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유럽 입성한 ‘아시아의 괴물’…김민재, 페네르바체 입단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5 12:00
  • 호수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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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리그 진출 위한 교두보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

축구 국가대표팀 부동의 센터백 김민재가 드디어 유럽 무대를 밟았다. 지난 3년간 무수한 유럽행 소문이 돌았던 김민재의 첫 유럽 입성지는 터키로 정해졌다. 터키 축구 리그인 쉬페르리가의 명문 클럽 페네바르체 구단이다. 탈아시아급 수비수라는 명성을 떨쳤던 김민재는 만 25세에 본격적으로 유럽파로서의 역사를 펼쳐 나가게 됐다. 현지시간으로 8월8일 밤 연고지인 이스탄불에 도착한 김민재는 구단 관계자, 현지 언론, 팬들의 환영을 받았다. 메디컬 테스트 등의 절차를 거치며 이적을 마무리했다.

페네르바체는 갈라타사라이·베식타쉬와 함께 터키 축구의 3대 명가로 꼽힌다. 세 구단 모두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연고로 하는데, 쉬페르리가 출범 원년인 1959년 이후 한 번도 강등을 당하지 않았다. 그 중 페네르바체와 갈라타사라이의 대결은 ‘이스탄불 더비’로 불리며 세계적인 라이벌전으로 꼽힌다. 리그 우승 횟수는 20회로 갈라타사라이(22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페네르바체는 충분히 경쟁력을 지닌 팀이지만, 그동안 김민재를 원했던 팀으로 거론된 적이 없다. 가장 최근인 7월말부터 언급된 팀인데, 결국 협상을 통해 영입에 성공했다. 김민재는 지난 201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왓퍼드를 시작으로, 손흥민이 있는 토트넘 홋스퍼, 이탈리아 세리에A의 유벤투스와 인터밀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의 FC포르투, 네덜란드 에레디비제의 PSV에인트호번 등 10개가 넘는 유럽 클럽과 연결됐다.

6월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대한민국 대 스리랑카의 경기에서 김민재가 상대 공을 가로채고 있다.ⓒ연합뉴스

연봉 절반 포기하며 유럽행…향후 빅리그 위한 유리한 조건 포함

2019년 초 전북 현대에서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한 김민재는 당시 맺은 3년 계약 종료를 6개월 남겨둔 올여름을 최적의 이적 시기로 삼았다. 재계약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베이징도 김민재를 팔 수밖에 없었다. 유벤투스가 먼저 관심을 보였지만 이미 팀 자체가 워낙 쟁쟁한 스쿼드를 갖춘 데다 김민재에 대한 확신이 없어 이적 후 곧바로 하위권 팀으로 임대를 보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협상에 나선 팀은 포르투였다. 포르투는 7월초부터 베이징과 협상에 나섰고, 구단 간 동의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장기 계약에다 추후 이적을 허용하는 조항인 ‘바이아웃’(선수 보유권 매매)이 너무 높게 설정됐다.

김민재의 목표는 잉글랜드·이탈리아·스페인·독일 등 빅리그 진출이다. 유벤투스·인터밀란·토트넘의 관심을 받았지만 유럽 내 경쟁력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아 불발됐다. 유럽을 거친 국가대표팀 선배들도 단숨에 빅리그 클럽으로 가는 것보다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경쟁력 높은 팀을 찾을 것을 조언했다. 김민재 역시 “이적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그런 의견들에 동의했다. 김민재 입장에서는 주전 경쟁이 가능하고, 클럽대항전을 통해 자신을 어필하며, 향후 이적 추진 시 장애물이 적은 선택지를 거머쥐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팀이 페네르바체다. 메수트 외질, 루이스 구스타보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속해 있다. 지난 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하며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페네르바체는 클럽대항전에 단골로 등장하는 팀이다. 터키 리그의 유럽축구연맹(UEFA) 리그 순위는 10위지만 3대 명문의 입지는 빅리그 중하위권 팀에 버금간다. 가장 중요했던 바이아웃 금액에서 페네르바체는 포르투의 절반에 못 미치는 액수를 제시했다.

