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카VUCA 시대 생존 전략은 ‘상생’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 김정희 마케팅 컨설턴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4 12: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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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킹이 맥도날드 제품 주문하라고 트윗한 이유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럽 각국은 지난해 봉쇄 조치를 강화했다. 영국 역시 런던과 잉글랜드 일부 지역에 3단계 봉쇄 조치를 내렸다. 지역 식당들은 문을 닫거나 배달과 포장으로 연명해야 했다. 버거킹 영국은 3단계 봉쇄 조치 기간 동안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사의 햄버거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대신 영국 전역 소규모 식당들의 광고를 무료로 올려주는 캠페인을 실시했다. ‘#와퍼앤프렌즈(Whopperandfriends)’ 캠페인이었다. ‘와퍼(whopper)’는 버거킹의 대표 햄버거 이름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역 식당들의 대표 메뉴를 홍보하고 고객들에게 잊히지 않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버거킹 영국은 앞서 트위터에 ‘맥도날드에서 주문하세요’라는 트윗을 올려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버거킹 말고도 맥도날드, KFC, 서브웨이, 도미노피자 등 패스트푸드 체인점 또는 지역 레스토랑에서는 수많은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그들에게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와퍼가 최고지만, 맥도날드의 빅맥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버거킹 특유의 유머도 잊지 않았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기업과 지자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잇는 상생 마케팅이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은 현 대차와 농협이 마련한 농산물 상생 후원금 전달식ⓒ연합뉴스

GS·CJ 등 앞다퉈 상생 마케팅 나서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패스트푸드를 비롯한 외식업계가 처한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자는 버거킹의 돋보이는 아이디어였다. 또한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산업 생태계 관점에서 상생을 도모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돈이 많이 들고, 힘이 드는 일만은 아니란 걸 보여주는 소셜 크리에이티브이기도 하다. 많은 기업이 얼마든지 적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다.

실제로 버거킹처럼 어려운 시기를 이용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내는 국내 기업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월 GS리테일은 포항시 구룡포 어민 돕기 행사에 나섰다. 코로나19로 판로가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지역 어민에게 과메기 10만 마리를 매입한 뒤 GS더프레시를 통해 판매했다. 지난해에는 전라남도와 1500억원 규모의 농수축산물 유통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판로를 지원하고, 가정간편식과 밀키트 등 다양한 신상품을 공동 개발하는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상생 마케팅은 비단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같은 위기 속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돕는 마케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상생 모델을 바탕으로 함께하는, 모두가 같이 살고 이기는 마케팅이다. 기업과 정부, 지역사회, 개인이 서로 협력할 수 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요즘 뜨거운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도 연결된다. 전 세계 산업 생태계가 ESG 중심으로 변하면서 가치사슬 내의 모든 이해관계자의 협력과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다. 상생 마케팅은 이해관계자 간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CJ의 ‘즐거운 동행’이 대표적인 상생 프로그램이다. CJ제일제당은 경쟁력 있는 지역 유망 중소기업과 함께 상생 브랜드를 만들고 판로나 영업 및 마케팅을 지원해 매출 및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동반 성장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CJ 올리브영 역시 2016년부터 ‘즐거운 동행’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 중소기업의 우수 브랜드를 고객에게 소개하고 판매 촉진 활동 등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올리브영은 2019년 ‘즐거운 동행’ 매출이 2016년 대비 50배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기준 입점한 상품 수도 5배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GS리테일은 ‘넥스트푸디콘’ 프로그램을 통해 유망 식품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상품 제조 및 유통 과정에서 협력 및 공동 마케팅을 하고 있다. 네이버 ‘쇼핑라이브’는 소상공인과의 ‘상생 플랫폼’을 표방한다. 라이브 커머스 방송에 필요한 스튜디오 공간과 장비를 소상공인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방송에 도움이 될 교육과 멘토링도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 발표에 따르면 쇼핑라이브 판매자 중 85%가 소상공인이다. 소상공인이 성장해야 네이버 쇼핑도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네이버가 소상공인 성장을 위해 지원하는 서비스 강화는 네이버 사업 성장에도 필수적이다.

 

‘상심의 언덕’ 넘어 상생으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은 대기업의 협력자이자 지원자며, 더 나아가 고객과 주주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의 어려움을 돕고 지원하는 것은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지만, 실은 대기업 스스로를 돕고 지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생 마케팅은 고객에게 더 다양하고 좋은 제품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 때문에 고객은 상생 브랜드에 긍정적인 감정을 형성하고 호응한다. 이는 협력자 모두의 사업을 확장하고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이어진다. 고객과 기업이 함께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자 기회인 것이다.

보스턴 마라톤 코스 중 ‘상심의 언덕(Heartbreak Hill)’이 있다. 완만한 경사지만 지친 선수들에게 고통을 일으킨다고 해 심장 파열의 언덕으로 종종 오역되지만 그 기원은 따로 있다. 1936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전년도 우승자 존 켈리가 앞서 달리던 엘리슨 브라운을 추월하며 격려 차원에서 어깨를 두드렸다. 이후 브라운이 속도를 내며 꾸준히 따라붙더니 32km 지점의 오르막 구간에서 켈리를 다시 추월하며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상황을 보스턴 글로브 기자가 ‘켈리를 상심시키다(breaking Kelley’heart)’라고 기사를 쓰면서 ‘상심의 언덕’으로 불리게 됐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켈리가 어깨를 두드려서 브라운이 힘을 얻었던 건지, 아니면 오기가 생겼던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려 앞서 가던 켈리를 다시 추월해 우승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마라톤에서 길고 힘든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계속 우리를 상심시키며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금의 시대를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뜻하는 ‘뷰카(VUCA) 시대’라고 말한다.

‘뷰카’가 극대화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상생 도모는 ‘뷰카’를 극복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뭉치는 것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다.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길동무가 돼준다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코로나19는 마라톤 경기에서 심장을 파열시킬 듯한 고통을 일으키고 어쩌면 함께 뛰는 선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심의 언덕이다. 하지만 중소-대기업이 서로 토닥이고 고객이 응원한다면 포기하지 않고 달려 함께 승리하는 상생의 언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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