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여의도 문법’이라니?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3 08: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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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또, ‘말’이다.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곳곳으로 바쁘게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말을 주고받기 위해서다. 아무리 미소가 온화하고, 외양이 반듯해도 내놓는 말이 나쁘면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 어렵다. 선거에 나온 이들의 말이 거칠 고 과장되거나, 틀린 내용을 담아 전해질 때 피해를 보는 것은 정치 그 자체다. 정치 인의 말에 대해 불신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정치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후 보들이 이처럼 불안한 말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의 입지를 무너뜨리는 행 위나 다름없다. 배경이야 어찌 됐든 그 말의 날에 최종적으로 다치는 것은 국민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토론회를 앞두고 이재명 후보가 이낙연 후보 옆을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토론회를 앞두고 이재명 후보가 이낙연 후보 옆을 지나고 있다.ⓒ연합뉴스

그럼에도 최근 여야 대선후보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은 갈수록 혼탁해지는 양상 이다. 이른바 ‘명낙대전’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민 주당 대표 간 설전에서도 네거티브가 두드러지면서 듣기 거북한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다. ‘노무현 탄핵’ ‘지사 찬스’ 논쟁에 경기관광공사 사장 인사 관련 ‘친 일 프레임’ 공방까지, 말꼬리 잡기 식의 원색적 공세를 지속하는 탓에 당내에서조차 ‘팀킬’이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뒤늦게 휴전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이 언제까 지 지켜질지는 알 수 없다.

말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은 야당 쪽도 마찬가지다. 일부 후보가 부적절한 발언과 공감되지 않는 발언으로 설화에 휩싸이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대 구 민란’ ‘주 120시간 근로’ ‘부정식품’ ‘건강한 페미니즘’ ‘후쿠시마 원전’ 등 여러 발언 으로 연이어 입방아에 올랐고, 최재형 후보는 출마 기자회견에서부터 기자들의 질 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채 ‘준비가 되지 못했다’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준비가 안 된 채로 출마선언을 한 것이냐”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당내 후보 들과 대표 사이에 특정 통화 내용을 둘러싼 진실 게임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물론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이따금 실언을 하고 표현의 잘못으로 오해를 사는 일 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발언, 논란을 부를 만한 발언이 계속되면 단순 실 수로 넘기기 어렵게 된다. 게다가 대선후보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은 안 됐다”라는 등 사실과 다른 말을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팩트가 아닌 내용을 공공연히 발설하는 것은 표현이 서툰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잘못이다.

말을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을 두고 한 정치인은 후보들이 정치권에 진입해 ‘여의도 문법을 익혀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분명히 ‘문법’의 문제가 아니다. 여 의도 문법, 청와대 문법, 세종시 문법이 따로 있을 수는 없다. 그냥 우리말 사용법 을 잘 따라 틀린 말, 거친 말, 오해를 부를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생각이 잘못되면 말이 잘못되고, 욕심이 앞서면 사실이 아닌 말을 절제 없이 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빤한 얘기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된 대통령’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지식, 시대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말을 대하는 태도, 인 식 또한 준비되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출마했다는 후보들이 자신의 말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단한 시기에, 준비도 안 되 고 거친 말을 서슴지 않는 후보들로 인해 국민이 느끼는 피로감은 이미 상당하다. 지금처럼 국민이 위로는커녕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오히려 후보들 걱정을 계 속해야 한다면, 그 선거는 과연 괜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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