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밴드2》, 아저씨들 가슴에 불을 지르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6 16:00
  • 호수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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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샷 등 실력파 밴드 앞세워 헤비메탈 향수 자극

JTBC 오디션 《슈퍼밴드2》를 향한 중년 남성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여성이 주 시청층이었다. 남성 특히 중년 남성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바로 그 중년 남성들이 《슈퍼밴드2》에 반응하는 것인데, 출연자 중에서도 크랙샷이 큰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크랙샷은 서울 이태원을 기점으로 홍대, 강남 등지에서 공연을 펼쳐왔던 인디밴드다. 팀명 크랙샷(Crack shot)은 명사수란 뜻으로 관객의 마음에 명중시킨다는 의미를 담았다. 2013년 결성돼 2014년 ‘제16회 동두천 아마추어 락 밴드 경연대회’에서 일반부 대상을 받았다. 그후 군입대와 베이시스트 교체 등을 거친 후 2018년 현재의 빈센트(보컬), 윌리K(기타), Danny Lee(드럼), Cyan(베이스) 등 4인조 체제가 완성됐다. 

베이스를 제외하면 2013년부터 활동했기 때문에 데뷔 8년 차 중견 밴드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비주류 인디밴드로 활동하면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을 것이다. 밴드 활동만으론 생활이 안 돼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열악한 처지에도 오랫동안 자신들의 음악성을 지켜왔다. 중간에 군입대까지 했는데도 지금까지 팀이 유지된 것을 보면 이들 사이의 호흡이 매우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음악적 신념을 지키며 다져온 팀워크가 《슈퍼밴드2》에서 폭발했다. 

이들은 1980~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헤비메탈 음악을 한다. 머틀리 크루, 건스 앤 로지스, 마릴린 맨슨 등이 떠오르고, 윌리K의 기타는 잉베이 맘스틴이나 랜드 로즈 등을 떠올리게 한다. 오지 오스본, 주다스 프리스트, 화이트 스네이크 등도 연상된다. 모두 80~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내며 록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름들이다. 이래서 그 시대를 ‘나 때’라고 말할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들이 크랙샷에 반응한 것이다. 

JTBC 예능 《슈퍼밴드2》의 한장면 윌리K ⓒ
JTBC 예능 《슈퍼밴드2》의 한장면 (윌리K)ⓒJTBC
JTBC 예능 《슈퍼밴드2》의 한장면 크랙샷ⓒ
JTBC 예능 《슈퍼밴드2》의 한장면 (크랙샷)ⓒJTBC

“나 때는 흔히들 메탈 듣고 그랬었는데” 

그 시절엔 메탈 학생밴드가 많았다. 특히 1980년대는 FM라디오로 팝송을 열심히 듣던 시절이었다. 이문세, 들국화, 유재하, 김현식, 봄여름가울겨울 등이 나오면서 가요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긴 했지만 그래도 음악 좀 듣는다는 학생들은 팝을 많이 들었다. 그 당시의 공식은 팝을 깊이 있게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록음악에 빠지고, 그러다 더 마니아가 되면 재즈나 블루스를 듣게 된다는 것이었다. 재즈, 블루스까지 가는 학생은 드물었고 록음악이 널리 사랑받았다. 학생밴드들이 하는 음악은 으레 하드록, 헤비메탈이었다. 오지 오스본, 주다스 프리스트 등의 노래가 그런 밴드 음악의 기본이었다. 

그렇게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육중한 금속성 음악이 일부 남학생과 젊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다. 물론 그 시절에도 대중적인 유행가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록의 존재감도 상당했다는 이야기다. 하드록, 헤비메탈에서 시작해 스래시, 스피드 메탈 등으로 이어진 흐름인데 크랙샷의 음악이 딱 이런 스타일이다. 외모는 헤비메탈의 일종인 LA메탈의 머틀리 크루나 스래시에서 더 과격해진 1990년대 마릴린 맨슨처럼 강하게 분장한다. 그래서 화려한 외모를 내세우는 글램메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과거에 익숙했던 스타일이다. 90년대에 얼터너티브에서 단출한 펑크로 넘어가면서 메탈 스타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던록, 브릿팝이 인기를 끌면서 과격함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후 2000년대엔 밴드 음악이 팝이나 발라드와 비슷해져서 과거와 같은 거친 금속성의 소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돌 댄스, 발라드, 힙합이 모든 것을 집어삼켜서 록음악의 장르를 따지는 것 자체가 철 지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상황이다. 

이럴 때 크랙샷이 《슈퍼밴드2》에서 과거의 그 거친 소리를 들려주자 아저씨들 가슴에 불이 붙은 것이다. 윤상, 윤종신, 유희열 등 심사위원들에게서 크랙샷 음악에 감격하는 ‘찐’ 리액션 표정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오랫동안 비주류였던 크랙샷 빈센트가 유희열의 찬사에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도 시청자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JTBC 예능 《슈퍼밴드2》의 한장면 박다울ⓒ
JTBC 예능 《슈퍼밴드2》의 한장면 (박다울)ⓒJTBC
JTBC 예능 《슈퍼밴드2》의 한장면 (녹두)ⓒJTBC
JTBC 예능 《슈퍼밴드2》의 한장면 (녹두)ⓒJTBC

매회가 콘서트 같은 오디션 

크랙샷 말고도 이다온이 레이서 엑스의 《Scarified》를, 정나영이 스키드 로우의 《Best yourself blind》를 연주하는 등 과거 록음악들이 잇따라 나왔다. 음악의 내용을 떠나 밴드 형태 자체가 지금은 너무나 희귀해졌다. 1980년대 후반에 밴드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시나위, 백두산, 부활 등 많은 밴드들이 지상파 쇼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엔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 펑크 밴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밴드 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슈퍼밴드2》에 나오는 밴드들이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단순히 향수 자극이라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크랙샷은 실력으로도 압도적이고 그 밖에 우리나라에 젊은 음악 천재가 많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으로 새삼 알려졌다. 그동안 보컬, 랩, 춤 이외의 다른 음악적 요소들이 모두 소외돼 왔었는데 《슈퍼밴드2》에서 연주자들이 부각되면서 여러 악기의 연주가 대중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요즘 젊은 세대는 랩을 통해 사람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노래 형태에 익숙하다. 하지만 과거엔 중간 반주 때 기타 등이 부각되는 형식이 많아서 스타 연주자도 잇따랐다. 

이 프로그램에서 연주자나 연주 자체가 부각되는 것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음악을 더 폭넓게 감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것이 《슈퍼밴드2》가 젊은 세대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는 이유일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것이지만 현재 젊은 세대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시도다. 그래서 음악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도 《슈퍼밴드2》에 반응한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음악은 최고 수준이다. 통상적으로 오디션은 고음을 지르는 가창력 위주로 흘러가고, 그 속에서 경쟁의 긴장으로 인한 갖가지 실수가 발생하며, 심사위원의 독설로 자극성을 높이는 구조다. 하지만 《슈퍼밴드2》는 새로운 모습이다. 도전자들이 각 회마다 팀을 결성해 밴드의 새로운 색깔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그것을 마치 공연 무대처럼 보여준다. 지면 바로 탈락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더 여유롭게 밴드 형성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놀라운 실력자들이다 보니 매회가 마치 록페스티벌 같다. 그래서 오디션이지만 웬만한 음악 프로그램 그 이상이다. 과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도 록밴드로 먹고살 수 있는 시절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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