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통과한 문학, 이전과는 달라질 것”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9 09:00
  • 호수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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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장
“문학이 전하는 위로와 희망이 필요한 때”

코로나19를 마주한 문화예술계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상황이 나아지면서 조금씩 꽃대를 밀어올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감염병 재확산이라는 위기는 미처 피어나지 못한 꽃을 다시 주저앉혔다. 취소, 축소, 연기, 비대면이라는 단어가 모든 문화예술 행사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 시국에서 문학은 더는 ‘비대면의 산물’로 해석될 수 없었다. 작가들의 강연과 북콘서트가 취소됐고, 독자와의 만남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출판계에도 암운이 드리워졌다.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마케팅을 해온 출판사들은 신간 출간을 연기해야 했다.

시대를 반영하고 위로를 전하는 것이 문학이라 했다. 그렇다면 문학은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비춰내고 있을까. 여느 때보다 많은 위로가 필요한 시점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문학은 이 시대를 어떻게 통과하고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10월5일 서울 양천구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서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만났다. 197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장편소설 《풍랑의 도시》 《목신의 마을》 《폭설》 등을 펴낸 그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문단의 역사와 부침을 지켜봐온 증인이기도 하다.

ⓒ시사저널 최준필

“나태주 시인의 《콧등 위에 반창고》등으로 위로 건네”

‘예쁘다/예쁘시다/콧등 위에 반창고//거룩하다/거룩하시다/사람 살리는 저 마음//고마워요/눈물납니다/우리의 자랑스러운 딸//코로나 대구를 지키는/저런 딸이 있기에/우리는 기죽지 않습니다//우리는 내일을 또/기약할 겁니다/다시 일어설 수 있겠습니다.’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 코로나 환자를 돌보던 간호장교의 모습을 시로 그려냈다. 《콧등 위에 반창고》다. 의료용 마스크를 오랫동안 쓰느라 생긴 콧등의 상처에 반창고를 덧대 붙이고 투혼을 발휘하는 의료진에게, 문인들은 글을 통해 응원을 건넸다. 이 이사장이 펼쳐 든 《코로나? 코리아!》에는 161명의 시인이 쓴 작품들이 담겼다. 낯선 사회적 거리 두기를 겪는 국민과 ‘백의 천사’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며, ‘힘내라 대한민국’을 외치는 한 편의 시집이다.

지난해 청어출판사가 문인협회의 추천을 받아 발간한 이 책을, 이 이사장은 ‘시대의 요청에 발맞춘 결과물’이라 했다. 전국 각지에서, 해외에서 시인들이 시를 보내왔다. 이 중 희망과 위안을 선사하는 8편의 시는 서울 지하철 안전문에 새겨졌다. 직접 책의 기획에 참여한 이 이사장은 “문학을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국민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의료진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시인 161명이 필진으로 참여한 시집 《코로나? 코리아!》에는 코로나 극복을 화두로 삼은 작품들이 담겨 있다.
시인 161명이 필진으로 참여한 시집 《코로나? 코리아!》에는 코로나 극복을 화두로 삼은 작품들이 담겨 있다.

“코로나, 소설 《페스트》처럼 문학 미래에 영향”

문인협회는 최근 열린 한국문학심포지엄에서도 ‘문학작품에 나타난 위기 극복’을 주제로 삼았다. 코로나19에 다양한 작품으로 대응한 시인들의 모습은, 역사적인 격변기와 시련의 시기에 시조나 소설로 시대를 표현했던 과거 문인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어둠이 밀려오다 주춤이며 물러선다/떠다니는 바이러스 총칼 없는 전쟁이다/천사도 마스크 쓰고 우리들을 지켜섰다.‘ 김민정 시조시인의 《마스크 천사》라는 작품에도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이 비쳤다. 이렇듯 문학은 시대적 상황과 시류에 따라 당대의 이슈와 문제를 천착한다. 환경 문제, 이념 갈등, 인간 소외, 실업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전염병과 같은 부정적인 소재도 작품에는 고스란히 담긴다. 이 이사장은 1947년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예로 들었다. “《페스트》는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폐쇄된 도시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 문학작품이 지금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분명 코로나 이후의 작품은 달라질 것이고, 문학에서 코로나는 하나의 소재로 작용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집필된 작품들에는 코로나19라는 소재가 많이 반영돼 있다.”

