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日 롯데 주총 기점으로 재반격 나선 신동주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2 10:0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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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 日 여론 반전 노리는 입장문 7편 순차적 게재
한국 이어 일본 롯데 실적 부진 성토…롯데그룹 “올해 실적 회복세”

롯데그룹 경영 위기를 우려하는 경고음이 국내를 넘어 일본에서도 커지고 있다. 기폭제는 최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다. 심상찮은 일본 내 여론 속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 겸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의 친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주총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신 전 부회장은 8월17일 일본어 웹사이트 ‘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에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 보고’ 관련 기획 연재를 시작했다. 이날부터 9월1일까지 ‘실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 ‘종업원지주회 이사장은 올해도 불참석’ ‘정관에 정해진 의장직을 맡지 않는 대표자’ ‘롯데홀딩스 설립 이후 첫 최종 적자 전락’ ‘주주제안(이사선임의안) 제출 이유 관련’ ‘주주제안(정관변경의안) 제출 이유 관련’ 등 제목의 글 7편을 순차적으로 게재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연합뉴스

신동주, 입장문서 ‘日 롯데 경영난’ 집중 겨냥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꼽히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다.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됐으나, 이후에도 광윤사(고준샤·光潤社) 최대주주 신분으로 일본 롯데홀딩스의 모든 주총에 참여해 왔다. 그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지분율 28.1%)인 광윤사 지분 ‘50%+1주’를 보유했다. 재계에선 신 전 부회장이 지난 6월26일 개최된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을 기점으로 다시 경영 복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입장문에서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실적 부진을 집중 거론하며 신 회장의 경영 능력에 물음표를 던졌다. 이는 신 회장에 대한 일본 여론이 급랭하게 된 이유이자 이번 연재 기획의 촉매제이기도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 전 부회장은 “많은 임직원이 가장 관심 가지는 사안으로 생각된다”고 운을 떼며 “일본 롯데홀딩스의 실적 악화가 두드러진다. 70년 넘는 롯데 역사상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신 전 부회장은 “이해관계자들의 판단을 위해 내용을 게재한다”면서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들에게 배포된 2020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연결대차대조표와 연결손익계산서 전반을 첨부했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9.7% 줄어든 5조498억 엔(약 58조1600억원), 당기순손실은 1012억 엔(약 1조700억원)이었다. 2년 연속 적자였고, 그 폭은 2007년 회사 설립 이후 가장 컸다. 

최악의 성적표에 주총장 분위기는 내내 무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 전 부회장은 “연결 실적 부진은 주로 한국 롯데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한국 롯데의 경영 악화는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게 아니라 롯데에서 미래를 내다본 경영을 하지 못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고 주장했다. 

일본 경제 월간지 ‘팩타(FACTA)’도 8월호 기사에서 일본 롯데홀딩스의 경영 위기와 관련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매출이 줄고 손상차손도 증가해 적자에 빠졌다”며 “전적으로 한국 롯데가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일본 롯데홀딩스는 부진한 한국 롯데를 자금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올 3월말 기준 롯데물산 등 한국 롯데 4개 계열사에 대한 대부금은 1000억 엔(약 1조610억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일본 매체 ‘다이아몬드 온라인’은 “일본 롯데홀딩스가 거액의 적자를 내며 자회사의 상장 명분도 흔들릴 위기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한국 호텔롯데와 일본 (주)롯데의 상장을 추진해온 신동빈 회장 입장에선 현 상황이 사면초가나 다름없다. 한국 실적 부진으로 여론이 악화하고 호텔롯데 상장도 차일피일 미뤄지는 가운데 일본 경영까지 악화일로를 치달아서다. (주)롯데는 2022년 일본 증시 상장을 염두에 두고 2018년 제과회사인 일본 롯데가 판매 유통사인 롯데상사, 빙과업체 롯데아이스를 흡수 합병해 설립한 회사로, 일본 롯데홀딩스가 지배하고 있다. 

