 무엇이고, 앞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는 선거 과정이 돼야 한다는 점”이라며 “얄팍하게 국민의 말초신경을 건드리기만 하는 식의 네거티브전은 자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년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210여 일 남짓. 대선주자들 간 네거티브만 오가는 현재 모습은 달라질까. 원팀협약식을 가진 민주당 주자들은 같은 날 오후 열린 TV토론회에서 이 지사의 ‘백제’ 발언 등을 놓고 같은 네거티브 공방을 반복했다. 전망은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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