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지도사가 들려주는 죽음과 장례의 의미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24 11:00
  • 호수 167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죽은 뒤에 리무진을 타면 무엇 하나”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죽음이 잠과 비슷하다고 해서 우리가 잠에 못 들지는 않는다. 밤에 잠들면 아침에 깬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편안히 잠들 수 있다. 우린 보통 침대맡에서 배우자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기 마련이고, 다시 아침에 깨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죽지 않아서 그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죽으면 다시는 못 만날 거다. 그러니까 아직 살아 있을 때 그들과 더욱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2020년, 감염의 공포에 질려 아무도 코로나 사망자 시신에 손을 대려 하지 않을 때 대구시청은 강봉희 장례지도사를 찾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장서서 700여 명의 무연고 고독사 사망자, 기초수급자 사망자의 장례를 대신 치러준 강씨의 이력 때문이었다. 오늘도 외롭게 죽은 이들의 시신을 염습하고, 장례식장과 화장장과 납골당을 오가면서 그들의 한 많은 넋을 기리는 강씨가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를 펴냈다. 오래도록 죽은 이들의 마지막을 목격하면서 죽음과 장례의 의미, 삶과 인간에 관해 성찰한 내용이다.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 강봉희 지음 / 사이드웨이 펴냄 / 220쪽 / 1만5000원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 강봉희 지음 / 사이드웨이 펴냄 / 220쪽 / 1만5000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이 제발 없어지기를”

“대구의 2020년 봄은 전대미문의 공간, 전대미문의 나날이었던 것 같다. 내 예순여덟 평생에 그러한 죽음의 모습, 죽음의 현장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죽음을 대하는 법, 인간과 장례의 의미에 관해서 그 뿌리부터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람은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다시 되새기게 했다.”

화장장에서는 영정도 위패도 없이, 관이 지나간 자리마다 소독약을 뿌렸다. 코로나19는 죽음 이후의 시간도 재촉했다. 어떤 망자는 오후 3시에 사망해 오후 6시에 화장했으니 3일장은커녕 세 시간 만에 죽음이 정리된 거라고, 강씨는 회고한다.

“코로나로 돌아가신 분은 죽음이라 할 수도 없었다. 방역 매뉴얼에 따라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간 것이다. 애도받지 못한 죽음이다.”

그처럼 강씨가 마음 아파하며 신경을 쓰고 있는 건 무연고 고독사의 시신이다. 40대 중반, 암에 걸려 저승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돌아온 뒤부터 죽음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 강씨는 2004년부터 700여 명의 고독사 사망자들과 기초수급자 고인들의 장례를 아무런 보상도 없이 도맡아왔다. “이 땅 위에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 내가 마지막을 지켜드린 분들은 대개 남들보다 더 외롭고 힘들게 살았던 분들이었다. 나는 그분들을 모셔드리면서 이젠 이곳보다 훨씬 더 편안한 곳으로 가는 거니, 거기선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누구도 미워하지 말라 기원했다.”

강씨는 누군가가 고독하게 죽었다며 호들갑을 떨지 말라고, 사망 후 몇 달 지난 뒤 발견됐다고 거기 카메라를 들이대지도 말라고 비판한다. 일이 벌어진 후 기사를 쓰거나 이론을 줄줄 읊기보단 행동부터 하라고, 주위에 그런 분들이 계시는 것 같으면 연락이나 자주 하라고, 찾아뵙기나 좀 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가가 아니다. 그가 가족과 단절됐다 해도, 그게 그가 우리들과 단절돼도 괜찮다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를 홀로 내팽개쳐두지 않는 것은 가족의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의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