베이징 구단이 김민재를 보내며 받는 이적료도 자연히 낮아졌지만, 향후 김민재가 빅클럽으로 이적할 경우 발생하는 이적료 일부를 떼주는 ‘셀온’ 조항을 삽입하며 합의를 이끌어냈다. 김민재의 이적료는 300만 유로(약 40억원)로 알려졌다. 김민재도 유럽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현실적인 조건을 양보했다. 베이징에서 그가 받던 연봉은 40억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페네르바체에서는 그 절반 정도를 받는다. 커리어나 나이를 감안할 때 유럽 진출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던 김민재가 안주가 아닌 도전을 택한 것이다.

페네르바체가 김민재를 적극적으로 원한 데는 비토르 페레이라 감독의 뜻이 컸다. 포르투갈 출신인 페레이라 감독은 작년까지 중국의 상하이포트FC를 지휘하며 김민재를 상대팀 선수로 지켜본 인물이다. 중국 무대로 온 유럽과 남미의 세계적인 공격수를 막아내는 괴물 수비수를 보며 큰 매력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미카엘 크라프트 골키퍼 코치도 이번 이적 과정에서 김민재를 적극 추천했는데, 작년까지 베이징에서 함께하며 그의 능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적 협상 막바지에는 구단 회장이 직접 나섰다. 터키를 대표하는 재벌가인 코치 가문의 3세인 알리 코치 회장은 글로벌 백색가전기업 베코(BEKO)의 오너로 유명하다. 2018년 페네르바체 회장에 당선된 그는 김민재와 소통하며 구단의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과거 페네르바체 스포츠클럽(SK) 소속인 배구팀에서 6년 동안 맹활약한 김연경을 언급하며 “같은 김씨니까 김연경만큼 활약해줄 거라 믿는다”며 기대감을 밝히기도 했다.

 

아시아인의 넘사벽인 유럽 무대 ‘센터백’ 도전

190cm, 88kg의 당당한 체구에 빠른 발, 수준급의 기술까지 갖춘 김민재는 2017년 전북 소속으로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빠르게 주전으로 올라서며 향후 10년 동안 한국 수비를 책임질 ‘물건’으로 평가받았다. 부상 탓에 2018년 러시아월드컵 출전에 실패했지만 이후 국가대표팀에서는 부동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 중이다. 중국 무대 진출 후에도 현지에서 활약하는 유럽 출신 감독들의 극찬을 받았다. 함께 베이징에서 뛴 브라질 국가대표 미드필더 헤나투 아우구스투는 “김민재가 브라질 국적이었다면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는 극찬으로 기량을 보증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괴물’이라는 별칭을 얻은 김민재의 유럽 진출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도전이다. 센터백 포지션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국적의 선수가 유럽에서 활약하기 가장 어려운 포지션이다. 실제로 차범근, 박주영, 손흥민, 황의조 등 공격수로 성공한 계보는 있지만, 센터백이 유럽에 가서 생존했던 사례는 홍정호 정도뿐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우크스부르크에서 3년간 뛴 홍정호는 한 시즌 반 동안 주전으로 활약했다. 최근에는 일본 국가대표로 EPL의 사우샘프턴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요시다 마야의 성공이 눈에 띈다. 그의 뒤를 이어 도미야스 다케히로도 아시아 센터백의 한계를 깨기 위한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주전 수비수가 된 도미야스는 올여름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으로의 이적이 유력한 상태다.

두 살 어린 도미야스보다 뒤늦게 유럽 무대로 왔지만, 김민재의 능력은 그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시다는 네덜란드(VVV펜로), 도미야스는 벨기에(신트트라위던)에서 처음 유럽 커리어를 시작했다. 페네르바체는 그보다 훨씬 높은 레벨의 클럽이다.

그만큼 김민재가 경기에 나서기 위해 헤쳐 나가야 할 주전 경쟁의 수준도 높다. 페레이라 감독은 센터백 3명을 공격적으로 기용하는 스리백 전술을 가동한다. 페네르바체는 김민재까지 포함해 7명의 센터백을 보유하고 있다.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 스티븐 콜커, 헝가리 국가대표 설러이 어틸러, 터키 국가대표 자네르 에르킨, 체코 국가대표 필립 노바크 등이 있다. 경기에 나서기 위해서는 7대3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래도 페레이라 감독이 김민재의 장점과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첫 유럽 진출에서 큰 자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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