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서는 박효준
  • 이창섭 야구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7 11:00
  • 호수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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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차 마이너리거’의 메이저리그 도전 첫발…피츠버그로 이적하며 빅리그 안착 노려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역사는 박찬호에서 시작된다. 1994년 박찬호는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였던 메이저리그에 처음 발을 들였다. ‘개척자’ 박찬호의 성공으로 메이저리그는 또 다른 한국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덕분에 후배들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첫 안타를 친 한국인 메이저리거도 투수 박찬호였다. 1996년 박찬호는 5월4일 피츠버그 파이러츠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첫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냈다. 박찬호 이후 16명의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8월2일 메이저리그에서 데뷔 첫 안타를 친 또 다른 한국인 선수가 등장했다. 박효준이었다.

8월1일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러츠의 유격수 박효준이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양키스 유니폼의 자부심, 그러나 아쉬운 이적

박효준은 박찬호와 같은 길을 걸었다. 야탑고 시절 특급 유망주였던 박효준은 공격과 수비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박효준을 지도한 야탑고 김성용 감독은 “박효준의 유격수 수비는 한국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수준”이라고 극찬했다. 내야진의 핵심인 유격수이자 타선의 중심타자였던 박효준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날리기도 했다. 당시 고교 선수들 중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도 박효준을 주목할 정도였다.

뉴욕 양키스는 박효준에게 관심을 드러낸 팀 중 하나였다. 2014년 양키스는 20년간 팀을 지켜온 유격수 데릭 지터가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지터의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했고, 이에 최대한 많은 유격수 유망주를 확보했다. 박효준도 그중 하나였다.

박효준은 분명 좀 더 편한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꿈의 메이저리그 무대, 심지어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양키스의 구애를 물리치는 건 쉽지 않았다. 박효준은 힘든 마이너리그 생활을 각오하고 양키스와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은 116만 달러였다. 참고로 박효준 계약 당시, 그 이전까지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한국인 선수로는 박찬호가 유일했다. 최지만은 이후인 2017년 양키스로 이적했다.

큰 기대를 안고 미국에 왔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박효준은 ‘베이스볼아메리카’가 선정한 국제 유망주 18위였는데, 다른 선수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다. 그만큼 마이너리그 하위 레벨에서는 더 확실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박효준은 2015년 루키리그 56경기에서 타율 0.239에 그쳤다. 이듬해 한 단계 더 높은 싱글A에서도 116경기에서 타율 0.225에 불과했다. 수비력이 중요한 유격수라 해도 타격 성적이 너무 부진했다.

박효준이 양키스와 계약할 당시 현지에서는 “박효준의 승격 여부는 파워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메이저리그 유격수는 장타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박효준은 마이너리그 하위 레벨에서도 장타율이 3할대에 머물렀다. 2019년 더블A 113경기에서는 타율이 0.272로 좋아졌지만, 홈런은 단 3개였고, 장타율은 0.370으로 아쉬웠다. 박효준이 한계에 부딪치는 사이, 양키스는 다른 유격수 유망주들을 계속 물색하고 있었다. 특히 2016 시즌 중반 대형 유격수 유망주 글레이버 토레스가 양키스로 온 것은 박효준에게 악재였다.

2019년 더블A 리그를 소화한 박효준은 2020년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시즌이 정상적으로 열리지 못했다. 사무국과 선수협의 극적 타결로 메이저리그에 그나마 60경기 시즌이 개막됐지만, 마이너리그는 끝내 시즌이 취소됐다. 뛸 수 있는 리그가 사라진 박효준은 한국으로 돌아와 개인 훈련에 집중했다. 박효준은 심기일전했다. 양키스도 박효준을 스프링캠프 경기에 내보내 기량을 확인했다. 시즌 출발은 더블A에서 했지만, 이내 트리플A로 올라왔다.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박효준은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미국에 온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48경기에서 타율은 0.327였으며, 마침내 두 자릿수 홈런(10개)과 장타율 5할대(0.567)도 만들어냈다.

세부 지표도 좋았다. 박효준은 장타력을 높이면서도 선구안이 무너지지 않았다. 나쁜 공에 방망이를 내지 않으면서 볼넷과 삼진 수가 똑같았다(각 46개). 선수가 해당 리그 평균 선수들에 비해 얼마나 효율적인 공격력을 보여줬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조정득점생산력(wRC+)이다. 박효준은 조정득점생산력이 178로 트리플A 전체 1위였다. 이는 박효준이 리그 평균보다 78%나 더 뛰어났다는 뜻이다.

문제는 양키스였다. 양키스는 여전히 박효준을 메이저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팀에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요지부동이었다. 박효준이 성적으로 무력시위를 했지만, 양키스는 박효준을 선뜻 올리지 않았다. 박효준은 택시스쿼드에 포함돼 한 타석만 들어선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택시스쿼드는 코로나19 확진자를 대비한 예비 전력 성격이었다.

결국 박효준은 양키스와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양키스는 피츠버그 불펜투수 클레이 홈즈를 데려오면서 그 대가로 박효준을 내줬다. 항상 양키스에 자부심을 가졌던 박효준으로선 아쉬운 작별이었다.

 

트리플A 지배한 박효준에 눈독 들인 피츠버그

소속팀을 옮긴 박효준은 새로운 환경과 마주했다. 피츠버그는 당장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든 리빌딩 팀이다. 더 많은 선수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팀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 있다. 피츠버그는 트리플A를 지배한 박효준을 주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트레이드를 단행한 피츠버그 벤 셰링턴 단장은 야수 유망주들을 보는 안목이 탁월한 인물. 이러한 단장이 박효준을 데려온 건 여전히 박효준에게 잠재력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까지 혼선이 있긴 했지만, 피츠버그는 박효준을 마이너리그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리고 박효준은 8월2일 피츠버그 이적 첫 경기에서 2루타를 터뜨렸다. 상대 투수는 이번 시즌 올스타 투수 카일 깁슨이었다.

올해 박효준은 어느덧 미국 진출 7년 차를 맞이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도전이 될 수도 있었다. 트레이드로 전환점을 마련한 박효준은 피츠버그에서 메이저리그 안착을 노린다. 피츠버그에서도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박효준은 끊임없는 경쟁 속에 성장한 선수다.

고교 시절 함께 야구를 했던 동료들이 주목을 받는 동안 박효준은 음지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무대에서 실력 발휘를 해야 할 때다. 7년간의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며 올라온 박효준이기에 더 큰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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