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대통령과 ‘따로 또 같이’…결단력 돋보였던 100일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7 12:00
  • 호수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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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김정숙 여사 順…北 김정은 순위 하락

“이제 당이 주도하겠다.” 지난 5월3일 취임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일성이었다. 정책의 주도권을 청와대에서 여당으로 가져오겠다는 선언이었다. 당이 중심이 돼 대선판을 짜겠다는 각오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곧장 “당의 주도는 바람직한 일”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송 대표의 취임은 정권 말, 당·청 관계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8월10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송 대표는 올해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대통령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꼽혔다. 2위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12.3%), 3위 김정숙 여사(10.4%)를 근소하게 앞섰다. 지목률 13.2%로 그리 압도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송 대표의 1위는 여러모로 곱씹을 만한 결과다.

해마다 여당 대표는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조사에서 꾸준히 10위권 내 이름을 올려왔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 참모와 주변 강대국 지도자 등을 제치고 당 대표가 선두에 오른 건 극히 이례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번이 처음이다. 심지어 강한 리더십의 전형이자 친문 좌장으로 통하는 이해찬 전 대표 역시 당 대표 시절인 2019년엔 9위(4.4%), 2020년엔 5위(9.3%)에 그쳤다. 더구나 송 대표는 당내 비문이자 비주류로 분류된다. 그런 그가 대통령에 충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받는 건, 취임 후 100일여 동안 청와대와 긴장 관계를 적정하게 유지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국회사진취재단

성과도 숙제도 분명한 선거판의 키플레이어

송 대표는 4·7 보궐선거 참패 후 땅에 떨어진 당의 분위기와 지지율을 모두 회복시켜야 한다는 임무를 안고 취임했다. 그가 연일 ‘쇄신론’을 외친 이유였다. 당·청의 지난 과(過)를 인정하고 청와대와 다소 결이 다른 행보도 마다하지 않았다. 취임 직후 ‘조국 사태’를 사과했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중단된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를 검토하기도 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민주당 의원 12명을 지목하자, 단 하루 만에 탈당을 권유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에 대해 ‘배설물’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중도층 민심을 잡고 대선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의지가 담긴 행보였다.

송 대표의 행보가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대선을 불과 200여 일 앞두고 있다는 시기적 특수성과도 연결된다. 대선은 분명 ‘정당의 시간’이다. 그리고 당 대표는 선거판의 가장 유력한 키플레이어다. 문 대통령으로서도 지금 가장 중요한 ‘정권 재창출’을 위해, 선거의 핵심 관리자인 송 대표의 목소리와 방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의 쓴소리는 청와대의 결정에 실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임혜숙(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반대해 임명을 무산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친문 강성 지지층의 사퇴 요구와 각종 비난에 직면했지만 당이 선거 참패의 충격을 추스르고, 당·청 관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많다.

여전히 숙제도 보인다. 잦은 실언은 송 대표가 가진 주요한 리스크로 꼽힌다. 친문 강성 지지자들을 향해 당의 금기어인 ‘대깨문’ 단어를 사용하거나, 광주 건물 붕괴 참사를 두고 “운전자가 액셀러레이터 조금만 밟았어도” 등의 발언을 하는 등 당 차원에서 송 대표 탓에 가슴을 쓸어내린 상황이 적지 않았다. 더불어 지지율 40%를 유지하고 있는 문 대통령과도 대립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당 대표로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도 안고 있다.

(왼쪽부터)
(왼쪽부터)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김정숙 영부인·故 노무현 전 대통령ⓒ연합뉴스·청와대 제공·청와대사진기자단

임기 말 향하며 해외 지도자들 영향력 급감

무엇보다 송 대표의 최종적 평가는 대선을 거치며 단단한 ‘원팀’ 기조를 지켜내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송 대표가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유리한 쪽으로 경선을 관리하고 있다”는 당내 불만이 나오는 건 킹메이커로서 권위를 해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2019년과 2020년 조사에서 ‘대통령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 2위를 다퉜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선 외교 상대인 해외 지도자들은 순위가 크게 떨어졌다. 김 위원장은 10위에 그쳤고, 트럼프에 이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위에 머물렀다. 임기 말로 가면서 남북관계, 한반도 외교 등 단기간 성과가 어려운 국제정치보다, 대선을 앞둔 국내정치에 좀 더 무게추를 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유영민 실장은 12.3%의 지목률로 2위에 올랐다. 유 실장은 현 정부 초대 비서실장이자 문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임종석 전 실장(2018년 41.2%로 1위)보다는 영향력이 크게 떨어지지만, 전임자 노영민 실장(2019년 4.7%, 2020년 8.1%)보다는 다소 높게 나타났다.

문 대통령의 친구인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올해도 역시 4위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2017년 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해당 조사에서 영부인 김정숙 여사, 이낙연 의원과 더불어 5년 연속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5월 취임한 김부겸 국무총리는 5위, 이재명·이낙연 두 민주당 대권주자는 각각 6위와 8위를 차지했다.

정치권을 떠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이낙연 의원보다 앞선 7위에 자리했다. 조국 사태 이전인 2017~19년 그는 동일한 조사에서 각각 4위-3위-3위에 오르며 명실상부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차기 지도자로 거론됐다. 특히 2019년에는 1, 2위인 트럼프·김정은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대통령에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조국 사태를 맞으며 2020년 한 차례 순위권 밖으로 벗어났다가 올해 재진입했다.

야권 인사로는 대권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9위)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10위)가 순위권 내에 등장했다. 문 대통령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 순위권에 야권 인사가 진입한 건 2017년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8위(2.1%)에 오른 것이 유일했다. 이 역시 현재의 권력이 한풀 꺾인 임기 말에 나타날 수 있는 결과로 읽힌다.

‘2021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어떻게 선정됐나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는 1989년 창간호부터 올해까지 32년째 이어지고 있다. 단일 주제로는 국내 언론 사상 최장기 기획이다. 이 조사는 우리나라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에서 각 100명씩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매년 국내 최고의 여론조사 전문기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관련 조사를 벌이고 있다.

올해 조사는 6월18일부터 7월16일까지 진행됐으며, 조사방법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조사 대상 전문가 1000명은 남성이 703명, 여성이 297명이다. 연령별로는 30대 207명, 40대 305명, 50대 370명, 60대 이상 118명이 설문에 참가했다. 전문가 조사 특성상 40~50대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많다.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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