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연대’란 무엇인가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9 08:00
  • 호수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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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의 올림픽 펜싱 경기를 보다가 누군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 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맨 처음에 이 낯선 펜싱이란 것을 하게 됐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학교에 입 학했을 때 교내에는 이미 체육 특기부로 잘나가던 배드민턴 팀이 있었다. 그런데 어 느 날 체육 선생님이 바뀌면서 그 자리에 전혀 생뚱한 양궁 팀이 들어섰다. 학생 중 몇 명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양궁 팀에 들어가 운동장 한편에 세워진 과녁을 향 해 밤낮으로 화살을 쏘아댔다. 그리고 그 당시 양궁 팀에 속했던 동기생들은 전국체 전을 휩쓸었고, 지금은 그중 일부가 외국 양궁 대표팀의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대표팀 오진혁(왼쪽부터), 김우진, 김제덕, 강채영, 장민희, 안산이 1일 오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대표팀 오진혁(왼쪽부터), 김우진, 김제덕, 강채영, 장민희, 안산이 1일 오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렇게 불모지에 싹을 틔운 한국 양궁은 지금 전 세계를 호령하는 위치에까지 올 라서 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양궁은 ‘효자 종목’으로서의 면모를 여지없이 과 시하며 금빛 행진을 이어나갔다. 이번 대회까지 포함해 양궁이 역대 하계올림픽에 서 따낸 금메달만 무려 27개에 이른다.

이 양궁을 비롯해 올림픽의 모든 성공 뒤에는 맨 처음 힘겹게 길을 낸 누군가의 용기와 헌신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앞서 말한 체육교사의 특별한 행동이 그 렇고, 아무도 가지 않은 비인기 종목에 첫발을 내디딘 여러 선구자의 ‘남 몰래 쏟은 피·땀·눈물’이 그렇다. “이 학교에서 꼭 배우고 싶다”며 간청하던 어린 학생을 위해 여학생 팀을 따로 만들어준 초등학교가 없었더라면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양궁 3관 왕’의 위업을 세운 안산 선수의 시작도 없었을지 모른다.

모두 알다시피 올림픽은 안산 선수처럼 의미 깊은 시작과 함께 고된 과정을 거쳐 훈련해온 이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지상 최대의 스포츠 제전이다. 그런 만큼 그들 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가장 공정하고 가장 안전한 무대를 제공해 줘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가뜩이나 힘든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속에 열린 이번 대회에 서 참가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일들은 잇달아 벌어졌다. 많은 사람이 우려했던 선수 촌 내 집단감염이 일어났고,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는 일부 선수가 쓰러져 구토하 는 불상사까지 빚어졌다. 어떤 선수는 “결승선이 마치 전쟁터 같았다”며 일본이 날 씨를 속였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코로나, 폭염에 태풍마저 겹친 올림픽 환경은 선수 들에게 또 다른 장애물이 되었고, 자국 언론에서조차 “걱정과 의혹, 스트레스로 점 철된 호화 스포츠 이벤트”(아사히신문)라는 혹평이 나왔다.

스가 일본 총리는 올림픽 개최를 밀어붙이면서 “도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했다. 하지만 올림픽 기간 동안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연일 기록적인 수치로 늘 어났고, 국민들의 불안·불만도 함께 불어났다. 이런 모습은 여론을 무시한 채 국민 뜻 의 반대편을 향해 도전해 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정부의 역할인지를 되묻게 한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기존의 올림픽 모토인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에 ‘함께’ 를 더해 강조했다. 평화와 화합, 연대라는 올림픽 정신을 최대한으로 구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안전에는 구멍이 뚫렸고, 코로나19의 방어막은 경기장 안팎에서 불안하게 흔들렸다. 2020 도쿄올림픽은 결국 올림픽이 꿈꾸는 ‘연 대’가 어디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는지를 기억하게 만든 올림픽 대회로 남을 듯하다. 스가가 말한 ‘도전’에는 불행히도 ‘누구를 위한’이란 목적어가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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