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발렌시아 떠난 슛돌이, 이젠 훨훨 날아오를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4 11:00
  • 호수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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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 자신을 강력히 원한 마요르카로 이적
동갑내기 구보와 한솥밥…한·일 축구 미래의 대결도 관심

이강인이 발렌시아와의 10년 동행을 마무리했다. 마지막까지 애증 관계였던 팀을 떠나 새롭게 둥지를 튼 팀은 마요르카다. 유럽 축구 이적시장 종료를 앞둔 8월30일 그는 마요르카와 4년 계약을 맺었다. 커리어 첫 번째 이적을 경험한 것이다. 라이벌로 꼽히는 일본의 동갑내기 공격수 구보 다케후사와는 한솥밥을 먹게 됐다.

1916년 창단한 마요르카는 지난해 기성용이 단기 계약을 맺고 뛰었던 팀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2003년 코파델레이(FA컵)를 차지한 영광의 순간도 있었지만, 창단 후 대부분의 역사를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오간 전형적인 에스컬레이터 팀이다. 지난 시즌에는 2부 리그인 세군다리가에서 2위를 차지하며 강등 1년 만에 프리메라리가로 복귀했다. 올 시즌 1부 리그 잔류를 1차 목표로 삼은 마요르카는 미드필드 강화를 추진하던 중 루이스 가르시아 플라사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강인을 데려왔다.

ⓒ마요르카 홈페이지 캡쳐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와의 10년 동행에 마침표를 찍은 ‘한국 축구의 미래’ 이강인의 새로운 둥지가 RCD 마요르카(스페인)로 결정됐다. 사진은 8월30일 마요르카 유니폼을 들고 웃음 짓고 있는 이강인 ⓒ마요르카 홈페이지 캡쳐

애증의 관계였던 발렌시아, 작별 순간까지 자충수

이강인은 공식 발표 하루 전 자신의 SNS를 통해 발렌시아 팬들에게 미리 고별사를 남겼다. 그는 “2011년 나와 가족은 프로축구 선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스페인에 왔다. 발렌시아는 꿈의 문을 열어주고 지지해준 팀이다. 오늘 구단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며 감사를 표시했다.

국내 TV 예능 프로그램인 《날아라 슛돌이》를 통해 축구 신동으로 화제를 모은 그는 10세이던 2011년 발렌시아의 러브콜을 받고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2018년 여름 정식 프로 계약을 맺은 그는 발렌시아 아카데미의 역작이라는 평가 속에 팀 최연소 데뷔, 최연소 외국인 득점 등의 기록을 세웠다. 2019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MVP인 골든볼을 수상해 세계적인 유망주로 등극했다.

하지만 이후 발렌시아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대단한 잠재력을 지닌 유망주였지만, 선수단을 이끄는 감독들은 이강인에게 좀처럼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2020년 여름에는 선수단 내 파벌 문제로 뜻하지 않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출전시간 확보였다. 한창 경험을 쌓고, 기량을 끌어올려야 할 시점에 짧은 교체 출전이나 벤치 워머로 끝나는 일이 잦았다.

이강인은 2019년과 2020년 여름, 임대를 추진했지만 싱가포르 출신의 피터 림 구단주는 아시아 출신의 특급 유망주에 대한 손익 계산 때문에 좀처럼 그를 놔주지 않았다. 두 시즌 연속 같은 패턴으로 성장 기회가 막힌 것에 실망한 이강인은 팀의 재계약 제안을 거부했다. 2022년 여름 계약 종료를 1년 앞둔 이번 여름에는 어떤 형태로든 이강인이 발렌시아를 떠날 것이 예고된 상태였다.

작별 과정에서 발렌시아는 자충수를 뒀다. 이강인의 이적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브라질 국적 공격수 마르쿠스 안드레를 영입했다. 프리메라리가는 유럽 국적이 아닌 비(非)유럽연합 선수는 3명까지만 1군에 등록할 수 있다. 안드레 영입은 곧 이강인에게 나가라는 통보나 다름없었다. 이적료 조율에서 애를 먹던 찰나에 발렌시아가 이강인을 정리하지 않은 채 비유럽연합 선수 제한을 초과하자 협상 테이블에 있던 팀들은 대화를 중단했다. 결국 발렌시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강인을 정리해야 했다. 계약 1년이 남은 상황에서 자유의 몸으로 풀어줬다.