장편소설이면서도 실제 사건을 취재해 기록한 르포르타주 형식을 취한 《페스트》는 코로나19 시국에 대중이 다시 찾는 작품이 됐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페스트》가 어떤 지침과 교훈을 남기듯, 지금의 코로나19를 다룬 문학작품이 훗날 과거의 증언으로 복기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70여 년 전 책 속에서 재난에 던져진 이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 그것이 문학이다. 이렇게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의 가치라고 그는 강조했다. 문인협회가 올해 문단의 각종 실화와 증언을 엮은 《문단실록》을 펴낸 것도 시대를 기억하기 위한 맥락에서다. 문인들이 등단과 창작활동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실록’을 통해, 문단의 역사를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지원 사업, 근본적 처방 아닌 반창고에 불과" 

코로나19 시대를 기록한다는 것은 문학이 이 시기를 통과하기 위한 과제와도 같다. 코로나19가 막아선 것은 많았다. “창작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도 문학에서는 그만큼 중요하다. 시 낭송이나 저자 강연과 같은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되면서 문학계는 타격을 입고 있다. ‘문학 꿈나무’들의 발판이 되어줄 백일장 행사도 멈춰섰다.” 문인협회가 30년 넘게 진행해 오던 ‘마로니에 청소년 백일장’ 이야기다.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이고, 현장에서 주제를 받아 글을 써내려가는 백일장 본선의 특성상, 코로나 시국에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더 큰 문제는 문인들의 생활고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시행한 ‘코로나19 문학 분야 피해 관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작가의 65% 이상이 코로나19로 인해 창작과 생계에 곤란을 느끼고 있었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예술인 연평균 소득 조사에서도 문학인의 연수입은 549만원으로, 예술인 평균소득 1281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도 어려웠던 이들의 생활에 코로나 팬데믹이 겹쳐졌다. 올해 4월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등 문학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정부 지원을 촉구했다. 이들은 “예술 생태계 복원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편성한 3차 추가경정예산 1569억원에서 문학 분야 배정 예산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실제로 지자체 강연이나 백일장 심사, 특강, 독서지도 등 부가적인 수입원의 통로가 끊기면서 문인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고 이 이사장은 말했다. 코로나19로 창작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가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원 자체가 일시적이다. 최근 5년간 예술활동 경력 중 대표적 활동을 증빙할 수 있는 예술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 사업의 지원금은 1인당 200만원. 이 이사장은 이 사업을 ‘병에 걸려 힘들어 하는 환자에게 붙여주는 반창고’라고 비유했다.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원고료와 인세만으로 삶을 꾸려가는 전업작가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창작에 전념해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데, 식사조차 하기 힘든 문인들이 있다. 돈이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대필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며 “문학은 화려하지 않고, 창작 지원을 했을 때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예산 지원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전제로 한다. 문학이 사람들에게 정신적 자양분을 주는 훌륭한 예술임에도, 문학 부문에 대한 예산 지원이 항상 줄어드는 이유”라고 안타까워했다.

 

올해 60주년 맞는 문인협회…2021 문학주간’ 공동 주관

“문인협회는 올해 12월 60주년을 맞이한다.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하려 했지만 밀집과 밀폐는 금기가 됐다. 비대면이라는 키워드가 익숙해졌다.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사회의 여론을 모으고,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방역에도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이 구성원들의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앞당겨진 것은 비대면으로의 전환이다. 오프라인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줄면서, 책시장은 점점 온라인으로 터를 옮기고 있다. 전자책이 쉬이 읽히는 시대가 됐다. 문예지 대신 뉴스레터와 웹진이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문인협회는 산하에 49개 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 중 전자문학위원회에서 전자책 발간에 관여한다. 특히 전자책을 만드는 영세업체와 전자책 발간을 원하는 작가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9월17일 시작해 12월10일까지 열리는 ‘2021 문학주간’은 문학 전달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문인협회를 포함해 작가 단체 7개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문학주간은 비대면과 거리 두기가 자리매김한 오늘날, 문학이 어떻게 가능성을 전하고 있는지, 어떻게 지금 시대의 독자들과 가까이 있을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줌을 통해 동화 작품을 공유하고, 영상을 통해 시와 소설을 낭독하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한국문인협회는

