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다’는 김정은
  • 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9 14:00
  • 호수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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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신연락선 복원한 김 위원장의 진짜 속내는 對南 압박
북측에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북남관계의 주인공은 나야 나!”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요즘 크게 외치고 싶은 한마디일 것이다.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시켜 남측을 비난하고 조롱하다가, 남북통신연락선도 이었다 끊었다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꼭 나선다. 그리고 손을 맞잡자고 통 큰 제안을 한다.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김 부부장은 모두 일곱 차례의 대외 메시지를 내놓았다. 그중 남한을 향한 담화에는 언제나 강한 비난이 담겨 있었다.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3월3일), “쓰레기들의 광대놀음”(6월4일),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6월14일), “쓰레기들의 반공화국 삐라 살포 망동”(6월17일), “남조선 외교부 장관의 망언”(12월8일)과 같은 원색적인 표현 일색이었다. 

김여정 부부장이 남측을 샌드백처럼 두들겨 패는 동안 김정은 위원장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10일 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는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보내며, 하루빨리 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29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월30일 보도했다.ⓒ연합뉴스

통신연락선 복원은 北의 저비용 고효율 카드 

대남관계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나서서 막말을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 자신은 남북관계 개선 여지를 남겨두고 좋은 말을 하면서 자신이 남북관계 개선 여부의 최종결정을 한다는 모양새를 그려 나갔다. 그로부터 1년여 흐른 지난 9월29일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구체적인 대남 시책을 발표했다. 

“경색돼 있는 현 북남관계가 하루빨리 회복되고 조선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온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일단 10월초부터 관계 악화로 단절시켰던 북남통신연락선들을 다시 복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0월4일부터 남북통신연락선 우리 측 연락에 대해 북측은 응답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10일 남북통신연락선 단절 55일 만의 일이었다. 

이번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남북관계 개선에 노란불 정도는 들어온 듯하다. 남북관계에 빨간불이 계속 들어와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에서 환영이다. 하지만 노란불이 녹색불로 바뀐다는 보장이 없는 조건부 상태라서 아쉬움은 여전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을 밝힌 시정연설에서 “북남관계가 회복되고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가, 아니면 계속 지금과 같은 악화 상태가 지속되는가 하는 것은 남조선(남한)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밝힌 ‘강대강(强對强), 선대선(善對善)’의 대외 기조를 대남관계에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남측에 말이 아닌 실천으로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남북합의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2년 전인 2019년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같은 맥락을 이번에도 반복했다. 

북한은 일단 외형상으로는 통신연락선 복원이라는 우호적인 행동을 취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우호적인 행동의 지속 여부는 남측의 말이 아닌 실천, 근본 문제 해결, 남북합의 이행이라는 조건에 달려 있다고 전제한 것이다. 그럼 이 전제조건의 충족 여부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지금 상태에서는 결국 북한의 결정과 판단에 따라야 하는 형국이다. 북측이 봤을 때 남측이 조건을 충족하면 남북대화와 관계 발전을 지속하고, 조건을 불충족하면 당장이라도 통신연락선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통신연락선 차단은 남측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므로 북측 입장에서는 별도의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서도 남측을 압박할 수 있는 효율적인 카드로 여길 공산이 크다. 

 

대화와 압박 양면카드 활용하는 북한

물론 북한이 이 카드로 압박을 한다 해도 우리 정부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어주거나 끌려다니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북측도 요구 수위를 턱없이 높이다가 남북관계가 장기간 경색되고 북·미 대화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도 스스로 파괴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곧 있을 남한의 대선 정국에서도 과거와 같은 안보 북풍(北風)보다는 대화 공세와 우호적 제스처로 새로운 방식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관계 발전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며 차기 정부와의 관계 형성에서도 주도권을 쥐다가 차기 정부 출범 직후 상황을 봐서 수틀리면 별안간 통신연락선 차단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돌출행동에 나서 주도권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다. 

북한이 이런 식으로 아전인수식 판단에 빠져들지 않도록 우리는 모처럼 생긴 이번 통신연락선 복원 기회를 남북관계 발전의 든든한 초석으로 다지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내건 세 가지 조건인 말이 아닌 실천, 근본 문제 해결, 남북합의 이행에 대해 북측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며 남북관계 유지 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식량 지원 등 인도적 협력에서 말이 아닌 실천에 더욱 속도를 내고, 군사 문제와 안전보장을 다루는 근본 문제는 남북이 이미 합의한 남북군사공동위를 가동해 포괄적으로 논의하도록 유도하고, 남북합의는 북의 비핵화 조건부 합의사항 외에는 대부분 초기 이행을 했음을 적극 설명해야 한다. 더욱이 북의 협력에 따라 합의 이행을 더욱 확대할 수도 있다고 강하게 주장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성과는 우리에게도 중요하지만 북한에도 장기적으로 대북제재 완화와 북·미 관계 개선 같은 외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분야다. 지금 북한은 대남관계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 같아도, 완전히 판을 깨지 않고 계속 기회의 틈을 살피고 있다. 남북관계 주도권을 틀어쥐기 위해 자기들 나름대로 쉼 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기회의 틈을 놓치지 말고 남북관계 발전과 성숙을 위해 다시 한번 신발 끈을 동여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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