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고에 외면받는 맥도날드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3 14:00
  • 호수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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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병 논란 이어 식자재 재사용으로 이미지 ‘타격’…명가 재건 노리던 신임 마티네즈 대표는 ‘좌불안석’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한국맥도날드(이하 맥도날드)는 1988년 서울 압구정동에 1호점을 개장했다. 이후 맥도날드는 젊은 세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문화가 됐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약속 장소는 으레 맥도날드가 됐다. 2호점인 종로점이나 3호점인 신촌점이 문을 열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세권’이라는 단어를 본떠 ‘맥세권’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맥도날드 역시 젊은 층을 잡기 위한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였다. 당시로는 혁신적인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도입한 게 1992년이었다. 심야 손님을 겨냥한 ‘24시 매장’이나 배달 서비스인 ‘맥딜리버리’,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맥런치’ 서비스는 많은 호응을 받았다. 젊은 소비자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맥도날드는 이후 국내 대표 프랜차이즈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20년 앤토니 마티네즈 대표 취임 이후 이미지 개선과 실적 반등을 노리던 한국맥도날드가 최근 식자재 재사용 논란으로 또다시 악재에 쉽싸였다.ⓒ시사저널 최준필

드라이브 스루·맥런치 등 新문화 주도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맥도날드의 위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내에 프랜차이즈 붐이 일면서 경쟁 브랜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전까지 맥도날드는 한국에서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해 왔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매출 6000억원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당기순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위기를 느낀 한국맥도날드는 가맹점 확대 정책을 펼쳤다. 2016년에는 조주현 대표를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조 대표는 LG전자와 모토로라 등에서 오랜 기간 마케팅과 제품 개발 등을 전담했다. 2011년 한국맥도날드에 합류한 후 5년 만에 대표이사에 오른 것이다. 맥도날드 역사상 첫 여성 CEO이기도 하다. 조 대표는 수익성 강화에 경영의 초점을 맞췄다. 원가 절감을 위해 햄버거 빵을 저가형으로 교체했다. 돈이 되지 않는 메뉴는 과감하게 단종시켰다. 주요 버거와 음료제품의 가격도 줄줄이 인상했다. 그래서일까. 조 대표 취임 첫해 맥도날드의 당기순손실은 131억원에서 66억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품질 논란이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주요 커뮤니티에는 조 대표 취임 이후 달라진 제품의 사진이 계속 올라왔다. 누리꾼들의 원성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햄버거병(용혈성 요독성 증후군·HUS) 논란’까지 불거졌다. 2016년 9월 4세 어린이가 한 매장에서 맥도날드 해피밀 세트를 먹고 햄버거병에 걸렸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아이 부모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햄버거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당시 부모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햄버거병 논란 역시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201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 맥도날드가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직원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시민단체의 고소로 검찰의 재수사가 진행됐다. 이번에도 무혐의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맥도날드의 이미지는 적지 않은 생채기를 입었다. 악화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조 대표는 ‘주방 공개의 날’ 행사를 개최했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조 대표는 2020년 1월 임기를 남긴 상황에서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후임으로 앤토니 마티네즈 대표가 선임됐다. 마티네즈 대표는 호주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하다 대표이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취임 초만 해도 맥도날드 주변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한 이미지를 마티네즈 대표가 되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마티네즈 대표는 전임 조주현 대표와 다른 전략을 폈다.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보다 음식 본연의 맛과 품질을 강조했다. 취임 직후 단행한 ‘베스트 버거’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마티네즈 대표는 식재료나 조리 과정 전반의 프로세스를 개선해 품질을 끌어올렸다. 메뉴 역시 대대적인 리뉴얼을 단행했다. 주요 커뮤니티에는 ‘버거 번(빵)이 바뀌면서 맛이 좋아진 것 같다’는 등의 소비자 후기가 잇따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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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즈 대표 취임 후 실적 반등

