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 수준 민낯 드러낸 ‘윤희숙 사퇴’ 소동
  • 김도형 아주경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5 10:00
  • 호수 166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당, ‘내로남불’ 역풍 불까 사퇴 처리에 전전긍긍…국민의힘 “윤 의원 자기 정치로 당 곤란케 해” 불만도

부친의 땅 투기 의혹에 휩싸인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놓고 정치권에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했다. “저는 임차인입니다”란 국회 연설로 명성을 얻은 윤 의원 사직안 처리를 더불어민주당이 막아서고, 국민의힘은 되레 처리를 요구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 상대 당 의원의 조그마한 법적 흠결이라도 보도되면 대뜸 “의원직에서 사퇴하고 검찰 조사를 받으라”고 공세를 취하던 여야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지루한 정쟁 끝에 여야 원내대표가 9월 중 사직안을 처리하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모든 사안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결정하는 한국 정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은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조사 결과 윤 의원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윤 의원 부친은 지난 2016년 3월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일대에 1만821㎡의 논을 8억2200만원에 사들였다. 윤 의원 부친의 터전이 서울이고, 매입 당시 나이가 80세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경작 목적으로 매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권익위의 판단이었다. 이 땅은 5년 새 약 10억원 가까이 올라 시세차익을 노린 전형적인 투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윤 의원은 권익위 조사 결과 발표 다음 날인 8월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후보는 물론 국회의원직도 사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다만 권익위의 조사 결과에 대해선 “조사의 의도가 뭔지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면서 “독립 가계로 살아온 지 30년이 돼가는 친정아버님을 엮는 무리수가 야당 의원 평판을 흠집 내려는 의도가 아니면 무엇이겠나”라고 반발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오른쪽)이 8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선 불출마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자, 이준석 대표가 회견장을 찾아 윤 의원을 만류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곤궁에 빠진 與, “미공개 정보 이용” 물타기

윤 의원이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던지자 민주당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앞서 지난 6월 민주당 의원 12명 또한 본인 또는 가족의 부동산 거래·보유 위법 의혹이 있다는 권익위의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송영길 대표가 탈당 권유라는 강수를 뒀지만, 비례대표 의원 2명을 제명한 것 외에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지역구 의원 10명 가운데 5명은 탈당을 거부했고, 나머지 5명은 탈당계를 제출했지만 정작 당 지도부가 이를 처리하지 않았다. 12명 의원 모두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윤 의원 사퇴안을 민주당 손으로 가결할 경우 ‘내로남불’ 역풍이 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퇴를 막아서기엔 명분이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윤 의원이 실제로 의원직을 사퇴할 경우,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부동산 논란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게 되는 점도 문제다.

“KDI(한국개발연구원)에 근무하면서 얻은 정보를 갖고 가족과 공모해서 투기한 것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김두관 의원), “사건 본질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여부인데, 이를 희석하려 피해자인 척 사퇴 쇼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김용민 최고위원) 등의 발언은 ‘내로남불’ 비판을 ‘미공개 정보 이용’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여권에서 KDI의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윤 의원 부친 땅에서 20km 거리에 세종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후보지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인데, 해당 국가산단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윤 의원 부친이 땅을 사고 3년이 흐른 2019년 12월에야 실시됐다. “(윤 의원이) 사퇴서를 안 냈다”는 허위 사실을 주장했다가 역풍을 맞은 김승원 의원의 경우까지 포함, 민주당의 곤궁한 처지를 잘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입장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윤 의원 부친 의혹과 관련해 “본인이 개입하지 않았다”며 소명이 됐다는 입장을 내놨다. 문제는 윤 의원이 의원직 사퇴 카드를 꺼내 들면서 부친의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커졌다는 점이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취재를 하면서 윤 의원 부친의 농지법 위반 정황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윤 의원 제부가 친박계 실세였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의 보좌관이었단 사실도 밝혀지면서 기재부 내부 정보에 의한 투기가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윤 의원의 사퇴를 눈물로 만류했던 이준석 당 대표는 이후 “의혹들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선 윤 의원 측에서 해명해야 할 사안”이라고 선회했다.

 

‘당 지도부 만류→사퇴 철회’ 예상 빗나가

“투자할 건물을 보러 갔다가 농지를 샀다”는 취지의 윤 의원 부친 인터뷰까지 나오면서, “민주당 출신 인사(전현희)가 위원장으로 있는 권익위의 정치적 조사”라는 국민의힘 주장에 힘이 빠졌다. ‘의혹이 소명됐다’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나머지 5명 의원에 대해 “셀프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졌다.

윤 의원이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던졌기 때문에, 당으로서는 윤 의원 부친의 투기 의혹을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공개적으로 말이 나오진 않지만 물밑에선 윤 의원에 대한 불만도 감지된다. 당의 한 관계자는 “결국 자기 정치를 하려고 당을 곤란하게 만든 것 아니냐”며 “대선 경선 후보에서만 물러났어도 됐을 일”이라고 했다.

‘탈당 요구’ 처분을 받은 나머지 6명 의원의 불만도 상당하다. 윤 의원이 사퇴까지 언급한 마당에 자신만 “억울하다”고 항변하기 곤란해진 까닭이다. 개헌 저지선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국민의힘(105석) 상황에서 의석수가 하나 줄어드는 것도 부담이다.

여야 모두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것은 윤 의원의 결단이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9대 국회부터 약 10년간 국회에 제출된 국회의원 사직안은 모두 28건. 이 가운데 22건이 공직선거(대선·광역단체장 선거 등) 출마나 청와대 등 다른 공직으로 가기 위한 것이었다. 정치적 책임을 지기 위해 사퇴를 선언했던 건 2018년 3월 민병두 전 민주당 의원(미투 의혹), 김용익 전 민주당 의원(기초연금법안 처리 반발), 윤금순 전 통합진보당 의원(통진당 부정투표) 정도다. 이마저도 본회의에서 가결된 건 윤 전 의원 사직안이 유일하다.

만큼 윤 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을 때 ‘진짜 사퇴하겠어?’란 의문표가 달렸다. 윤 의원의 연루 정황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당 지도부가 만류하고 윤 의원이 사퇴를 철회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예상이었다. 여야 모두 이 예측을 바탕으로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계산에 골몰했다. 그러자 윤 의원은 더 강경하게 사퇴 의사를 밝히며 아예 의원회관의 짐까지 다 정리했다. 결국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월1일 “사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언급했고,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도 “야당이 요구하면 (사직안 처리를) 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9월 중 열릴 본회의에서 윤 의원 사직안이 처리될 전망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