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규정 안 지킨 ‘인재(人災)’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10.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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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적 요소 속속 포착…업체, 면허없는 고3학생 교육없이 잠수작업에 투입
‘사후약방문’ 교육부, 현장실습 전수조사…올해 안 현장실습 개선방안 마련
교육계·노동계 “현장 실습생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행태가 원인”
16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에서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조화가 세찬 바람에 넘어져 있다. 여수 특성화고 3학년이던 홍 군은 지난 6일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러 잠수했다 참변을 당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16일 오후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홍정운 군의 사고 현장인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계류장. 잔뜩 찌푸린 날씨에 인적이 끊겨 적막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홍군을 추모하는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여수 특성화고 3학년이던 홍군은 지난 6일 12㎏짜리 납 벨트를 맨 채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러 잠수했다 참변을 당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최근 전남 여수에서 현장 실습 중 숨진 특성화고 학생 사고는 학교와 업체가 관련 법령과 규정을 다수 위반한 인재(人災)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장 실습생을 받은 업체는 면허 없는 학생에게 잠수 작업시키고, 보낸 학교는 계약을 부실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전국 직업계고 현장실습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학교·업체 모두 규정 ‘외면’…예고된 사고 

교육부·전남교육청·고용노동부가 참여한 공동조사단은 지난 9일부터 학교와 사업체 조사와 면담 등을 통해 사고 경위와 현장실습 운영 지침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20일 밝혔다.

여수의 한 특성화고 3학년이던 고(故) 홍정운 군은 지난 6일 여수 웅천 마리나 요트장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잠수 작업에 투입됐다가 숨졌다. 해경은 홍군이 업체 대표의 지시를 받아 산소통과 납 벨트 등을 착용하고 잠수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공동조사단의 조사결과 홍군이 잠수작업에 투입된 전후 과정을 놓고 불법적인 요소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우선 해당 업체는 법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군이 법령상 잠수를 할 수 없는 18세 미만인데다가 실습 내용에도 없고 잠수 관련 자격·면허·경험이 없는데도 잠수 작업을 시켰다. 

규정도 위반했다. 현장실습표준협약 사항인 안전·보건 교육을 하지 않았으며, 정해진 실습시간도 지키지 않았다. 현장실습생을 받는 업체들이 학생·학교장과 작성하는 ‘현장실습표준협약서’상 잠수작업은 위험한 작업으로 분류돼 현장실습생은 잠수 작업을 하면 안 되도록 규정돼 있다.

16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에서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사고 현장에 직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에 대한 근본대책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여수 특성화고 3학년이던 홍 군은 지난 6일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러 잠수했다 참변을 당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16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에서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사고 현장에 직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에 대한 근본대책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여수 특성화고 3학년이던 홍 군은 지난 6일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러 잠수했다 참변을 당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학교, 계약 부실 체결…현장실습운영회 부실 운영 

학교는 현장실습 계약 체결 표준협약서에 공란을 두는 등 계약을 부실하게 체결했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전용 포털에 실습 기업을 등록하지 않아 이에 따른 학생의 실습일지도 작성되지 않았다. 학교 현장실습운영회에 외부위원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위원회를 학교 구성원과 학교전담 노무사만으로 구성했다. 실습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해야 하는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학교 단독으로 개발하고 기업과 공유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전남교육감에게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학교 관계자에 대한 조치와 업체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후속 조치를 요구했으며, 교육청의 관리·감독에 미흡한 부분이 없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교육부는 시도교육감·부교육감 회의를 통해 현장 실습 전반에 걸쳐 학교·기업에 대한 점검을 요청하는 등 전수조사에 나섰다. 11∼12월에 걸쳐 진행되던 중앙단위 현장실습 지도·점검 시기를 이번 달 말로 앞당기고 그 범위를 시도교육청과 학교뿐 아니라 산업체까지 넓혀 점검하기로 했다.

시도교육청과 학교 대상으로는 현장에서 현장실습 규정과 지침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를 보고 지켜지지 않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등을 지도·점검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이날부터 각 시도교육청에 설치된 취업지원센터에 현장실습 신고센터를 설치해 실습 중 부당대우 등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 교육부는 현장실습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를 중심으로 자문단을 꾸리고 고용노동부와 현장실습 안전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교육부가 그간 불법 행위에 선제 대응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고가 발생하면 뒤쫓아가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반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후약방문식 대처만이 아니라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등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계와 노동계는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현장실습생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관행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홍정운 군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홍정운 학생의 희생을 계기로 학교 단위에서부터 철저한 현장실습 운영 절차 준수와 노동권·안전이 보장되는 기업과 연결, 참여기업 및 선도기업에 대한 철저한 지도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날씨가 잔뜩 찌푸린 가운데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홍정운 군의 사고 현장인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계류장이 인적이 끊겨 적막이 감돌고 있다. 여수 특성화고 3학년이던 홍군은 지난 6일 12㎏짜리 납 벨트를 맨 채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러 잠수했다 참변을 당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16일 오후 날씨가 잔뜩 찌푸린 가운데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홍정운 군의 사고 현장인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계류장이 인적이 끊겨 적막이 감돌고 있다. 여수 특성화고 3학년이던 홍군은 지난 6일 12㎏짜리 납 벨트를 맨 채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러 잠수했다 참변을 당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12㎏짜리 납 벨트 맨 현장실습생 참변…해경, 업체 대표 입건

여수해경은 12일 잠수 작업 도중 숨진 고등학교 3학년 현장실습생 홍정운 군의 현장실습 업체 대표 A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해경은 홍군이 잠수 자격증도 없는데도 혼자서 잠수 작업에 투입된 경위에 대한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A씨가 홍군에게 부적절한 작업을 시켰다는 혐의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며 “입건 뒤 추가 조사를 통해 자세한 사고 경위를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홍군은 사망 당시 잠수 작업을 하다가 산소통 등 장비를 재정비하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왔고, 장비를 벗어 뭍으로 옮기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홍군은 부력이 있는 산소통을 먼저 벗었다. 물속에 가라앉기 위해 무게를 늘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납 벨트는 마지막까지 차고 있었다.

당시 홍군이 차고 있었던 납 벨트 무게는 12㎏이었다. 해경 잠수부가 지난 8일 현장 검증 때 산소통을 벗고 납 벨트만 남기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해경 관계자는 “현장검증을 진행한 결과 홍 군이 스스로 납 벨트를 벗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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