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축구 ‘이강인-구보’ 라이벌전이 시작됐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31 12:00
  • 호수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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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생 동갑내기 나란히 맹활약하며 주목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이 도쿄올림픽 조별리그에서 대반전을 만들며 B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뉴질랜드와의 1차전에서 패배하며 첫 단추를 잘못 꿰는가 싶었지만 이후 루마니아와 온두라스를 상대한 2, 3차전에서 잇달아 4대0, 6대0의 대승을 거뒀다. 1패를 안고도 올림픽에서 8강에 진출한 것은 김학범호가 한국 축구 사상 최초다.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에서 10득점 1실점이라는 놀라운 득실차를 올린 것도 처음이다.

1차전에서 패했을 때만 해도 김학범호는 당황했다. 하지만 노련한 김 감독은 과감한 선발 라인업 변화와 공격적인 선수 구성으로 팀을 재정비했다. 루마니아전과 온두라스전 모두 상대의 퇴장으로 수적 우세가 있었는데, 그 점을 철저하게 파고들며 완승을 거뒀다. 온두라스와의 최종전에서는 1, 2차전에서 침묵하던 와일드카드(연령 초과 선수) 황의조가 해트트릭으로 대승을 이끌었다. 

ⓒ연합뉴스

한·일 올림픽 축구 이끄는 이강인과 구보

마침표는 막내 이강인의 몫이었다. 뉴질랜드전에 선발출전해 2선 공격을 구축했지만 전술적으로 동선이 겹치고 장기인 패스가 상대에게 막혔다. 후반 교체돼 나오며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던 이강인은 루마니아전부터 역할을 바꿨다. 팀 내 유일한 정통 스트라이커 황의조의 대안이자 후반에 김학범 감독이 더 공격적인 변속 기어를 넣게 만드는 특급 조커로 자리 잡은 것이다. 

김 감독은 루마니아전 후반 23분, 온두라스전 후반 12분에 황의조를 빼고 이강인을 투입했다. 이강인은 1차전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최전방에 섰다. 이른바 ‘제로 톱’으로 불리는 ‘가짜 9번(False nine)’ 전술의 가동이다. 최전방에 연계와 마무리 능력을 모두 지닌 이강인이 배치되자 상대 센터백은 활동 반경과 수비 대응에서 한층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루마니아전에서 이강인은 팀의 세 번째와 네 번째 득점을 페널티킥과 침투 플레이로 만들었다. 온두라스전에선 완벽한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팀의 여섯 번째 골을 책임졌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김 감독은 전문 스트라이커를 황의조만 뽑았다. 황의조가 막힐 경우 대안이 확실치 않았지만 이강인 제로 톱이라는 깜짝 카드가 나오며 돌파구를 찾았다. 

한국에 이강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구보 다케후사가 있었다. A조에 속한 개최국 일본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프랑스를 모두 꺾으며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구보는 3경기 연속 선제골을 터트렸다. 일본은 구보의 활약을 앞세워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조별리그 전승을 거둔 팀이 됐다. 

왼발잡이 공격형 미드필더인 이강인과 달리 왼발잡이지만 오른쪽 측면 공격을 주로 보는 구보는 2선에서의 순간적인 침투와 세컨드볼 집중력으로 득점을 책임졌다. 프리킥 상황에서는 날카로운 슛으로 골문을 위협하기도 했다.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프랑스전에서 승기를 잡자 구보를 하프타임에 빼며 체력 안배에 들어갔다. 토너먼트에 대비한 교체였다. 

연령으로만 따지면 이강인과 구보는 2024년 파리올림픽에도 출전이 가능하다. 네 살 차이를 훌쩍 월반한 선수들이다. 이강인의 ‘막내형’이라는 별명 그대로 팀 내 가장 어린 두 선수가 한·일 양국 올림픽 대표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2001년생 동갑내기인 이강인과 구보는 10대 초반부터 라이벌 관계를 이어왔다. 만 10세가 되기 전 완성된 기술로 인해 축구 영재로 평가받은 두 선수는 1년 격차를 두고 나란히 스페인 무대로 향했다. 2011년 구보가 먼저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2012년 이강인은 발렌시아CF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KYODO연합

10년의 라이벌이 10년의 미래 책임진다

2012년 두 선수는 첫 맞대결을 가졌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유소년 대회에서 각각 발렌시아와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결승전에서 격돌했다. 결과는 바르셀로나의 2대1 승리였지만, 당시 스페인 언론은 자국 명문 클럽의 차세대 에이스로 각광받는 두 아시아 소년에게 집중했다. 대회 후 악수를 나누는 이강인과 구보의 모습은 한·일 양국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후 두 선수의 운명은 엇갈렸다. 구보는 2015년 바르셀로나가 유소년 선수의 해외 이적 규정 위반으로 FIFA 징계를 받은 탓에 유소년팀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됐다. 당시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선배인 백승호, 이승우가 기약 없이 스페인에 잔류한 것과 달리 구보는 실리를 택했다. 일본으로 돌아가 2017년 프로 데뷔에 성공하며 경기 감각을 유지했다. 이강인은 이적 규정을 준수한 덕분에 문제 없이 스페인에서 경험치를 쌓아나갔고 2018년 10월 1군 무대에 정식 데뷔했다. 

2019년 여름 두 선수의 희비 교차는 극명했다. 이강인은 폴란드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해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인 골든볼을 차지했다. 구보는 1년 전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의 본선행을 이끌었지만 정작 대회에는 빠졌다. 레알마드리드 입단으로 스페인 복귀가 성사되며 새 소속팀에 더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16강전에서 일본을 꺾고 승승장구했는데, 이강인의 활약을 구보는 중계로 지켜봐야 했다. 

20세 이하 월드컵의 성공으로 이강인의 가치는 구보를 앞질렀다. 하지만 구보는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당장 레알마드리드에서 주전 경쟁이 힘들다는 판단하에 임대를 떠났는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2019~20 시즌 마요르카 소속으로 36경기에 출전해 4골 4도움을 기록하며 스페인 무대에서 재기의 발판을 만들었다. 반면 이강인은 24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출전 시간이 4배나 차이가 났다. 10대 선수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오랜 시간 뛰며 기량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한데 이 전략에서 두 선수는 정반대 상황을 맞았다. 

2020~21 시즌은 두 선수 모두 약간의 정체를 겪었다. 구보는 기세를 타고 비야레알로 임대를 떠났지만 리그에서 활약이 막혔다. 후반기에는 헤타페로 재임대를 떠나 기회를 노렸다. 이적과 임대를 통해 출전 기회를 노렸지만 발렌시아의 반대로 실패한 이강인도 전년과 비슷한 페이스를 보였다. 이번 여름 두 선수의 선택은 중요하다. 구보는 새 임대 팀을 알아보는 중이고 이강인은 계약이 1년 남은 발렌시아를 떠나 이적을 추진 중이다. 

올림픽은 더 큰 기회를 얻기 위한 무대다. 동시에 10년여의 라이벌전을 이어온 이강인과 구보가 이제는 유망주를 벗어나 한·일 축구의 차세대 10년을 책임지는 에이스로서의 대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대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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