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논란 휩싸인 머지포인트 사태, 왜 터졌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1 10: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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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 가맹점·금융권 제휴에 가려진 머지포인트의 실상
이커머스 업체 책임론도 거세져…영세 자영업자 등 2차 피해도 우려

‘무제한 20% 할인’이라는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다양한 사용처와 큰 할인율은 무려 100만 명을 머지포인트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용처가 사라졌다. 구매금액의 90%를 환불해 주겠다고 했지만 기약이 없다. 머지포인트를 운영하는 결제 플랫폼 머지플러스 본사에는 이에 항의하는 이용자 수백 명이 몰려들었고, 일부 이용자는 피해자 모임을 꾸려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은 대규모 환불 사태를 일으킨 머지플러스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머지플러스가 최근 상품권 판매를 중단하고 서비스를 대폭 축소하면서 벌어진 일명 ‘머지 사태’다. 머지플러스 측은 “회사의 법적 이슈를 해소한 뒤 확장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외식혁명’을 외치며 승승장구하던 머지포인트가 ‘먹튀’ 논란에 휩싸인 배경은 무엇일까.

결제 플랫폼 머지포인트가 최근 사용처를 대거 축소하고 포인트 판매를 중단했다. 8월13일에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머지플러스 본사에 이용자들이 몰려들어 환불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연합뉴스

머지포인트, 금감원 지적에 돌연 판매 중단

머지포인트는 쇼핑·외식 할인 결제 플랫폼이다. 이용자가 20% 할인된 금액으로 상품권 형태의 머지포인트를 구매해 전송받은 코드를 앱에 입력하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머지머니로 전환된다. 10만원 상품권을 8만원에, 30만원 상품권을 24만원에 살 수 있다. 전환한 머지머니는 쇼핑·외식 가맹점에서 바코드를 통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통신사 카드 할인 등 중복 할인도 적용돼 ‘앱테크’를 선호하는 2030에게 인기를 끌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맹점을 늘린 머지포인트는 대형마트, 편의점뿐 아니라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빕스, 본죽 등 각종 프랜차이즈와도 제휴했다. 브랜드 수만 200여 개, 결제가 가능한 총 가맹점 수는 6만 곳이 넘는다. 지금까지 머지포인트의 누적 발행액은 1000억원. 하루 평균 앱 접속자는 20만 명, 월간 결제자는 50만 명에 이른다. 최근 머지플러스는 월 1만5000원을 내면 상품권을 사지 않아도 20% 할인받는 구독 시스템 머지플러스도 론칭했다.

이렇게 잘나가던 머지포인트가 문제가 된 이유는 뭘까. 머지포인트의 ‘등록업종’ 때문이다. 현행법상 두 가지 이상의 업종에서 선불전자지급수단(돈을 특정 전자지급수단에 충전해 가맹점에서 사용하는 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자금융업’으로 등록해야 한다. 머지포인트는 2개 이상 다양한 업종에서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지만, 머지플러스 측은 머지포인트가 ‘상품권발행업’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자금융업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다. 상품권 사업은 인지세만 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특정 업종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예치금 신탁 의무, 지급 보증 보험 가입 의무를 규정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회사가 사업 운영비나 인건비로 예치금을 모두 사용하더라도 규제할 방안이 없다는 얘기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머지포인트가 선불전자지급수단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전자금융업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 법에 위반될 수 있다며 머지플러스에 시정을 권고했다.

돌연 공지가 나온 것은 8월11일. 머지플러스는 머지포인트의 사용처를 1개 업종인 ‘음식점업’으로만 대폭 축소하고, 머지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법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머지플러스는 “서비스를 선불전자지급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관련 당국 가이드를 수용해 11일부터 적법한 서비스 형태인 ‘음식점업’ 분류만 일원화해 당분간 축소 운영한다”고 밝혔다. 자사 서비스가 선불전자지급수단인 것을 금융 당국을 통해 인지했다는 해명이다. 6만 곳의 사용처가 10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되자 머지포인트 이용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13일에는 수백 명의 고객이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에 몰려들어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수익 구조에 대한 의문은 왜 가려졌나

