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김연경’을 찾아라…강소휘·정지윤·정호영 등 주목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4 16:00
  • 호수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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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예선 때 김연경 부상 공백 메웠던 강소휘 단연 주목
20세 동갑내기 정지윤과 정호영도 ‘제2의 김연경’으로 기대

끝은 왔다.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이 필요하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은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얘기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도쿄올림픽 폐막 직후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8월10~12일)한 결과,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종목(복수 답변 허용)은 단연 여자배구(68%)였다. 양궁(44%), 펜싱(9%), 야구(8%), 축구(7%) 등과 비교해 압도적인 수치다.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에 대한 답변 또한 김연경(63%)이었다. 김연경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원팀의 기적’을 일군 여자배구 대표팀은 그만큼 성적(4위) 이상의 인상적 활약을 보였다.

김연경이 8월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후 코트를 떠나고 있다.ⓒ연합뉴스

김연경 조언 듣고 레프트 변신한 정지윤, 코보컵에서 MVP 맹활약

하지만 김연경은 다음 국제대회 때부터 없다. 2005년 처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던 김연경은 17년 여정을 마치고 태극마크를 내려놨다. 앞으로는 중국 상하이 구단 등 프로팀에서만 활약하게 된다. 김연경과 더불어 2012 런던올림픽 4강, 2016 리우올림픽 8강, 2020 도쿄올림픽 4강을 일궈냈던 센터 양효진(32·현대건설)과 김수지(34·IBK기업은행) 또한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대표팀 ‘황금라인’이 물러나면서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을 1년여 앞두고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불가피하다.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마저 과거 학교폭력 사건으로 국내 무대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포스트 김연경 체제’ 구축을 위한 과정은 자못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재영·이다영 선수가 충분히 반성한 뒤 오는 2022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김연경과 김수지의 공백을 채워주길 바란다”고 밝힌 것도 김연경을 대체할 만한 대형 선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 이들의 대표팀 복귀는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영·이다영은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 대표팀으로 출전해 동메달을 합작해 낸 바 있다. 도쿄올림픽 예선전 때도 주전으로 나서서 힘을 보탰다. 이들이 빠져나간 공백까지 합쳐 ‘대표팀 새판짜기’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라이트 김희진(30·IBK 기업은행), 레프트 박정아(28·한국도로공사)가 아직 건재하지만 차후를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

도쿄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뛰지 못한 선수 중에는 레프트 강소휘(23·GS칼텍스)가 있다. 강소휘는 지난 시즌 이소영(KGC인삼공사 이적)과 함께 여자배구 최초로 팀을 트레블(코보컵·정규리그·챔프전 동시 우승)로 이끈 주전 공격수다. 작년 1월 열렸던 올림픽 예선 때는 복근 부상 때문에 빠진 김연경을 대신해 코트에 들어서서 벼락같은 서브와 스파이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리시브 능력도 수준급이다. 짧은 재활기간에도 도드람컵 대회(코보컵: 8월23~29일)를 통해 건재를 과시해 차후 대표팀 소집 0순위가 될 전망이다.

코보컵 여자부 MVP로 깜짝 등극한 정지윤(20·현대건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정지윤은 대표팀에서 백업 선수로 라이트나 센터 포지션에 기용됐으나, 코보컵에서는 레프트로 변신했다. 특별히 김연경의 부탁도 있었다. 강성형 현대건설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경이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 (정)지윤이를 꼭 윙스파이커로 키워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연경은 정지윤에 대해 “신체 조건(180cm·68kg)이 좋다. 점프와 타점도 모두 좋다”고 평했다.

수비 부담이 적은 라이트와 센터 포지션과 달리 레프트 공격수는 리시브 등 수비가 좋아야만 한다. 국내 배구에서 라이트 포지션은 보통 외국인 선수가 맡기 때문에 신인급 선수가 단기간 내 성장하기 위해서는 레프트로 뛰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정지윤 또한 “한참 전부터 레프트로 가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했다. 2021~22 시즌 동안 정지윤의 레프트 변신이 성공하면 여자배구 대표팀의 미래 또한 한층 밝아질 수 있다.

양효진·김수지가 은퇴한 센터 쪽에서는 박은진(22), 정호영(20·이상 KGC인삼공사), 이다현(20·현대건설) 등이 눈에 띈다. 박은진은 2018년 아시안게임부터 이번 대회 때까지 대표팀 백업 요원으로 활약했다. 190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정호영은 ‘제2의 김연경’으로 불리지만 지난 시즌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도쿄올림픽에는 뛰지 못했다. 그는 광주체중 3학년이던 2016년 아시안컵대회에서 성인 대표팀에 데뷔해 일찌감치 눈도장을 받은 실력파 선수다. 이다현 또한 속공과 블로킹은 물론이고 이동공격까지 능숙하게 구사하며 ‘제2의 양효진’으로 불리는 기대주다.

대표팀 볼 배급에서는 염혜선(30·KGC인삼공사)이 당분간 주전 세터로 활약하는 가운데 안혜진(22·GS칼텍스), 김다인(23·현대건설) 등 젊은 선수들도 종종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올림픽 개막 전 이다영의 빈자리가 커 보였지만 염혜선은 스테파노 라바리니 대표팀 감독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한 움큼 성장했다.

왼쪽부터 GS칼텍스의 강소휘, 현대건설의 정지윤, KGC인삼공사의 정호영ⓒ연합뉴스

라바리니 감독의 재계약 여부도 관건

대표팀 세대교체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라바리니 대표팀 감독의 재계약 성사 여부도 관심이다. 배구협회는 라바리니 감독과 재계약을 추진 중이지만, 그가 수락할지는 알 수 없다. 애초 라바리니 감독이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가 김연경이 한국 대표팀에 있어서였기 때문이다. 라바리니는 도쿄올림픽 내내 선수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심어주고 적절한 전략, 전술을 펴면서 여자배구 4강을 이끌었다.

김연경 없는 여자배구 대표팀은 어떤 모습일까. 김연경은 물러났으나 ‘원팀’의 유산은 그대로 남아있다. 구심점 역할을 해줄 박정아·김희진·염혜선 등이 아직 건재하고 강소휘·정지윤·정호영 등 어린 선수들도 하고자 하는 의욕이 크다. 여자배구 인기가 나날이 치솟으면서 선수들의 책임감도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팀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은 여전하다. 2024 파리올림픽까지 3년의 시간도 남아있다.

김연경이 대표팀에 심어준 가장 큰 유산은 어쩌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원팀’으로 똘똘 뭉치면 어떤 팀과 대적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일 것이다. 파리올림픽까지 또 다른 ‘원팀’을 만들 시간은 충분하다. 여자배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자양분이 돼 선수들을 더욱 성장시킬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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