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몸짓은 이제 3년 후 파리올림픽을 향한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8 14:00
  • 호수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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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의 황선우·우하람, 육상의 우상혁, 역도의 이선미 “다음 올림픽은 우리가 주역”

획득한 메달은 없었다. 그래도 “행복하게 수영했다”고 했다. “정말 후련하다”고도 했다. “만족”이라는 말도 많이 썼다. 황선우(18·서울체고)가 그랬다. 유형의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지만 무형의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도쿄올림픽은 실패의 무대가 아니었다.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이었다. 황선우처럼 이번 올림픽에는 도전 그 자체를 즐기는 선수가 많았다. 타인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면서 기록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벌써부터 3년 후인 2024 파리올림픽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연합뉴스

성장형 아이콘 황선우

황선우는 아직 18세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의 올림픽 첫 출전 성과는 더욱 기대감을 갖게 한다. 황선우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 진출해 47초82의 기록으로 5위에 올랐다. 아시아 선수로는 스즈키 히로시(일본)가 1952 헬싱키올림픽 때 은메달을 딴 후 69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냈다. 아시아 신기록(47초56)도 세웠다.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데도 이뤄낸 결과다. 황선우와 함께 역영한 이번 대회 5관왕 케일럽 드레슬(26·미국)은 황선우에게 “내 18세 때보다 빠르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황선우는 이번이 사실상 첫 국제대회 출전이었다. 경험이 부족해 주종목인 200m 결승에서 초반 오버페이스로 인해 막판에 힘이 떨어져 7위로 레이스를 마치기도 했다. 수영 지도자들이 경험만 쌓이면 황선우가 얼마든지 세계 수영계를 호령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이유다.

스스로도 올림픽을 통해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하면서 배운 것도 많다. 황선우는 “아직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조금씩 하다 보면 기량도 향상될 것 같다. 도쿄올림픽을 발판으로 삼고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2022년 9월 항저우)도 차근차근 올라가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한다.

3년 뒤 그의 경쟁자는 톰 딘(21)과 스콧 덩컨(24) 등 영국 선수들이 될 전망이다. 이들은 나란히 이번 대회 자유형 200m에서 1, 2위를 차지했다. 특히 금메달리스트 딘의 경우 두 차례나 코로나19에 걸렸는데도 이번 대회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다. 4위에 오른 루마니아의 ‘신성’ 데이비드 포포비치(17)의 저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3년 뒤 황선우는 그들보다 물속에서 더 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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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이빙 새 역사 쓴 우하람

다이빙은 중국의 메달밭이다. 출전 대회마다 1, 2위를 가져간다. 다른 나라들은 보통 3위 경쟁을 펼친다. 한국은 그동안 결선 무대에 오르는 것조차 어려웠다. 2012 런던올림픽까지 18명이 겨루는 준결승전에 오른 선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2016 리우올림픽 때부터 바뀌었다. 우하람(23)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하람은 당시 남자 10m 플랫폼 결선에 올라 한국 다이빙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11위)을 냈다. 그리고, 5년 뒤 열린 도쿄올림픽 3m 스프링보드에서 자신의 기록을 다시 지웠다. 당당히 전체 4위에 올랐다. 막판까지 3위 경쟁을 했던 터라 아쉬움은 짙게 남는다. 그래도 우하람은 “약간 즐기면서 내 것만 한다는 생각으로 했다. 메달은 못 땄지만, 기분이 안 좋거나 그러진 않다”고 했다.

우하람은 부산 사직초등학교 1학년 때 방과 후 수업으로 다이빙을 처음 접했다. 수영도 못 했던 터라 맨 처음에는 구명조끼를 입고 입수했다. 다이빙의 즐거움에 눈을 뜬 뒤에는 악착같이 훈련한 덕에 만 14세에 최연소 남자 다이빙 국가대표가 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는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땄다. 우하람은 누구나 인정하는 연습벌레다. 그 자신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남들보다 많이 노력하고 훈련했다”고 말한다. 팀에서 외박이나 휴가를 줘도 홈 트레이닝을 하면서 올림픽을 준비했다. 그의 노력은 3년 뒤 더 큰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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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긍정의 에너지, 우상혁

경기 내내 우상혁(25)은 싱글벙글했다.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도약하기 전 관중석을 향해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최종 순위는 메달권과 한 끗 차이인 4위. 3위와 비교해 단 2cm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세계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개인 최고기록(2m33cm)을 넘어 한국 최고기록(2m35cm)을 세웠다. 한국 육상 트랙&필드 역사상 최고 순위도 작성했다. 사실 한국 선수가 육상 트랙&필드에서 올림픽 결선에 진출한 것도 1996 애틀랜타올림픽 이진택(높이뛰기) 이후 25년 만이었다. 우상혁은 “매우 행복하고 즐겁게 뛰었다.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데, 아직도 꿈같다”고 했다. 그가 경기 뒤 숙소에서 맨 처음 한 일은 매운 짬뽕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었다.

우상혁은 이번 대회를 통해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후회 없이 대회를 즐기자”는 마음가짐이 긴장감을 줄여줘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한다. 간발의 차이로 메달을 놓친 데 대해서는 “내 개인 기록인 2m33cm와 한국 기록인 2m35cm를 뛰고 2m37cm, 2m39cm에도 도전했다. 도전을 안 했다면 후회가 남았겠지만, 도전했기 때문에 후회와 아쉬움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가 도쿄에서 뛴 2m35cm는 웬만한 아파트 천장 높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발(265mm)보다 왼발(275mm)이 큰 ‘짝발’ 우상혁의 최종 목표는 2m38cm다. 그는 말한다. “이제 꿈의 기록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라고. “파리올림픽에서는 내가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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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올림픽이니 실망 않겠다”는 이선미

황선우, 우하람, 우상혁 이외에도 역도 신예 이선미(21)가 여자 역도 최중량급 경기에서 4위에 올랐다. 2018년 장미란의 주니어 기록을 15년 만에 갈아치운 이선미는 첫 올림픽 출전에서 단 5kg 차이로 아깝게 메달을 놓쳤다. 이선미는 “첫 올림픽이니까 실망하지 않겠다”면서 “내년 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올림픽 준비를 위해 곧바로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음이 다음 국제대회를 향해 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스포츠 종목마다 선수층이 얕아졌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속속 등장한다. 옛날과 같은 스파르타식 훈련의 결과물은 아니다. 즐기면서 긍정적으로 하다 보니 성적까지 따라온다. 이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따뜻해졌다. 메달은 그저 부차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올림픽까지 이제 3년 남았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있다. 1년 뒤 그들은 성큼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하는 종목에서 다시 빛날 것이다. 세계 10강의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았지만, 기본 종목인 육상·수영 등에서는 여전히 약세인 대한민국. 하지만 이들의 겁 없는 도전이 있어 한국 스포츠의 폭도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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