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상대할 적, 민주당 아닌 ‘야당 자신’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4 10:00
  • 호수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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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리스크- 윤석열의 부진, 난조에 빠진 국민의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8월2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을 기념하며 당 회의실 백드롭에 있는 배터리 그림의 빈칸을 모두 채워 넣었다. 당 경선 버스에 모든 대선주자가 탑승함으로써 배터리가 완충됐다는 의미였다. 국민의당과의 합당 문제가 표류하고 있지만, 그래도 국민의힘이 정권교체의 구심체로 결집된 힘을 보이는 계기가 될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야권의 선두 대선주자인 윤석열의 전격 입당은 야권의 분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로 국민의힘을 안도시킬 만했다. 큰 고비를 넘었다고 국민의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당 곳곳에서 크고 작은 파열음이 생겨나고 있다. 대선주자들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이준석 대표에 대한 불만들이 터져나오는가 하면, 이준석-윤석열 양측의 갈등 속에 윤석열 입당 효과는 사실상 없었던 것이 돼버렸다. 국민의당과의 합당 논의는 ‘일본군의 예스까, 노까’ ‘내가 전범이면 국민의힘은 일본군이냐’ ‘철부지 애송이’ 같은 험한 말까지 오가는 감정싸움만 낳은 채 무산 위기를 맞고 있다. 심상치 않은 것은 윤 전 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같은 유력 입당 주자들이 민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더불어민주당 주자들에게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는 점이다. 4·7 재보선 압승 때만 하더라도 이대로 가면 정권교체는 대세가 될 것이라던 국민의힘의 낙관론은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긴장론으로 바뀌게 됐다.

8월2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입당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만나 ‘화합의 행사’를 가졌다. ⓒ시사저널 이종현

국민의힘이 정권교체 대안 될지에 불안 커져

그렇다고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이 특별히 줄어든 것은 아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8월3~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재명 경기지사는 25%로 1위, 윤석열 전 총장은 19%로 2위로 나타났다. 직전 조사에 비해 윤석열 지지율이 6%포인트 하락하면서 이재명에게 역전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47%로, ‘정권유지를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39%)보다 더 많은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다른 여론조사 결과들을 봐도 대동소이하다. 그러니까 윤석열의 지지율 하락에도 정권교체론이 여전히 여론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정권교체 요구를 국민의힘이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이 정권교체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으면 문재인 정권보다 나은 정권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는 모습이다.

원인은 일단 ‘이준석 리스크’와 ‘윤석열의 부진’이라는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이준석 대표는 제1야당의 대선 관리를 해나가며 야권 전체를 결집시켜 정권교체를 이뤄나갈 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야권의 대선주자들과 지지층을 아우르는 노력을 미루어둔 채 봉사활동 이벤트 불참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놓고 연일 윤석열 측과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합당 결렬의 책임을 놓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선을 넘은 감정싸움만 벌였다.

여당과의 투쟁을 이끌어야 할 야당 대표가 연일 내부 투쟁에 주력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최고위원들이 이견을 내놓으면 직접 전화를 걸어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휴가지에서까지 SNS를 통해 공방전을 벌인다. 제1야당을 이끄는 대표라기보다는 SNS와 종편에서 논쟁을 즐기는 논객의 모습이다. 진중권과 논쟁을 많이 하더니 논객 진중권을 닮아가는 듯하다. 그러니 야권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야 할 대표가 오히려 갈등을 자극하고 확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준비되지 못한 정치 신인의 언행 연일 ‘구설’

그런데 국민의힘의 불안을 키우는 데 ‘이준석 리스크’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실 ‘윤석열 리스크’다. 윤석열만 안정됐다면 이준석 리스크 정도는 넘어서 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당초 윤석열이 입당하면 국민의힘은 그 효과를 등에 업고 대선판에서 대세몰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국민의힘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중도층과 탈민주당층의 지지까지 받고 있던 윤석열의 입당이 자신들의 외연 확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파도 파도 미담’이라던 최재형까지 진즉에 입당했으니 입당 인사들에 의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법도 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두 정치 신인들의 언행이 연일 구설에 오르는 상황이 전개됐다. 윤석열의 정제되지 못한 말 습관은 ‘주 120시간 노동’ ‘대구 민란’ ‘부정식품’ ‘남녀 간 교제를 막는 페미니즘’ ‘후쿠시마 원자력 방사능 유출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연일 설화를 낳았다. 단순한 말실수인지, 평소 가졌던 생각을 드러낸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입당 효과를 잠시 누렸던 지지율은 하락세로 반전되기에 이르렀다.

가족모임에서의 애국가 제창 사진 홍보, ‘헌법가치를 잘 지킨 이승만’ 발언, 박정희 생가에서의 ‘박근혜 사면’ 발언으로 이어진 최재형의 모습도 그를 잘 모르던 중도층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특히 국민의힘이 안고 있는 확장성의 한계를 보완해 줘야 할 윤석열-최재형 같은 입당 주자들이 오히려 국민의힘보다도 더 오른쪽에 서있는 모습으로 비춰진 것은 의아한 상황이었다. 중도층을 멀어지게 만드는 스탠스라면 국민의힘에서 정치를 해온 기존 주자들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게도 됐다.

끝내 윤석열-최재형 등이 중도층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국민의힘으로서는 합리적 보수 노선에 안정감 있는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지사 같은 주자들의 부상 가능성에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오세훈 서울시장 같은 경우도 모든 주자들이 무너졌을 경우의 최후 차출 카드로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4·7 재보선에서 기사회생한 것 같았던 국민의힘이지만, 이렇게 복잡한 경우의 수를 구상해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상황을 다시 맞고 있다.

대선 정국 입구에서 국민의힘이 보여주고 있는 난기류의 핵심은 대안세력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로 모아진다. 당 대표도, 유력 대선주자들도 한결같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심판은 말하고 있지만, 막상 자신들이 집권하면 무엇이 더 나아질 것인지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대신 눈에 보이는 것은 자기들끼리의 다툼이다. 그러니 정권교체 여론이 우세한데도 이를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야당이 되고 있다. 어느 새 국민의힘이 상대할 적이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 자신이 돼버린 것이다. 민주당이 그랬듯이, 자신들이 잘해 4·7 재보선에서 압승한 것이 아님을 국민의힘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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