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을 항공MRO 클러스터로 육성하겠다는 대통령 공약 지켜져야”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2 15: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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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희영 사천 항공MRO사업지키기대책위 위원장
“정부 방침은 인천에 핵심 사업 다 몰아주고, 사천은 시늉만 하라는 것”

“사천, 경남을 항공MRO(항공정비) 클러스터로 육성해 지방경제 활성화와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게 대통령의 공약입니다. 그런데 뒤늦게 MRO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든 인천에 핵심 사업은 다 몰아주고 사천은 시늉만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정부의 발표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서희영 사천 항공MRO사업지키기대책위(대책위) 위원장은 지난 8월17일 정부의 ‘항공정비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른 입장문 발표 이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MRO 산업과 관련해 국회 등에서 수차례 차분한 어조로 대책위 입장을 밝혔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이날 서 회장은 억눌러 왔던 속내를 털어놓으며 강한 목소리를 냈다. 서 회장은 “사천과 인천의 불필요한 경쟁 구도는 항공산업과 MRO의 성장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정부와 인천은 잘 알 것”이라면서 “정부와 인천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8월1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 중인 서희영 사천 항공MRO사업 지키기 대책위원회 위원장 ©사천상공회의소
지난 8월1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 중인 서희영 사천 항공MRO사업지키기대책위원회 위원장 ©사천상공회의소

항공MRO사업이란 무엇인가.

“항공기 유지(maintenance)와 보수(repair), 수리·개조(overhaul) 서비스와 이를 지원하는 제조업 관련 산업을 통칭하는 산업이다. 항공기 도입으로 발생하는 애프터 마켓(After Market)이다. 도입 후 장기간(30년) 사용하는 항공기 특성을 감안하면 항공기 가격의 3~4배 규모의 MRO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사천의 항공MRO사업 인프라는 어느 정도 규모인가.

“우리나라 항공제조업의 60%가 사천에 집중돼 있다. 경남까지 확장하면 80% 이상이다. 사천은 항공제조업과 항공MRO사업을 위한 인프라가 국내 어느 지자체보다 잘 조성돼 있다. 2017년 12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정부의 엄격한 심사 끝에 정부 지원 항공MRO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듬해 3월 국내 최초 항공MRO 전문업체인 한국항공서비스(KAEMS)가 설립됐다. 항공MRO 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위해 2019년 6월 착공된 항공MRO산업단지(31만1880㎡) 조성공사는 현재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항공기 100여 대를 이미 정비했다. 2단계 사업은 60%의 공정률로 진행 중이며, 3단계 사업도 2023년 준공 예정이다. 

산업단지 조성이 완료되면 KAEMS의 민항기와 회전익기 정비를 위한 격납고, 부품 수리동 등이 건설된다. 그야말로 민수와 군수를 아우르는 종합 MRO단지가 구축되는 셈이다. 기존의 항공부품 제조업체와 연계된 항공산업 협력 지구(클러스터)가 형성되는데, 항공산업의 집적화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사천에는 국내 유일의 완제기 제조업체인 KAI와 60여 개의 항공 관련 협력업체가 입주해 있고, 국립경상대 등 7개 대학 항공 관련 학과에 2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항공MRO사업은 항공기 개발에 준하는 인프라를 가져야 한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렇다. 항공MRO 기술은 항공기 개발 기술과 분리된 별도의 기술이 아니다. 입지 조건에 항공제조업 기반이 조성돼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항공산업은 항공운송업과 항공제조업, 항공정비업이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성장하는 특성을 갖는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독일 루프트한자테크닉과 미국 AAR, 일본 ANAM 등 선진국 MRO 전문기업도 관련 협력업체가 입주해 있는 지방 도시(함부르크·오클라호마·오키나와)에 MRO단지가 조성돼 있다.”

경남도와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2019년 6월27일 경남 사천시 사천읍 용당리 한국항공서비스 본사에서 국내 1호 항공정비(MRO) 산업단지인 용당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착공식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사천 항공MRO사업지키기대책위는 어떤 단체인가.