실적도 많이 개선됐다. 지난해 맥도날드의 매출은 7910억원으로 전년(7248억원) 대비 9.1%나 증가했다. 맥도날드는 올해 500명의 정규직 채용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때”라는 게 마티네즈 대표의 취임 1주년 메시지였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8399억원에서 6831억원으로 22.9%나 감소한 롯데리아와 비교됐다. 아직까지 영업적자와 당기순손실이 유지되고 있지만, 마티네즈 대표 취임 이후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맥도날드에 또다시 초대형 악재가 발생했다. 일부 매장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식자재를 사용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2016년 불거진 햄버거병 논란 이후 맥도날드는 품질 유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유효기간을 정한 뒤 스티커로 붙였다. 하지만 일부 매장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식자재에 스티커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식재료 재활용을 한 것이다. 한 직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 신고를 하면서 이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유효기간을 속인 스티커 갈이는 지난해부터 1년 가까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익신고를 접수한 권익위는 곧바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권익위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해당 내용을 전달할 예정이다.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경찰에 수사 의뢰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매장이 위치한 서울의 지자체 역시 긴급 위생점검을 단행했다.

 

알바생에게 책임 떠넘겼다가 불매운동 ‘부메랑’

맥도날드는 곧바로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본사와는 무관하다. 해당 매장에서만 발생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스티커 갈이를 한 아르바이트생에 대해서만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리면서 사건을 덮으려 했다. 곧바로 ‘꼬리 자르기’ 논란이 일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유효기간이 지난 식재료를 굳이 스티커까지 바꿔가며 재활용할 이유가 있겠냐는 것이다. 정의당과 아르바이트노조 등은 한국맥도날드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구에 찾아가 항의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자 맥도날드는 한발 물러섰다. 외부 전문가를 통해 해당 매장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직원이 좀 더 자유롭게 의견을 제안할 수 있는 익명의 핫라인 구축과 함께 식품 안전에 대한 직원 교육을 더욱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회사 측은 “내부 조사와 다른 내용이 외부에서 제기된 만큼 재조사가 불가피해졌다”며 “현재 전국 400여 개 매장에 대해서도 식품 안전기준 준수 여부에 대한 재점검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여론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상태였다. 일부 소비자단체들은 맥도날드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선포했다. 마티네즈 대표 취임 이후 어렵게 이미지 개선에 성공한 맥도날드가 또다시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이다.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은 “비상문을 잠그지 않은 작은 실수가 부의 상징이었던 비잔틴 제국의 몰락을 가져왔다. 기업 역시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해결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며 “사건의 잘잘못을 떠나 기업의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 원칙에 따른 즉각적인 수정 행동, 재발 방지를 위한 이해 가능한 예방책 수립 등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맥도날드의 대처, 과거 햄버거병 때보다 후퇴”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쓴소리

한국맥도날드의 식자재 재활용 사태에 대해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 측이 지난 8월4일과 6일 두 차례에 걸쳐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8월10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맥도날드의 대처는 과거 햄버거병 논란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제품에서 날파리나 애벌레가 나온 수준이 아니다. 문제가 된 매장이 1년 넘게 조직적으로 유효기간을 조작했다. 또 다른 매장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증언도 계속 나오고 있다. 본사의 관리 소홀, 나아가 묵인과 방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맥도날드는 글로벌 기업의 품격에 걸맞은 대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용 대표의 지적이다.

그는 “맥도날드가 언론에 보도된 매장만 외부기관이 조사하고 나머지 매장은 자체 조사하겠다고 한다. 이는 책임 회피를 위한 형식적 조사와 보여주기식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본사의 책임을 인정하고 외부기관과 전문가가 포함된 조사기구에 의한 실태조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맥도날드는 과거 여러 차례 식품위생법 위반 사건과 햄버거병 논란을 겪으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이번에는 책임감 있게 대응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착각이었다.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오히려 후퇴했다는 게 용 의원의 설명이다. 그는 “과거 논란이 있을 때는 그나마 외부기관의 조사를 받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이번 사태에 대한 본사 책임을 인정하고, 식약처 등 외부기관 및 전문가가 포함된 조사기구에 의한 조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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