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브 루스의 재림’에 열광하는 메이저리그
  • 이창섭 야구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1 16: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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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겸업’ 오타니, 홈런 선두 질주
선발투수로도 두 자리 승수 유력…이미 ‘MVP 예약’

초창기 야구는 공의 반발력이 떨어져 홈런이 잘 나오지 않았다. 1918년 메이저리그의 경기당 평균 홈런 수는 0.12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팀은 세인트루이스였는데, 팀 전체 홈런이 단 27개에 불과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 메이저리그에서 그 이듬해 세인트루이스의 팀 홈런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친 괴물 선수가 나타났다. 베이브 루스였다. 1919년 루스는 혼자서 29홈런을 터뜨렸다. 당시 메이저리그 소속 16팀 가운데 무려 10팀보다 더 많은 홈런을 그는 혼자서 때려냈다.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20홈런 타자였으며, 당시 홈런 2위였던 가비 크러배스의 기록이 12개였으니 루스의 기록이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는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선수로, 투타 모두에서 홈런 1위 등 압도적인 성적을 나타내고 있다.ⓒAP 연합

‘일본의 베이브 루스’ 오타니 쇼헤이, 빅리그도 점령

사람들이 홈런에 열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메이저리그는 1920년 공의 반발력을 키웠다. 그러자 루스는 54홈런으로 대폭발했다. 이전보다 두 자릿수 홈런 타자가 늘어났지만, 루스의 뒤를 이은 홈런 2위 조지 시슬러의 홈런 수는 19개였다. 그렇게 루스는 야구의 신이 됐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루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심지어 루스의 기록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루스 외에도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루스의 상징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만큼 메이저리그에서 베이브 루스는 신화 같은 존재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입성 전부터 루스와 비교됐던 선수가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27)다.

오타니는 이미 일본에서 베이브 루스라고 불렸다. 루스는 타자로 전향하기에 앞서 투수로도 활약했었다. 루스가 본격적으로 타자에 집중한 건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이후였다. 1918년과 1919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루스는 당시 투수로도 13승7패 평균자책점 2.22(1918년), 9승5패 2.97(1919년)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혹자는 “만약 루스가 투수로 남았더라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타니도 일본에서 투수와 타자를 모두 소화했다. 2016년에는 루스처럼 투타에서 모두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투수 21경기 10승4패 1.86, 타자 104경기 타율 0.322 22홈런). 그러자 오타니는 2017 시즌이 끝난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도 “투수와 타자를 모두 하겠다”고 밝혔다. 오타니를 영입한 LA 에인절스도 흔쾌히 오타니의 도전을 지지했다. 실제로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인 2018년 투수와 타자로 뛰면서 신인왕을 수상했다.

오타니는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했다. 하지만 투타 겸업을 두고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2018년 오타니는 팔꿈치 부상 때문에 투수로 51.2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다. 전문적으로 나오는 타자가 마운드에서 50이닝을 던진 건 놀라웠지만, 선발투수로서 이닝 소화력은 크게 떨어졌다. 여기에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되면서 2019년에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투수로 복귀한 2020년에도 2경기 1.2이닝 7실점으로 무너졌고, 더 이상 투수 오타니는 볼 수 없었다. 투타 겸업에 대한 여론이 회의적으로 바뀐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올스타전 투수·타자로 모두 뽑혀…메이저리그 사상 최초

주변의 만류에도 오타니는 투타 겸업을 이어갔다. 대신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했다. 선수의 몸 상태에 맞춰 최적의 메카닉을 제공하는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을 방문해 문제점들을 찾고 개선했다. 이 과정에서 타격 시 뒷발이 흔들리는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았다. 또한 반쪽짜리 시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강도 높은 체력 운동도 병행했다.

오타니는 스프링캠프에서 달라진 체격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매특허인 ‘100마일 공’과 ‘100마일 타구’를 다시 선보였다. 구속과 타구의 질을 회복한 오타니는 투타에서 맹활약했다. 2018년으로 돌아간 것에 만족하지 않고 향상된 기량으로 더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완벽한 투타 겸업 선수로 부활한 것이다.

올 시즌 전반기, 투타에서 높이 날아오른 오타니는 올스타전에 투수와 타자로 모두 뽑혔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홈런 더비까지 출장한 오타니는 올스타전 아메리칸리그 선발투수로 나와 승리투수가 됐다. 그야말로 오타니의, 오타니에 의한, 오타니를 위한 올스타전이었다.

2004년 히데키 마쓰이의 아시아인 최다 홈런 기록(31홈런)을 갈아치운 오타니는 올해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왕에 도전하고 있다. 후반기 들어 홈런 페이스가 살짝 주춤하지만, 몰아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50홈런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오타니는 투수로서도 발전을 이루고 있다. 시즌 초반 제구에 기복이 있었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제구가 정교해지고 있다. 오타니는 항상 많은 볼넷이 위기를 자초했는데, 6월 이후 9이닝당 볼넷 수는 2.10개 수준이다(최근 5경기 9이닝당 1.13볼넷). 공의 위력이 되살아나면서 장타 허용은 최대한 억제하는 상황. 현재 피장타율 0.308은 90이닝 이상 던진 아메리칸리그 투수 중 최저 1위다. 참고로 오타니는 타자로서 장타율이 0.647로 전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지표 중 하나는 승리 기여도다. 해당 선수가 리그 대체 선수에 비해 얼마나 많은 팀의 승리에 공헌했는지 알아보는 지표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승리 기여도에 따르면 오타니는 투수로 3.4, 타자로 4.1을 올리고 있다. 투타 도합 7.5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올해 오타니는 흡사 1918~19년의 베이브 루스를 연상케 한다. 미 스포츠 전문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과거의 루스보다 현재의 오타니가 더 대단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자 현지에서는 아직 시즌이 남았음에도 “아메리칸리그 MVP는 벌써 오타니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분위기다. 또 다른 후보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22)에 대해서는 “가장 불운한 MVP 2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1년 스즈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일본 선수의 유일한 MVP 시즌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오타니는 일본 선수 두 번째 MVP 시즌을 노리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고수했던 투타 겸업이 오타니의 특별한 무기가 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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