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 교수 “여당의 언론 비판 봉쇄법은 100% 위헌”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0 16: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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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헌법학의 대가’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의 ‘언론피해 구제법안’ 비판
“소수를 배제하고 일체의 타협과 절충을 마다하는 다수결 원리는 다수의 독재에 불과”

노학자의 목소리엔 노기(怒氣)가 잔뜩 서려 있었다. 현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감을 역력히 드러냈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언론중재법’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그건 ‘언론피해 구제법’이란 허울을 쓴 ‘언론비판 봉쇄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법독재” “사이비 대의민주주의” “최악의 사법부” 등 전에 없이 강도 높은 표현도 이어졌다. 예전 상당히 정제된 표현을 구사하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시사저널은 언론중재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인 지금, ‘헌법학의 대가’인 법학계 원로 허영 석좌교수를 만났다. 그는 헌법재판소 산하 헌법재판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난 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때만 해도 경희대 교수 시절 법학과 학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문 대통령을 비판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어쩌겠나. 지금이라도 문 대통령이 태도를 바꿔 진정으로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조언했던 스승은 왜 이렇게 단단히 화가 났을까. 8월18일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던 그 시간, 국회에선 여당 단독으로 언론중재법이 안건조정위를 통과하고 있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최근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나 기고 요청을 고사하고 계신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너무 자주 언론에 나오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고, 제 전공과 무관한 일반적인 정치 문제엔 가급적 코멘트를 삼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정치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국회는 언론중재법 처리를 놓고 다시 여야가 대치하는 국면입니다. 법학자로서 언론중재법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마디로 ‘언론피해 구제법’이라는 허울을 쓴 ‘언론비판 봉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00% 위헌적인 내용의 입법입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숨 쉬기 위한 생명의 공기와 같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악의’ ‘허위·조작’ 등 모호한 개념은 명확성 원칙에 어긋납니다. ‘입증책임의 전가’와 ‘추정주의’는 형사증거법의 기본원리에 어긋납니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는 손해배상액’은 책임과 처벌의 비례원칙에 어긋납니다. 이 밖에도 문제점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언론단체와 시민단체에서도 언론중재법이 자칫 시민을 위한 게 아니라 권력을 위한 법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듯합니다.

“정권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조국 일가 위법 사건 등 지금까지 드러난 정권 관련 부정과 비리 사건은 거의가 언론보도를 통해 시작되었어요. 역대 정권마다 집권 말기 대형 부정·비리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를 숨겨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속셈이 엿보입니다. ‘가짜뉴스’라는 낙인을 찍어 징벌적 손해배상 등으로 언론사를 위축시켜 정권이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막아보려는 입법독재의 전형이라고 봅니다.”

비판이 커지면서 여당이 8월18일, 언론단체 등의 우려 목소리를 반영했다며 일부 내용을 수정한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 법의 문제점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합니다.”

해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언론중재법과 유사한 그런 법적 장치가 있습니까.

“미국·영국 등 일부 영미법의 나라에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언론만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 아닙니다. 모든 법 영역에서 두루 통용되는 제도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대륙법의 나라에서는 그런 제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론 피해자에 대해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정보도청구권’ ‘반론보도청구권’ ‘추후보도청구권’ ‘손해배상청구권’ 등의 권리구제 절차를 규정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인터넷의 ‘악의적인 모욕과 비방’에 대한 처벌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독일 연방대법원은 그 처벌규정을 확장 해석한 사례를 공적 인물 이론에 따라 위헌 결정 또는 파기한 일이 있습니다.”

권언유착 사례, 가짜뉴스의 폐해와 이에 따른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 풍조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는 ‘가짜뉴스(fake news)’는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매체의 자정기능과 언론매체 상호 간의 통제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는 일입니다. 현행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법’에서 규정하는 여러 가지 피해 및 구제 제도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법은 그 이상의 언론통제 목적의 과잉입법이므로 중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8월10일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8월10일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만약 여당의 의지대로 국회 통과를 강행한다면, 후속 조치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법이 있는데,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인데, 이 또한 지금 사법부와 헌재의 정치적 성향을 보면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평소 ‘헌법적 가치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해 오셨는데요.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 존중, 기본권 보장, 국민주권,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경제원리 등이 핵심입니다. 국민주권은 존엄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어야 하기 때문에 주인의 위임을 받은 한시적인 국가권력은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만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입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언론중재법’은 오히려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그리고 보도매체 접근이용권의 실현과는 정반대 법이기 때문에 헌법적인 가치에 어긋납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되고 대의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이뤄집니다. 그래서 선거는 자유민주주의의 알파요 오메가인 것입니다. 선거부정이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선거를 통해 구성하는 대의기관인 국회는 필연적으로 다수와 소수의 정치세력이 대립하는 구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결 원리와 소수의 보호는 대의민주주의가 기능하는 쌍두마차입니다.”