“대책위는 정부가 지역경제와 국가균형발전 기여를 내세우며 지정한 사천 항공MRO사업의 육성을 도모하고 있다. 이와 함께 편법으로 항공MRO사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항공MRO 진출 저지에 앞장서고 있다. 경남 지역 항공기업 관계자와 송도근 사천시장, 하영제 국민의힘 국회의원(경남 사천·남해·하동),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민·관·학 대표 4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사천공항은 기체 중정비와 군수, 인천공항은 해외 복합 업체 유치로 국내 MRO사업을 분산 배치해 클러스터를 육성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한 견해는.

“이스라엘 우주항공산업(IAI)·샤프테크닉스케이(STK)와 투자유치 협약을 체결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가 민간 영역인 항공MRO사업을 직접 추진하려는 것에 정부가 면제부를 주고 사업을 승인해 준 것이다. 애당초 항공MRO사업자 공모를 왜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항공MRO도 수도권으로 집중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한 대규모 정부 지원이 필수인 항공MRO사업은 국가 경제 논리로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를 보면 정치 논리에 의해 결정된 듯한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현 정부와 국토교통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깊은 실망감을 느낀다. 이번 국토부의 항공MRO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중 지역별 특화 분야 육성방안은 절대 수용할 수 없으며, 민간단체 등과 함께 적극 반대운동을 펼칠 것이다.” 

 

정부 발표로 사천은 ‘빈 껍데기’만 받았다는 지역 내 비판 여론이 제기되는데. 

“기체 중정비는 정비 주기가 길어짐에 따라 점차 수요가 감소하고 있고, 대규모 초기 투자에 비해 낮은 수익성 때문에 부가가치가 낮은 MRO 분야다. 성장 가능성도 높지 않다. 군수 분야 MRO 역시 보안 때문에 민간에 넘어오는 물량이 제한적이다. 반면 엔진 정비와 개조사업 등 고도 기술이 필요한 해외복합MRO는 기술 진입장벽이 높지만, 고부가가치 사업에다 성장 가능성도 높은 MRO의 핵심 사업이다. 결국 알맹이는 인천이 가져가고, 사천은 껍데기만 가져가라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신청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의 배경은 무엇인가.

“지난 5월4일 인국공이 이스라엘 국영기업인 IAI, 항공정비기업인 STK와 ‘인천공항 항공기 개조사업 투자유치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그런데 이 합의각서에는 ‘공항공사는 인천국제공항 내 개조시설을 건축하고, 해당 시설을 합작법인에 임대한다’ ‘공항공사는 미연방항공국 FAA 규정 및 합작법인의 요구 조건에 부합하는 개조시설을 제공한다’ ‘공항공사는 개조시설에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부지, 격납고, 인프라 등 필수시설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공기업인 인국공이 민간 영역인 항공MRO사업을 직접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 협약이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판단인가.

“맞다. 인국공의 목적과 사업 범위를 규정한 인천국제공항공사법 제1조(목적), 제10조(사업)의 위반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또 1등급 공항을 항공기취급업·항공기정비업의 대상에서 제외한 한국공항공사법 제9조(사업)와 시행령 제9조의 위반 여부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인국공의 항공MRO사업 진출은 사업 초기 단계인 사천항공MRO 사업을 포함한 항공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로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겨 청구했다.”

 

정부는 향후 지방자치단체·공항공사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지역 간 이견 조정·상생 방안을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에 어떤 역할을 할 예정인가.

“인천 지역과 상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협의해 나가겠다. 하지만 사천과 인천의 역할을 구분한 ‘지역별 특화사업 육성’에 대해선 반대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대책위는 정부 지원 항공MRO사업자 KAI와 KAEMS가 위치해 있는 경남 서부 지역이 MRO 산업의 중심이 되고, 명실공히 동북아 항공 MRO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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