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6 08:00
  • 호수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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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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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7일 꽤 흥미로운 뉴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이 거기 담겨 있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간한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2020’ 보고서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때는 공무원의 뇌물죄가, 박근혜 정부 때는 직무유기가 가장 많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직권남용 범죄가 가장 빈번했던 것으로 분석됐다”는 것이 보도의 요지였다.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의 중심에 있는 정당과는 무관한 공무원 대상의 조사 결과지만, 공무원이 정부의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뇌물죄와 직무유기는 각각 이명박 정부에서 ‘부패’ 논란이 많았고, 박근혜 정부에서 ‘무능’이 특히 부각됐다는 사실과 묘하게 겹친다. 그리고 공무원이 직권을 함부로 써서 일으킨 범죄가 이전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오만 과 독선’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해내지 못해 나타나는 직무유기 못지않게 직권남용에 따른 무리수 행정이 민생에 미치는 폐해는 상당하다. 때로는 말 그대로 ‘생사람을 잡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만큼 정치인이든 공무원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법정 한도에 따라 넘치지 않게 사용해야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고 편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선의를 바탕으로 일처리를 했다 해도 과정에 무리가 있었다면 그 선의 자체가 무색해지고 만다.

정치권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자신들이 보기에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 것이 실행되었을 때 나타날 사회적 부작용이나 파장을 예상하지 못한 채 행동에 나서면 그 자체로 ‘무능’을 고백하는 셈이다. 또 반대로 그 부작용 또는 파장을 익히 알고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오만과 독선’이 된다. 최근에 큰 논란을 부른 ‘언론 중재법 개정안’도 그 한 예다.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실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이 법안에 대해서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입법 취지를 떠나 문제의 초점이 된 ‘가짜뉴스’를 실질적으로 막아낼 방안을 담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반응도 잇따랐다. 다수 의석을 앞세워 입법을 밀어붙이는 여당 내에서조차 “취지와 다르게 언론을 약화시키거나, 진보 매체들이 더 큰 부담을 느끼거나 역할이 위축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박용진 의원)는 등의 의견이 나오는 마당이다. 언론계 현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법안 처리 전에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여럿이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절차와 시점이다. 입법 이전에 충분한 여론 수렴이 없었고, 국회 상임위 처리 과정도 비겁했다. 또한 코로나19로 민생이 흔들리는 엄중한 시국에 이 법안이 그처럼 시급하게 다루어져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크다. 아무리 명분과 취지가 좋더라도 때를 가려야 한다. 큰 선거를 앞둔 지금은 여러 의심 혹은 오해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여야가 일단은 본회의 상정을 미루기로 합의했다고 하니, 그때까지 부디 법안의 필요성·실효성에 대해 더 많은 의견을 진심으로 듣고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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