지난해 총선에서 여당은 압승을 거뒀습니다. 여당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입법을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는데요.

“아무리 국민이 선거를 통해 다수를 만들어줬어도 소수도 보호해야 한다는 게 또한 민주주의의 가치 실현입니다. 그것은 ‘타협과 절충’을 통해서만 굴러가는 마차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여당처럼 소수를 배제하고 일체의 타협과 절충을 마다하는 다수결 원리는 다수의 독재에 불과하고 소수의 보호를 외면하는 사이비 대의민주주의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는 복수정당 제도를 보장한 나라 아닙니까. 소수의 야당도 엄연히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입니다. 또 지난해 선거에서 의석수로는 여당이 180석 가까이 얻었지만, 여야 득표율은 불과 8% 차이밖에 안 나지 않았습니까. 그런 숫자 사이의 숨은 함수를 잘 타협해서 정치하라는 게 민주주의의 가치 실현인 것입니다.”

지난 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 들어 삼권분립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 훼손이 더 심해졌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그 이후 지금 어떻게 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이 훼손되고 있는 지금 상태에서, 우리의 헌법적인 가치를 그나마 지킬 수 있는 수단은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복종의 자세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 수단이 바로 표현의 자유를 통한 투입(input)인데, 정부와 여당은 이 길마저 봉쇄하려고 언론 악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사법부 역시 지금 정부권력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우리 사법 사상 지금의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는 최악의 사법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입니다.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느낌입니다. 김 대법원장이 초래한 ‘사법농단’의 굴레를 씌운 사법파동,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특정 세력 중심의 사법부 인사와 운영,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직서 반려를 둘러싼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 ‘소극적인 허위진술’ 등 견강부회적인 논리와 관심법까지 동원한 이재명 경기지사 사건의 무죄 판결 등 모두가 그 근거입니다.”

들어 김경수 전 경남지사 유죄, 조국 전 장관 부인 정경심씨 유죄 등 현 정부 핵심 관련 인사들에 대한 사법부의 유죄 선고를 예로 들며, 여당 지지층에서는 오히려 사법부의 보수화가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그런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봅니다. 문재인 정부 핵심 지지 세력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법부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를 치켜세우다가도,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를 비난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확실한 증거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뒤집어보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현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제라도 법치주의를 회복하고, 입법독주를 중단하는 대의민주주의 정신을 되새기길 희망합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제는 개헌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 끝내야”

개헌 필요성 역설하며 5가지 내용 제시

허영 석좌교수는 개헌론자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퇴임 대통령의 불행한 뒷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줄일 수 있는 개헌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이번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허 교수는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완전무결한 헌법은 없다”는 점을 전제로 “제도와 운영이 정합성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는 제도보다 운영에 문제가 있어 전임 대통령의 불행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운영의 문제가 크므로 운영을 통제할 보완적인 내용의 개헌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개헌 필요성에 대해 5가지 근거를 댔다.

우선적으로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 장치가 함부로 침해되지 않도록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제어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었다.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의 권한이 남용·악용되는 이유는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가 독단적인 코드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등 헌법기관장과 그 구성원의 선임 방법을 대통령과 분리해서 독립한 인사기구에서 하도록 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통령제에 맞도록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또한 국회의 규모를 200인으로 줄이고,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지어 법치주의 선진국에서는 국민과 달리 공직자에게는 ‘유죄추정원칙’을 좀 더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진국처럼 기속력 있는 재정준칙규정을 헌법에 신설해 포퓰리즘 정책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획정 권한을 기존의 국회에서 하지 말고 독립한 기구의 전결사항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 5가지는 필요 최소한의 개헌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헌은 반드시 국민의 공감대를 전제로 해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하므로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금은 그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며 “다음 대통령이 선결과제로 삼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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