일본 실적 개선을 위한 돌파구도 마땅치 않다. (주)롯데 상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일본 롯데홀딩스는 지난 5월19일 대표이사 사장으로 전문경영인 다마쓰카 겐이치(玉塚元一)를 영입했다. 다마쓰카 사장은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 운영업체인 패스트리테일링과 일본 롯데리아, 편의점 로손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4월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직에 오른 뒤 같은 해 7월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이 대표직에서 물러나자 롯데홀딩스 회장과 사장, 단일 대표이사에 이사회 의장까지 맡았다. 

일본 롯데홀딩스 측은 다마쓰카 사장 선임에 대해 “다마쓰카 사장이 가진 유통·브랜딩 사업과 정보기술(IT) 분야 식견을 높이 평가한다”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경영 활동을 통해 일본 롯데의 기업 가치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신 회장이 다마쓰카 사장에게 일본 롯데의 경영을 일임하고 한국 롯데 경영에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도 나왔다. 

일본어 웹사이트 ‘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을 통해 발표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입장문ⓒ‘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 웹사이트 화면 캡처

“신동빈, 주총 의장 역할 회피했다” 주장 

하지만 동시에 다마쓰카 사장의 경영 능력과 권한 범위, 그리고 (주)롯데 상장 기여 가능성 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팩타’는 다마쓰카 사장 선임을 두고 “일면 깜짝 인사였으나 과거를 거슬러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며 신 회장과 다마쓰카 사장의 오랜 인연을 소개했다. 2004년 패스트리테일링을 이끌던 다마쓰카 사장은 유니클로 한국 진출 합작사로 롯데쇼핑을 선정했다. 2005년 8월 다마쓰카 사장이 사실상 경질돼 퇴사한 후에도 롯데와의 협력 관계가 이어졌다고 ‘팩타’는 보도했다. 다마쓰카 사장이 패스트리테일링 퇴사 한 달 후 설립한 경영지원 회사의 첫 고객이 일본 롯데리아였던 것이다. ‘팩타’는 “그러는 사이 신 회장과 다마쓰카 사장은 개인적인 친목을 도모하게 됐다”면서 “함께 스키를 즐기는 사이”라는 관계자 전언을 소개했다. 

이후 로손, 디지털하츠홀딩스 등을 거치며 커리어 황혼기를 지나던 다마쓰카 사장에게 ‘여가 친구’인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직 제안이 꽤 매력적이었을 것이라고 ‘팩타’는 추측했다. 다만 ‘팩타’는 “다마쓰카 사장이 롯데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사장직을 수락했을까”라고 의문을 표시하며 “극심한 경영난과 신 회장의 독점욕, 형제간 경영권 분쟁 리스크 등에 둘러싸인 롯데에서 다마쓰카 사장 역할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 일본 사업에 제한될 것이다. 신규 사업 전개 등 수완을 발휘하기도 힘든 여건”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신 전 부회장은 입장문에서 신 회장을 겨냥해 “말로만 투명성·거버넌스 향상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자회사 (주)롯데를 상장시키겠다고 하면서 임직원들에게 대부분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문제 발생 시 설명해야 하는 책임을 외면하는가 하면 유죄 판결을 받고도 계속해서 경영을 맡는 등 상식에서 벗어난 지배가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울러 신 회장이 이번 주총에 온라인으로 참여한 점을 두고 신 전 부회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다른 이사들은 주총장에 자리했는데, 정작 의장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신 회장) 혼자 온라인으로 참석했다”며 “의장으로서 설명 책임이 있는 자리에 서게 되자 ‘온라인 참석’을 명분으로 이사 역할에서 벗어나려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롯데홀딩스 정관에는 ‘이사 사장이 주총 의장을 맡는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신 회장은 고바야시 마사모토(小林正元) 이사에게 의장직을 맡겼다. 신 전 부회장은 “정론(正論)을 말하는 주주를 상대하기 두려운 것인지, 경영 부진이나 유죄 판결 등 중대한 사건에 대해 제대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인지 의장 역할을 피한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롯데그룹 대표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 회장은 주총이 끝난 직후인 7월 초 일본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7월1일 하반기 사장단 회의(Value Creation Meeting·VCM) 참석 일정을 마치고 출국한 것이라고 롯데그룹 측은 전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4월 자신의 이사 선임과 범죄 사실이 입증된 자의 이사직을 금하는 정관 변경 안건 등을 담은 주주제안서를 일본 롯데홀딩스에 제출한 바 있다. 그는 “일본 롯데홀딩스 최대주주인 광윤사 대표이자 주주로서 롯데그룹의 정상적 운영을 위한 제안인 동시에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유지를 받들어 그룹의 준법경영을 이끌기 위한 기본적인 요청 사항”이라고 주주제안서 제출 이유를 설명했다. 