정말 머지플러스는 자사 서비스 중단의 단초가 된 선불전자지급업 해당 여부를 몰랐을까. 머지포인트의 서비스 이용 약관을 살펴보면, ‘금액형은 비정액 또는 정액형 선불전자지급수단으로 유효기간 내에 명시된 금액을 초과하지 않게 상품 등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기록된 모바일 교환권’이라는 표현이 있다. 또 ‘전자금융거래 이용약관’을 통해 머지머니의 발행 및 관리 서비스를 이용자가 이용할 때 회사와 이용자 간 전자금융거래의 법률관계를 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자사 서비스가 선불전자지급수단에 해당하며, 전자금융거래업이라고 인지한 상황이라면 위법성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등록업종’으로 인해 불거졌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머지플러스 사업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서 기인한다. 머지포인트가 입소문이 날 때부터 수익 구조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됐다. 뒷사람의 결제액으로 앞사람의 할인액을 메우는 ‘폰지사기’가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지만, 머지포인트는 ‘계획된 적자’라는 입장을 취해 왔다. 스타트업의 경우 초기에 적자를 보더라도 인지도와 사업 규모를 키워 투자를 늘리고, 흑자로 전환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머지플러스의 주장도 그것인데, 당장의 실적 대신 규모를 키우고 투자를 모아 수익 모델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머지플러스의 자본금은 30억원에 불과한 수준이다. 투자 유치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일반적으로 통신사 할인 등의 경우 고객과 통신사가 할인 금액을 같이 부담하는 구조지만, 머지플러스는 회사가 20%의 할인율을 모두 부담한다. 이렇게 높은 할인율은 확실한 수익 모델 없이는 유지할 수 없다. 결국 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실상 30억원의 적은 자본금으로 1000억원 이상 발행된 상품권을 책임지는 게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의문점을 품고 있는 머지포인트의 이용자는 왜 계속 늘어났을까. 일단 가맹점이 많다. SPC, 롯데GRS, CJ푸드빌, 본아이에프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 계열사가 대거 입점해 있다는 점,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은 ‘검증된 결제 플랫폼’이라는 신뢰를 줬다. 여기에 하나카드, KB국민카드 등이 머지플러스와의 제휴 또는 협업을 발표하면서 수익성에 대한 물음표는 더욱 가려졌다. 11번가, 티몬 등 상품권을 판매했던 이커머스가 입점업체를 관리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머지포인트 상품을 판매한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은 갑자기 발생한 대규모 소비자 피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 피해 구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한다"며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보다 더 면밀히 검토해 소비자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설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온라인 플랫폼 업체에서 입점업체 관리가 이뤄질 것을 믿고 상품을 구매한 만큼, 온라인 플랫폼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 업체들은 판매를 중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맞서고 있지만, 서비스 검증보다 소비자 반응이나 경쟁사 제휴 여부를 중요한 척도로 삼았다는 것에 대한 책임론은 거세지고 있다. 일부 플랫폼은 서비스 중단 직전까지도 머지포인트를 판매한 것이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90% 환불 정책’도 논란…‘먹튀’ 가능성 거론

지금도 각종 피해자 커뮤니티에서 피해 인증은 줄을 잇는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2차 피해를 보고 있다. 대다수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는 발권 대행사를 거치는 방식으로 머지포인트와 제휴한다. 발권 대행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손실보상 정책을 미리 마련해 둔다. 내부적으로 머지플러스의 문제를 인지해 사전에 제휴를 중단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상황이 다르다. 법률사무소 빛의 이민하 변호사는 “머지플러스와 직접 계약을 맺은 자영업자들의 경우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다. 만약 결제액을 머지플러스 측에서 정산해 주지 않는다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소비자는 사태를 인지한 뒤 머지포인트 결제가 가능한 사업장 정보를 온라인에서 공유했다. 이 때문에 일부 업장에 머지포인트 결제가 몰리는 일도 발생했다. 일부 가입자의 ‘폭탄 돌리기’ 사실을 모른 채 수십만~수백만원의 결제를 승인한 곳도 있다. 머지플러스 측이 당장의 위법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음식점으로만 제휴처를 축소하면서, 머지포인트 앱 내 리스트에는 제휴를 끊은 프랜차이즈 지점들은 사라지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곳만 남게 됐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식당은 “머지포인트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정산되지 않을까 봐 결제를 중단했지만 아직 앱에 떠 있어 머지포인트로 결제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 (머지플러스와) 연락이 되지 않아 제휴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사실상 결제가 가능한 가맹점이 없는 상황. 머지플러스 측은 ‘90% 환불’ 방침을 내놨다. “기존 환불 정책에 따르면 등록한 상품과 이용 중인 상품은 환불이 어렵지만, 상황을 고려해 90% 환불해 주겠다”는 입장이다. 이 변호사는 “이번 환불 사태는 전적으로 머지플러스 측의 고의 혹은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구매금액의 10%를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 소비자는 100% 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머지플러스는 환불 방침을 내놓은 뒤 8월19일 기준 9차까지 환불을 진행했다는 입장이지만 환불 기준, 인원, 환불액 규모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이 ‘먹튀’ 가능성을 제기하며 불안해하는 이유다. 실제로 피해자 커뮤니티에는 ‘공지가 나오자마자 신청했는데 환불을 아직도 받지 못했다’는 원성이 잇따르고 있다.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머지플러스의 대처 방안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머지플러스는 “전자금융업 등록 절차를 서둘러 행정·절차 이슈를 완전히 해소하고 4분기 내 더 확장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8월 말까지 등록 절차를 마치겠다던 머지플러스는 금감원의 요구에도 재무제표 등 전자금융업자 등록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금감원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고, 머지플러스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계약을 맺고 있는 중개업체인 콘사에 대한 자료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 선불충전금 :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쿠팡페이, 페이코, 토스 등 간편결제 서비스를 비롯한 선불전자지급업체에 대금 결제나 포인트 사용을 위해 미리 송금해 보관하는 돈