1961년 12월 창립된 한국문인협회는 현재 시, 시조, 민조시, 소설, 희곡, 평론, 수필, 청소년문학, 아동문학, 외국문학 등 10개 분과를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18개 지회, 182개 지부, 49개 위원회, 사무처, 평생교육원 등 방대한 조직을 두고 있다. 회원 수는 1만5000명이다. 한국문학상을 비롯해 14개 문학상을 시상한다. 전영택 소설가, 박종화 소설가, 김동리 소설가 등 문인들이 역대 이사장으로 문인협회를 이끌어왔다. 이광복 이사장은 2019년 27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 원로 문인이 본 문단의 ‘등단’ ‘표절’ ‘권력’

우리나라에는 ‘등단’이라는 제도가 있다. 최근에는 등단 없이 온라인으로 글을 쓰거나, 자신의 생각을 묶어 책을 출간하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세태를 어떻게 보나.

“문학지 추천이나 신춘문예는 등단의 관문이었다. 그래서 ‘신인 장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열악한 문학지들이 신인으로 뽑아주는 대신 책을 팔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세태가 바뀌면서 이 같은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본래 등단 제도가 없다. 작가가 직접 출판사에 가서 책을 내면 된다. 여기서 출판사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 해외의 출판사 편집 책임자들은 당대 최고의 석학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출판사에서 40번 넘게 퇴짜를 맞았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사진을 넣고 출간된 것은 출판사의 판단이었다. 출판사의 판단력과 변별력을 보여주는 예다.

우리나라는 실용서적 출간이 늘어나면서 출판사가 지닌 문학 자체의 전문성은 퇴보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등단은 문단 내 ‘공인’의 의미로 존재한다. 정식 관문을 통해 등단한 분들이 주류를 형성해온 것도 사실이다. 온라인상의 글들은 재미와 접근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덜 다듬어지거나 맞춤법을 지키지 않은 작품이 많다. 재미와 접근성도 중요하지만 문학성과 예술성을 갖춘 글도 많이 나와야 한다.”

 

표절은 문단 내의 고질적인 문제다. 올해 초에도 표절 작품이 공모전에서 수상해 사회적 이슈가 됐다. 표절 의혹을 받았던 신경숙 작가의 복귀도 논란이 됐는데.

“표절은 문학의 ‘창작성’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남들이 쓰지 않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이 창작이다. 새로운 어휘 하나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문인협회에서는 표절문제연구위원회를 산하에 두고 감시하고 있다. 표절과 관련해 실정법에서 처벌 법안을 수립해야 한다. 심사 제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 심사에 나설 경우 표절 작품을 거르기가 어렵다. 문인협회에서 문학상 심사를 할 때 심사위원을 엄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력과 명성을 가진 소수에게 문단 내 권력이 집중되면서 피해가 양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뭔가.

“‘문단 권력’으로 표현되는 병폐는 작품을 실을 지면과 문학상을 빌미로 한 권력 구조에서 야기됐다. 각종 문학상 후보 추천권을 이사장단이나 분과회장단 이외에 지회장, 지부회장까지 확대하고, 지회와 지부별로 발행하는 문학지 콘테스트 규정을 제정해 문인들이 더 많은 문학지를 통해 골고루 수상할 수 있도록 했다. 문단에서 힘을 가질수록 몸을 낮춰야 한다. 문인이 품위를 잃으면 문학의 가치도 절하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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