정관 변경은 신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지난해 10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실을 바탕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6월 주총에서 신 전 부회장이 제안한 안건들은 모두 부결됐다.  

ⓒ연합뉴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연합뉴스

롯데그룹 측 “올해 실적 회복세 들어서”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1월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된 뒤 계속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해임 직후부터 이번까지 경영 복귀나 원하는 인물의 이사 선임, 신 회장 해임 등과 관련해 총 일곱 번의 주총 대결을 벌였다가 번번이 실패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일본 회사법에 의거해 해당 사안(제안안 부결)에 대한 항소를 진행 중”이라면서 “향후 롯데 경영 안정화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갈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 측은 신 전 부회장의 주총 관련 움직임에 “주주와 임직원들이 신 전 부회장 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은 경영자로서 적격성에 의문이 있고, 준법 의식도 결여돼 일본 롯데 경영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롯데의 실적 부진에 대해선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 일부 사업에서 어려움이 있었으나 올해 화학과 식품 업종을 중심으로 회복세에 들어섰다”면서 “푸드테크, 수소, 유통공간 혁신 등 미래성장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찌라시’에도 화들짝 놀라는 롯데  

내외부 가릴 것 없이 터져 나오는 우려…암울한 현실 방증 

롯데그룹의 실적 악화, 특히 유통 부문의 암울한 분위기가 길어지면서 ‘롯데 유통=위기’라는 인식은 업계에서 ‘디폴트값’이 돼버렸다. 위기 돌파 동력도 통합 온라인몰 ‘롯데ON’의 부진, 이베이코리아 인수 포기 등으로 많이 떨어졌다. 롯데는 이제 우려 섞인 시선이 최대한 번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 데도 신경 써야 할 판이다. 최근의 ‘찌라시’ 사태는 이런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 7월29일 온라인상에서 ‘롯데그룹-유통 BU 찌라시’라는 제목의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에게 일파만파 퍼졌다. 제목 그대로 롯데 유통 계열사들을 총괄하는 유통 BU에 관한 메시지였다. 8월1일부로 유통 BU 수장을 비롯한 임원들을 대거 교체하고, 조직도 축소한다는 메시지 내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 거짓 메시지는 롯데 유통 부문의 답답한 상황과 맞물려 독특한 반응을 유발했다.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 익명을 요구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찌라시’ 자체에 대한 신뢰감이 낮은 데다 해당 메시지 내용도 다소 과격해 심각하게 읽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면서도 “롯데 입장에서 뼈아픈 내용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았을 듯하다. 아마 ‘이런 극약 처방을 해서라도 롯데 유통을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는 호소로 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번 메시지가 롯데 내부에서 작성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초반에 롯데 계열사를 중심으로 메시지가 퍼져 나간 정황이 확인됐다. 작성자가 일부러 살짝 틀린 용어를 넣어 자신이 내부자란 것을 숨기려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론은 이번 사태가 롯데의 위기를 방증하고 있다는 쪽으로 수렴됐다. 신동빈 회장 등 지도부의 리더십을 향한 경고로 봐야 맞다는 것이다. 

한편 롯데그룹 측은 ‘찌라시’ 사태에 이후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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