* 폰지사기 : 신규 고객이 가입하며 낸 돈으로 기존 고객에게 수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1920년대 미국에서 찰스 폰지가 벌인 사기 행태에서 유래한 용어. 투자자들에게 약정한 수익금을 지급하기 위해 2차 투자자를 모집하는 전형적인 다단계 금융사기 방식

 

선불충전금 부실 관리 실태 드러낸 ‘머지 사태’

다른 충전금도 안전하지 못하다

머지포인트 사태가 발생하자 금융당국은 선불업체 실태 파악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전자지급수단(포인트, 상품권 등)을 발행하는 선불업체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점검을 예고했다. 규모가 큰 업체를 우선 조사하고,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에 따라 등록하지 않은 사례가 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등록된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 및 관리업자(선불업자)의 경우 이용자 자금 보호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는지 재점검하기로 했다.

실태 파악보다 조속하게 요구되는 것은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의 도입이다. 등록되지 않은 선불업자가 발각되더라도 전금법 위반으로 고발할 수 있을 뿐 자료 제출 요구권 등 권한이 없어 피해를 예방하기 어렵다. 선불업자로 등록된 업체라도 현행법상으로는 소비자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법의 구멍 때문이다. 고객이 맡긴 선불충전금은 엄격하게 관리돼야 하지만, 현행 전금법에는 선불충전금을 외부 금융기관에 별도로 보관해야 하는 의무조항이 없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9월 '전자금융업자의 이용자 자금 보호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일 뿐 강제성은 없다. 최근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선불충전금 예치 잔액은 급격하게 불어나 법적 보호 조치는 더욱 절실해졌다. 금융위에 따르면 선불충전금 예치 잔액은 2015년 9000억원이었다가 올해 3월 기준 2조4000억원까지 늘었다.

이미 선불충전금 보호를 위한 전금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된 상태다. 전자금융업체가 선불충전금을 은행 등 외부 금융기관에 예치하고 신탁·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 고객의 우선변제권 등이 담겼다. 그러나 이 법안은 9개월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급결제 업무를 맡는 금융결제원을 금융위원회가 감독하게 된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과 금융위 사이에서 이견이 발생하면서 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8월18일 “전금법 개정안을 조속히 논의함으로써 전자금융거래의 소비자 보호 체계가 시급히 확립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일부 조항은 더 강화할 필요도 있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은 선불충전금의 보호를 위해 송금액의 100%, 결제액의 50%를 외부 금융기관에 예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영국, 독일, 중국 등 국가에서는 선불충전금액의 100%를 외부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은은 이 같은 점을 감안해 소비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다만 한은은 전금법 개정안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지급결제 관련 조항은 소비자 보호와는 무관하다”며 “지급결제 관련 사항을 제외한 전금법 개정안을 조속히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 보호가 시급한 만큼, 관련 기관 사이 쟁점이 없는 선불충전금 이용자 보호 규정을 중심으로 먼저 법안을 개정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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