이런 아마추어 같은 행정과 협상은 스페인 현지에서도 “바보 같은 짓”이라는 등 큰 질타로 이어졌다. 계약이 1년 남은 상태지만 이강인의 시장가치는 1000만 유로로 평가받았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이적시장에서 당장은 회수가 쉽지 않았지만 이강인 측은 셀온 조항 삽입으로 자신을 키워준 팀에 마지막 예의를 갖추려 했다. 셀온 조항은 향후 재이적 시 일정 비중의 금액을 지급받는 방식이다. 이강인은 발렌시아를 위해 셀온 조항을 요청했고, 마요르카도 최대 20%를 명시하는 계약을 수락하려던 찰나, 조급한 발렌시아가 그마저도 건지지 못하는 실책을 범한 것이다. 발렌시아 팬들은 10년간 키운 유망주를 거저 넘긴 것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했다. 스페인의 유명 일간지 마르카는 “피터 림은 자신들의 유스 정책을 늘 홍보했다. 실패한 감독 선임과 방향성 없는 선수 영입을 정당화시키는 성과였지만, 이제는 아카데미의 결실도 거의 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오른쪽 측면 자리 놓고 이강인과 구보, 선의의 경쟁

마요르카는 시즌 초반 기세가 좋다. 개막 후 3경기에서 2승1무를 기록해 리그 6위에 올라 있다. 단단한 수비로 3경기 중 2경기에서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돌풍을 이어가기 위한 과제는 공격력이다. 3경기 모두 1득점에 그쳤다.

가르시아 감독은 4-3-3 혹은 4-2-3-1의 공격적인 미드필더를 대거 배치하는 포메이션과 전술을 가동한다. 공격형 미드필더나 왼발로 중앙 침투를 즐기는 오른쪽 윙어를 선호하는 이강인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지도자다. 프로 입성 후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과 맞지 않는 전술적 옷을 입고 뛴 이강인이 고심 끝에 마요르카를 선택한 이유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르시아 감독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원했다는 점이 프로 진입 후 지난 3년 동안의 상황과는 다른 국면을 만들 수 있다.

이강인이 마요르카에 입성하기 3주 전에는 일본 축구의 미래인 구보 다케후사도 임대 영입됐다. 레알마드리드 소속이지만 2시즌 연속 임대를 다닌 구보는 올 시즌을 앞두고 2019~20 시즌 좋은 활약을 펼쳤던 마요르카로 돌아왔다. 2001년생 동갑내기인 두 선수는 왼발잡이인 데다 스페인 무대에 일찌감치 입성한 한·일 양국의 유망주로 긴 시간 비교됐다. 스무 살의 여름에 두 선수는 같은 유니폼을 입고 나란히 뛰는 상황을 맞았다.

스페인의 일간지 아스는 “마요르카에 매력적인 아시안 커넥션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강인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선호하고, 구보는 오른쪽 측면에서 반대발 윙어로 배치되는 걸 원한다. 두 선수가 동시에 출전해 마요르카의 2선을 이끌 수 있지만, 중원에는 베테랑 미드필더 다니 로드리게스가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있다. 이강인이 오른쪽 측면으로 기용된다면 구보와의 선의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정확한 왼발 킥과 패스 능력을 지닌 이강인과 현란한 발재간으로 드리블 능력이 좋은 구보는 전혀 다른 유형으로 공존할 수도 있다.

ⓒ연합뉴스

늑대군단으로 향한 ‘황소’ 황희찬, 역대 14번째 프리미어리거

이강인이 팀을 옮긴 날, 황희찬도 깜짝 이적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라이프치히에서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던 황희찬은 선임대 후이적 방식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올버햄튼으로 팀을 옮겼다. 2021~22 시즌 임대 신분으로 뛰는 황희찬은 울버햄튼이 기량에 만족하고 192억원의 이적료를 지불하면 완전 이적도 가능하다. 늑대무리(올브스)라는 별명을 지닌 울버햄튼은 2004년부터 2년간 설기현 현 경남FC 감독이 뛴 클럽이다. 공격수 보강이 필요했던 울버햄튼은 최전방과 양 측면 등 전천후 활약이 가능한 황희찬을 주목했다. 역대 14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된 황희찬은 선배 손흥민과의 코리안더비도 펼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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