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조여 매는 국민, 헐렁한 방역 유지한 정부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4 14:00
  • 호수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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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방역 없이 백신만으로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 못 막는다”

8월11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감염자는 2222명으로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백신 접종률은 약 40%이고, 2차 접종률은 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그런데도 하루 감염자 수는 인구 100만 명당 34명으로 백신 접종률이 우리보다 높은 나라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로 꼽히는 영국과 이스라엘에서는 집단면역 효과가 나타나고 있을까. 영국 옥스퍼드대의 통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 8월8일 기준, 영국의 백신 접종률은 약 69%이고 이스라엘의 백신 접종률은 약 67%다. 두 나라 모두 2차 접종률도 60%대다. 이쯤 되면 신규 감염자가 줄어드는 집단면역 효과가 나타나야 정상이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박정훈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5월 한때 하루 감염자 수가 1000명대로 떨어졌던 영국에서 6월부터 감염자가 증가하더니 7월17일 5만4000명 이상의 감염자가 발생했고, 8월에도 하루 약 2만7000명의 감염자가 나온다. 인구 100만 명당 400명씩 매일 감염되는 셈이다. 이스라엘은 5월 감염자 0명을 기록했지만 7월부터 감염자가 증가하더니 8월 매일 3000명대 감염자가 발생하며 인구 100만 명당 338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우리나라의 감염자 발생 숫자가 백신 접종률이 높은 영국이나 이스라엘보다 적은 것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그 차이를 마스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영국과 이스라엘은 일찍 마스크를 벗었다. 미국도 백신 접종률은 우리보다 높지만 마스크를 일찍 벗는 바람에 현재 하루 감염자 10만 명대로 폭증했다. 미국 남서부 플로리다 등은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백신 접종률이 낮지만 모든 국민이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닌다. 마스크 착용은 백신 접종률을 대신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백신은 변이 바이러스에 약하지만 마스크와 거리 두기는 변이 바이러스도 막는다. 우리 국민은 마스크를 잘 쓰고 조심하는데 정부의 방역 수준은 허술해 좀처럼 코로나19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스크 착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정부가 방역대책을 느슨하게 유지하면 그만큼 경각심이 떨어지므로 ‘마스크 효과’도 반감된다. 실제로 싱가포르와 일본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8월 들어 인구 100만 명당 13명꼴로 하루 감염자가 발생한다. 일본은 인구 100만 명당 125명의 하루 감염자가 생긴다. 두 나라 국민 모두 마스크를 잘 착용하지만 정부의 방역 의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싱가포르는 7월 ‘방역을 포기한 국가’로 비춰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백신 접종률이 70%를 넘자 코로나19를 풍토병으로 관리하는 로드맵을 준비하는 것뿐이다. 한때 국경까지 봉쇄한 싱가포르 정부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사적 모임 인원 제한 등을 여전히 유지하며, 헬스장과 같은 고위험군은 2주마다 코로나19 검사가 필수다. 백신 접종도 9월9일까지 인구의 4분의 3에 대해 마칠 계획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인구밀도가 높은 데다 본래 감염자가 많은 상태에서 올림픽을 개최했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을 위해 입국한 선수 등 대회 관계자의 동선과 행동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통제하지 않았다. 선수와 관계자들이 술판을 벌이거나 쇼핑을 즐긴다는 사실이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올림픽 대회조직위원회는 관계자 중 7월1일 이후 확진 판정을 받은 이는 353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의학 상식을 깬 델타 변이 바이러스

이처럼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 효과를 볼 것이라는 통념이 깨졌다. 집단면역이 쉽사리 형성되지 않는 또 다른 원인은 변이 바이러스다. 지난해 말 인도에서 처음 발생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양상을 보인다. 김우주 교수는 “일반적으로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감염병에 걸려도 증상이 약하고 빨리 낫는다. 병원균 검출량도 적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 전파력도 약하다. 그러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이런 의학적 상식을 깬다. 실제로 백신을 접종해도 코로나19에 걸리면 백신 미접종 감염자만큼 바이러스 보균량이 많으며 백신 효과도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오리지널 코로나바이러스의 2배 이상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그 이유가 밝혀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 백신 접종자가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타인을 감염시킬 전파력은 백신 미접종 감염자와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가 많이 발생한 매사추세츠주 반스테이블 카운티 주민 중 469명의 감염자를 분석한 결과다. 이들 중 약 74%가 완전 접종을 받았고, 이 가운데 약 79%에서 감염 증상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백신 완전 접종자 127명과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거나, 부분적으로 접종했거나, 접종 상태를 알 수 없는 84명의 바이러스 보균량에 차이가 없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로셸 왈렌스키 CDC 소장은 “높은 바이러스 보균량은 바이러스를 전파할 우려가 크다는 의미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홍역과 수두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오리지널 바이러스 감염자보다 1200배 이상 많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바이러스 검출량이 많으면 그만큼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크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7월21일 “중국 광둥성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루징 박사 연구진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몸 안에 바이러스가 이전 감염자보다 최대 1200배나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오리지널 코로나19 감염자는 평균 2~3명을 전염시킬 수 있었다면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는 8~9명에게 전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루징 박사 연구팀은 5월21일 중국에서 첫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가 확인된 이후 이들과 접촉해 격리 중인 감염자 62명을 대상으로 바이러스 보균량 변화 추이를 조사했다. 이를 지난해 처음 출현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63명의 기록과 대조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는 바이러스에 노출된 지 4일이 지나자 몸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전 코로나 감염자는 6일이 지나야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었다. 바이러스가 빨리 증식한 탓에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는 원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보다 바이러스 검출량이 최대 1260배 많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홍콩대 감염병학자 벤저민 코우링 교수는 네이처에서 “바이러스 검출량이 많고 잠복기가 짧다는 사실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높아진 것을 알려준다”고 평가했다.

 

백신 효과 반감시키는 느슨한 방역

백신은 사람의 면역체계를 우회하는 바이러스의 진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연구소 사이먼 렐라 연구원 등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에서 “통념과 달리 인구 대부분이 백신을 접종한 상태에서 비약물적 개입을 완화하면 내성균 출현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비약물적 개입은 마스크 착용이나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조치를 말한다. 즉 백신 접종자가 늘어난다고 다른 방역 규제를 풀면 그 틈을 타 백신에도 살아남는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들은 ‘백신이 효과가 없다’가 아니라 ‘백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의학적으로 강조한다. 백신 접종을 해나가는 동안에도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방역을 유지해야 바이러스 확산과 진화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우주 교수는 “올해 6월까지가 코로나19 유행 시즌1이었다면, 7월부터 시즌2를 맞았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시즌2를 열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의 예방 효과는 떨어지지만 중증과 사망 예방 효과는 약 90% 이상이므로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나 백신 물량이 부족해 큰일이다. 또 정부는 느슨한 방역을 2주씩 연장하는 것밖에 하는 일이 없다. 마스크 착용을 잘 실천하는 국민에게 정부가 효과적인 거리 두기 방역으로 보답해 코로나19에 대한 피로감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의학적 근거에 따라 미국 CDC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이 지속하거나 감염 위험이 큰 지역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백신 완전 접종자도 마스크를 쓰도록 권고했다. 백신 접종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종전 지침을 바꾼 것이다. 왈렌스키 소장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백신 접종자나 미접종자나 비슷한 보균량을 보였다는 점은 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또 예방 접종을 받으면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에서도 중증화, 입원, 사망을 계속 예방할 수 있다”며 백신 접종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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